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자산운용규모 기준 국내 1위의 부동산자산운용사를 맡은 조 대표지만 자신은 인터뷰를 할 만한 급(?)이 아니라며 수차례 인터뷰를 거절한 끝에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부동산자산운용업에 관한 이야기라면 하겠다며 겨우 응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치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눈길을 피했지만 부동산자산운용 업계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시선을 맞추며 조리 있는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했다. 업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한국 리츠(REITs) 역사의 산증인=조 대표가 부동산자산운용 업계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01년이다. 한국 부동산자산운용업의 역사가 시작되던 바로 그 해다. 그 해 4월 ‘부동산투자회사법’이 제정되고, 리츠가 도입됐다. 삼성생명과 현대건설에서 약 7년 동안 부동산 자산관리 업무를 경험하고 리츠를 준비했던 조 대표는 국내 최초의 부동산자산운용사인 코람코의 초기 멤버로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부동산자산운용업과 인연을 맺게 된다. 조 대표는 “삼성생명서비스에서 부동산 임대·관리·기획 업무를 하면서 해외 부동산 시장과 부동산금융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며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리츠였으며, 코람코가 리츠 자산운용사를 설립한다고 해서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자산운용 업계의 역사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이지스의 경영 부문을 맡고 있는 김대영 대표와 마스턴투자운용의 김대형 대표도 당시 상사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눈빛 속에는 지금도 설렘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 조 대표는 “해외 리츠를 보면서 부동산이 금융과 접목되면 주식·채권과 더불어 하나의 투자군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리츠업계에 도전장을 던진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싹이 트기 시작한 분야인 만큼 참고할 만한 매뉴얼이 전혀 없었다. 조 대표는 “당시는 지금과 같이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며 “투자 대상(건물)이 마련되면 재무·법률·회계 심사를 혼자 다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리츠가 낯설기는 기관투자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관들도 리츠를 주식으로 봐야 하는지 부동산으로 봐야 하는지 몰라 어느 부서가 맡아야 할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며 “아주 원초적인 부분부터 설명하고 기관들을 이해시켜야 하다 보니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매일 오전2~3시에 퇴근해서 잠시 눈을 붙이고 8시까지 회사에 출근하는 날들이 몇 달 동안 계속됐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만든 리츠 상품이 바로 ‘코크렙 1호’다. 국내에서 출시된 두 번째 기업구조조정(CR) 리츠다. 장교동 한화빌딩, 여의도동 대한방직빌딩, 동교동 대아빌딩을 기초자산으로 했으며, 총 자산 규모는 2,366억원이다. 조 대표는 “2001년부터 코크렙 1호를 준비했는데 실제 리츠 설립은 2002년 중반에야 완료됐다”며 “처음이다 보니 실제 업무협약부터 설립까지 6~7개월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한 번 홍역을 치른 후 리츠 메커니즘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후 코람코에서 20여건의 리츠를 선보인 후 2011년 지금의 이지스로 자리를 옮겨, 이지스를 업계 1위로 키웠다.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이처럼 부동산업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 조 대표지만 그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조 대표가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했던 말은 “부동산업은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승부해야 하는 곳”이라는 말이다. 그는 “부동산금융 전문가로서 정점을 찍으려면 나이 60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주식이나 채권은 매일매일 시장이 변하지만 부동산 투자는 이와 달리 최소 5년에서 길게는 10년을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업에 종사할수록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접목할 수 있어 투자 의사결정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서울대병원에 있는 의사를 최고로 알아주는데 이는 그 의사가 서울대를 나와서가 아니라 서울대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그만큼 다양한 집도를 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부동산도 같은 이치”라고 부연했다.
투자 대상에 대한 접근도 마찬가지다. 조 대표는 최근 가장 변화가 빠른 리테일 분야를 예로 들었다. 그는 “현재 6%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할인점과 5%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대형 쇼핑몰이 있다면 수익률이 낮더라도 대형 쇼핑몰에 투자해야 한다”며 “이제 막 리테일의 트렌드가 할인점에서 대형 쇼핑몰로 변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현재 숫자가 아닌 미래 성장 가치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를 고려해 부동산에 투자할 때는 최소 투자 기간의 두 배 정도를 잡고 해당 자산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매각시 가장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5년의 기한을 두고 자산을 투자한다면 실제 그 두 배인 10년 뒤 자산의 가치를 고려해서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력 관리도 마찬가지다. 조 대표는 20여년 가까이 부동산자산운용업계에 몸담아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선배의 입장에서 업계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조심스레 건넸다. 그는 “최근 업계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젊은 친구들의 이직이 많아지고 있는데 너무 급하게 무엇인가를 이뤄내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부동산에 대한 전문 지식과 인품·인사이트·열정을 갖추고 꾸준히 업을 해나가면 자연스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것이 실력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회사를 옮길 때는 돈과 직급이 아닌 회사의 비전과 그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올해 목표…리징·리서치·블라인드펀드 자금모집=조 대표는 올해 이지스의 목표를 리징(leasing), 리서치, 그리고 블라인드펀드 자금모집 세 가지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천수답 수준”이라며 “이제 자산 규모가 10조원을 넘어섰고, 지난 4년간 투자자들에게 연평균 6.7%의 배당을 지급하는 등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리징을 ‘부동산 자산 관리의 꽃’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는 “임차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우선 오피스 빌딩 임차인들이 가장 자주 만나는 미화·경비·주차 등의 업무를 맡은 분들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 다음으로 자산관리(PM)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임차인의 요구사항을 신속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이러한 기초적인 부분이 되지 않으면 리징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는 점에서 리징은 부동산 자산 관리의 모든 부분들이 체계적으로 돌아가야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지스가 지난해 PM회사 ‘코어밸류’를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임차인 유치의 관건이 되는 시설관리(FM)부터 PM, 리징까지 이지스의 철학을 공유하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