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푸드마켓 본토' 미국에 도전장
신유형 CEO 정용진의 '다·즐·직'
경쟁사와 다르게 도전
일상서 즐기는 일 사업화
아이디어 직접 내고 홍보
2018년 01월 26일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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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PK마켓' 1호점 목표
유통사 첫 자체 서비스로 진출
미국 현지 식자재 공장 인수 임박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얼굴)이 미국 시장에 도전한다. 연내에 그로서란트(grocerant·식료품점+레스토랑)가 포함된 프리미엄 푸드마켓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에 내기로 했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국내 유통 ‘빅3’ 중 자체 콘텐츠와 서비스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신세계가 처음이다.
신세계 고위 관계자는 25일 “복합쇼핑몰인 스타필드 하남과 스타필드 고양에서 운영하는 PK마켓 브랜드로 미국에 진출한다”며 “백인 중산층을 겨냥해 미국 소비자가 경험해보지 못한 아시안 프리미엄 푸드마켓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는 미국 진출을 위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식자재 공장을 인수하기로 하고 실사 중이다. 이 공장에선 식재료를 가공하고, 현지에서 판매할 이마트 식품 자체브랜드(PB)인 피코크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정 부회장이 미국 시장 진출을 결정한 것은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됐다고 신세계 측은 설명했다. 그동안 신세계는 이마트를 내세워 중국 베트남 몽골 등에 진출했다. 이들 시장은 규제가 심하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정 부회장은 경기 호황으로 수요가 늘고, 출점과 폐점이 자유로운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 승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미국에서 성공하면 런던 파리 싱가포르 등 다른 선진국 푸드마켓에도 진출하는 ‘빅 픽처’를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주도한 스타필드가 성공적으로 안착해 자신감을 가진 것도 미국 진출을 결정한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진출 파트너로는 터브먼이 1순위로 꼽힌다. 신세계와 스타필드 하남을 합작한 터브먼은 미국에 20여 개 대형 쇼핑몰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터브먼은 자사가 개발한 쇼핑몰에 PK마켓 입점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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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의 '빅 픽처'… "중국·동남아 벗어나 선진국 시장서 승부"
2018년 0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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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미국 푸드마켓 도전
신세계, 해외사업 발상의 전환
"스타필드의 PK마켓 등 콘텐츠 탁월하다"
쇼핑몰 개발사 터브먼도 미국 진출 적극 권유
아시안 푸드마켓으로 백인 중산층 공략
2016년 9월 신세계그룹은 경기 하남에 스타필드를 열었다. 미국 쇼핑몰 개발사인 터브먼과 합작한 국내 첫 복합쇼핑몰이었다.
당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함께 개장식에 참석한 터브먼의 로버트 터브먼 회장은 스타필드 내 프리미엄 푸드마켓인 ‘PK마켓’, 전자제품 전문점 ‘일렉트로마트’ 등을 둘러보고 이런 말을 했다. “쇼핑몰에선 콘텐츠가 중요한데 짧은 기간에 이렇게 채운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정 부회장은 콘텐츠의 왕(王)이라고 부를 만하다.”
◆“생각을 바꾸니 미국이 보인다”
이후 터브먼은 “스타필드에 들어간 콘텐츠 정도면 미국 쇼핑몰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며 미국 진출을 제안했다.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라스베이거스 솔트레이크시티 등에 20여 개 대형 복합쇼핑몰을 개발해 운영 중인 터브먼의 ‘러브콜’은 정 부회장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정 부회장은 해외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국 베트남 몽골…. 이마트가 진출한 국가들을 떠올렸다. 사업 시작과 확장, 철수에 제약이 많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중국에서 철수했다. 프랜차이즈 형태로 2개 점을 낸 몽골시장은 시장 자체의 규모 때문에 성장의 한계가 분명하다. 2015년 1호점을 진출한 베트남에선 내년에야 2, 3호점을 연다. 베트남이 잠재력이 있긴 하지만 10년 동안 투자해 점포를 늘려도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 쉽지 않다고 정 부회장은 판단했다.
이마트 고위관계자는 “‘우리는 미국에 갈 깜냥이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던 정 부회장이 완전히 생각을 바꿨다”며 “연내 미국 PK마켓 1호점을 목표로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도 선진국에서 승부할 수 있고, 할 수 있다면 신세계 이마트가 해야 한다”는 게 정 부회장의 생각이라는 얘기다.
◆PK마켓…백인 중산층 공략
그 첫 대상 국가가 미국으로 결정됐다. 미국 진출의 첨병은 하남과 고양의 스타필드에 선보인 PK마켓이다. 대규모 물류시설과 납품업체 발굴이 필요한 대형마트보다는 프리미엄 식품과 그로서란트(grocerant)로 특화된 PK마켓으로 도전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로서란트는 식료품점인 그로서리(grocery)와 레스토랑(restaurant)이 결합한 형태다. 고급 식재료를 판매하며 음식을 즉석에서 내놓는다. 국내에선 스타필드 PK마켓의 ‘라이브 랍스터 바(20석)’와 ‘부처스 테이블’이 그런 형태다.
미국에 진출하면 신세계는 이 형태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채소·야채 코너에선 비빔밥바와 주스바를 운영하고, 시푸드 코너에선 랍스터와 회전초밥을, 정육코너에선 스테이크와 철판구이 등을 요리해 판매할 계획이다. ‘아시안 푸드마켓’이 콘셉트다. 식료품과 그로서란트는 물론 이마트의 PB인 ‘피코크’도 미국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이마트는 이를 위해 식자재 공급과 피코크 생산을 위한 현지공장 인수에 나섰다. 아울러 ‘한국식 빵’의 경쟁력을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파리바게뜨와 국내 백화점에 입점한 밀탑의 동반 진출도 추진 중이다.
