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1
산유국 중동에 녹색바람이 거세다. 기후변화 시대, 탈석유의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며칠 전 열린 두바이 `세계 녹색경제 서밋`이 이를 웅변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부통령 겸 총리이며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는 개막식에서 "2050년까지 두바이를 세계에서 탄소 발자국이 가장 작은 녹색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인근 사막에 세계 최대인 8기가와트 태양광 단지를 건설 중인 두바이는 270억달러 규모의 `그린펀드`를 출범시키는 한편 `세계녹색경제기구(WGEO)`라는 국제기구도 설립할 계획이다. 사이드 알 타이어 두바이에너지수자원공사(DEWA) 최고경영자(CEO)는 "1차적으로 6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녹색 프로젝트를 지원할 기금이 마련되었다"며 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전력기술을 3대 투자 분야로 손꼽았다. UAE의 맏형 격인 아부다비에는 탄소제로도시를 표방한 마스다르가 가동되고 있고 재생에너지 전담 국제기구(IRENA)도 들어서 있다. 필자와 만난 UAE 기후변화환경부 고위 당국자는 "비록 내부의 저항과 반발이 적지 않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데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한마음으로 뭉쳤다"고 강조했다.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녹색바람은 더욱 야심 차다. 사우디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지도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같은 기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포럼에서 "5000억달러를 투입해 네옴(Neom)이라는 미래 도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 경제개발위원회 의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왕세자로 등극하기 수년 전부터 사우디의 미래 비전을 설계하는 일을 도맡아 2016년에 발표한 `사우디 비전 2030`의 주역이 되었다. 이 비전의 핵심은 `석유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Oil)`다. `자기부정`에 가까운 이 역설의 셈법은 이렇다. `아람코의 원유 보유량은 2600억배럴이다. 지금도 저유가지만 최악의 경우 배럴당 10달러로 떨어진다고 가정해도 2조50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이 있다. 더 늦기 전에 그 돈으로 지금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미래도시 네옴은 이 같은 비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저장장치를 중심으로 한 100% 재생에너지 도시` `내연기관 자동차 대신 100% 녹색 교통`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이끌어 가는 스마트 도시`가 골간이다. 석유로 축적한 돈으로 탈석유 대비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발상인데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1000억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를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특기할 사항은 UAE와 사우디의 `녹색원류`는 바로 한국이라는 점에 있다. UAE는 2010년부터 한국과 녹색성장의 전략적 파트너가 된 이래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 2015년에는 내각 총결의를 통해 `국가 녹색성장 전략`을 채택했다. 이번에 발표한 세계녹색경제기구와 그린펀드 역시 한국이 구축한 글로벌 녹색성장기구(GGGI)와 녹색기후기금(GCF) 네트워크를 벤치마킹했다는 후문이다. 사우디는 왕실 차원에서 2012년 KAIST에 이산화탄소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등극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한국의 전략적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아람코의 핵심 관계자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한국이 녹색성장을 미래전략으로 채택해 변화를 선도했다는 점에서 경제개발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는 중동국가에 많은 용기와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기실 중동에 부는 녹색바람은 두 나라에 그치지 않는다. GGGI의 김진영 중동담당 국장은 "카타르, 쿠웨이트, 요르단,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들이 녹색을 화두로 국가발전계획을 새롭게 수립하고 있다"고 전한다.
문제는 정작 종주국 한국은 박근혜정부 시절 녹색성장전략을 폐기하다시피 했다는 점에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이를 어떻게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중동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한국에 조 단위의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녹색전환의 핵심기술과 산업은 우리에게 경쟁력이 있다. 한국이 주춤하면 중국이 그 기회를 포식할 것이다. 관련 부처에서는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을 바꿔서라도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문서를 만들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한번 확인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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