◆“쇼핑몰 공실…우리에겐 기회”
미국 PK마켓 1호점 출점 후보 도시는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LA 뉴욕 애틀랜타 등이다. 미국 경제의 호황에도 이들 지역의 쇼핑몰에 들어선 메이시즈 시어스 등과 같은 백화점 가운데 고전하는 점포가 적지 않다. 아마존 등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린 탓이다.
일부 백화점은 쇼핑몰에서 점포를 빼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실이 생기는 쇼핑몰에 4950㎡(약 1500평)~6600㎡(약 2000평) 규모로 PK마켓을 출점하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게 정 부회장의 생각이다. 패션상품 중심의 백화점들로만 구성돼 있는 쇼핑몰에 푸드마켓을 넣으면 월마트 타깃 홀푸드 등 기존 대형 매장들과의 차별화도 가능하다. 주 공략 대상은 백인 중산층이다. 이마트는 고객의 60%를 백인 중산층으로 확보하느냐를 미국 진출의 성공 기준으로 삼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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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품점+레스토랑'… 미국서 24억명 고객 창출
안재광 기자
2018년 01월 26일
신세계, 미국 푸드마켓 도전
미국 진출 아이템 '그로서란트'는…
이탈리아 '이탈리' 선두주자
아마존의 홀푸드도 매장 늘려
신세계가 미국 진출 아이템으로 정한 ‘그로서란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매장이다.
2007년 첫 그로서란트 매장을 낸 이탈리아의 ‘이탈리(Eataly)’는 이탈리아 미국 등에 39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유기농, 프리미엄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매대 중간중간에 해산물 전문점, 피자집 등 10~20곳의 다양한 레스토랑을 배치했다. 상품 판매보다 레스토랑 매출이 더 많은 게 특징이다.
아마존이 작년 인수한 슈퍼마켓 홀푸드도 매장 내 그로서란트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홀푸드 매장은 인테리어를 전통시장 느낌이 나도록 특화해 설계하고 매장 안에 지역 유명 레스토랑을 입점시켰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 웨그먼스 또한 그로서란트 매장을 확장 중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NPD그룹은 그로서란트가 미국 내에서 2016년 기준 24억 명의 방문객을 신규로 창출했고 100억달러의 매출을 거뒀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국내에선 신세계 이 외에 롯데마트가 가장 적극적이다. 작년 4월 문을 연 양평점에 시험적으로 매장을 낸 뒤 서초점과 대구 칠성점 등 새 점포에 어김없이 그로서란트 매장을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가 중요한 외식 트렌드가 되고 있는 만큼 그로서란트 시장의 성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좋은 재료를 값싸게 먹고 싶은 소비자들의 욕구와 매출 성장 한계에 부딪힌 유통업체들의 이해관계가 딱 들어맞은 게 그로서란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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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형 CEO 정용진의 '다·즐·직'
2018-01-25 17:29:03
경쟁사와 다르게 도전
일상서 즐기는 일 사업화
아이디어 직접 내고 홍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2013년부터 새로운 사업을 쏟아내고 있다.
경쟁 상대도 그때마다 바뀐다. 가정간편식 피코크에 집중할 때는 시장의 강자 CJ제일제당이었다. 2016년 ‘쓱닷컴’으로 최저가 경쟁을 할 때는 쿠팡을 상대했다. 복합쇼핑몰 스타필드에 이르자 그는 “경쟁자는 집”이라고 했다. 스타필드에 나와 쉬고, 놀고, 먹게 하겠다는 얘기였다. 이번엔 세계적 푸드서비스 업체들과 붙어보겠다고 미국으로 향한다. 일렉트로마트, 이마트24, 노브랜드, 제주소주 등도 정 부회장이 새롭게 만든 브랜드다. 그렇게 5년여간 끊임없이 경쟁자를 바꾸며 싸웠다. 도전은 일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태세다.
이런 정 부회장에 대해 한 임원은 이런 말을 했다. “다르다, 즐긴다, 직접 한다 이 세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다르다’는 다른 기업이 하지 않는 것을 앞서서 한다는 의미다. 주 35시간 근로제 도입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 그는 즐긴다. 좋아하는 일을 사업으로 만든다. 먹는 것은 피코크, 술은 제주소주, 전자제품은 일렉트로마트 등의 브랜드가 됐다. 이마트의 반려동물 숍 이름은 기르는 반려견 이름을 딴 ‘몰리스 펫샵’이 됐다.
이런 일을 정 부회장은 직접 한다. 제주소주 ‘푸른밤’을 개발할 때 거의 매일 소주를 맛보며 맛을 바꿨다. 피코크 음식을 개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브랜드를 개발하고, 신사업을 벌일 때 아이디어 대부분은 정 부회장이 낸다. 이 아이디어를 신세계그룹에서는 ‘빅 픽처’라고 부른다. 기자들과도 행사장 같은 곳에서 만나 설명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사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신년계획도 직접 설명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사업을 알리는 것도 그의 일이다. 커뮤니케이터 역할도 하는 셈이다.
여기서 또 다른 다름이 드러난다. 기존 오너 경영자들과 다른 ‘정용진’의 이미지는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됐다. 이미지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처음 만나는 유형의 최고경영자(CEO)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 시장에 대한 도전은 이 세 가지가 합쳐진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신세계 사람들은 얘기한다.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는 성취감과 기업의 성장이다. 이를 기업가정신 또는 기업인의 본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끝없는 도전을 통해 한국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기업인에게 행복추구권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기업을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