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코스닥 벤처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6개 운용사와 판매사 2곳 등의 실무진과 만나 `코스닥 벤처펀드 간담회`를 열고 대책을 발표했다. 펀드 규모가 클수록 코스닥 공모주 배정이 불리하게 설계된 문제를 개선하고 공모펀드에도 제한적으로 신용등급이 없는 무등급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편입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지난달 5일 출시된 코스닥 벤처펀드는 한 달도 채 안 돼 2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공모펀드 중에는 목표 금액을 다 채워 더 이상 돈을 안 받는(소프트클로징) 펀드도 생겨났고, 사모펀드 중에는 첫날 10분 만에 마감된 펀드도 나왔다. 하지만 이 자금 중 75%가 사모펀드에 몰리면서 거액 자산가들만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사모펀드를 내놓은 운용사는 62곳이었지만 공모펀드는 7군데밖에 안 될 정도였다. 사모펀드가 이처럼 기형적으로 커진 까닭은 공모펀드의 상품 구성에 현실적인 제약이 컸기 때문이다. 코스닥 벤처펀드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15%의 벤처기업 신주나 CB·BW 등을 담아야 한다. 이때 공모펀드에 편입되는 채권은 최소 2곳 이상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코스닥 상장사뿐만 아니라 벤처기업들은 무등급 채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 코스닥 벤처펀드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으로서는 신용등급을 받을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펀드 규모에 상관없이 공모주를 배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덩치에 상관없이 균일하게 나눠주다 보면 투자자가 몰린 큰 펀드가 상대적으로 혜택을 덜 받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운용사로서는 펀드 규모를 작게 가져가는 게 수익률을 높이는 데 유리해진다. 한 달 새 공모펀드가 7개 나올 동안 사모펀드가 141개나 조성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모펀드는 새 펀드를 만드는 게 쉽지만 공모펀드의 경우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것도 문제였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위에서는 우선 코스닥 벤처펀드에 대해 별도로 공모주 배정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덩치 큰 펀드들이 공모주 배정에 불리하지 않도록 펀드 순자산 규모를 고려해주기로 한 것이다. 공모펀드에는 최대 10% 추가 물량 배정도 허용하기로 했다. 3500억원이 넘어선 대형 코스닥 공모펀드가 300억원짜리 소규모 사모펀드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균형추를 잡아준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코스닥 벤처펀드 현장 간담회'를 열고 출시 한달여 만에 2조원 이상 판매된 코스닥 벤처펀드 현황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안을 논의했다.
코스닥 벤처펀드는 투자금 10%를 최대 300만원한도 내에서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펀드다. 대신 소득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벤처기업 신주 15% 이상을 포함해 자산의 절반 이상을 코스닥 벤처기업 등에 투자해야 한다. 코스닥 신규 IPO(기업공개) 기업의 공모주 물량 중 30%는 벤처기업 투자신탁에 배정, 코스닥 펀드의 자금이 들어오도록 했다.
코스닥 공모주 배정에 따른 수익률이 기대되는 데다 소득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지난달 5일 출시 한달이 채 안 돼 판매액이 2조원을 돌파했다.
문제는 공모주 배정 방식에 따라 소규모 사모펀드 설정·판매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자산의 절반을 코스닥 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하는 만큼 동일한 공모주 물량을 배정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펀드 규모가 작을수록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억원 규모 사모펀드와 1000억원 규모 공모펀드가 코스닥 A사 IPO에 공모주 청약을 넣었다고 가정하면, A사는 공모주 총액의 30%를 코스닥벤처펀드에 넣으면 된다.
사모펀드와 공모펀드 모두 동일하게 20억원씩 배정했을 경우 사모펀드는 자산의 15% 이상을 벤처기업 신주에 투자하도록 한 규정을 한번에 충족한다. 반면 공모펀드는 벤처기업 신주에 2% 자산을 배분했기 때문에 나머지 13%를 추가로 충족해야한다.
펀드운용사 입장에선 소규모 사모펀드 출시가 유리한 셈이다. 실제로 지난달 26일까지 팔린 코스닥 벤처펀드 1조9469억원 가운데 1조4233억원, 73.1%어치가 사모 펀드다. 공모펀드는 전체 148개 중 7개에 불과한 5236억원어치가 팔렸다. 벤처기업 성장 과실을 국민들이 누리게 한다는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현상이다.
금융당국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펀드 순자산 규모를 고려해 코스닥 공모주를 배정하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공사모 구분없이 순자산에 따라 기본 배정액을 나누고 공모펀드에는 최대 10% 추가물량을 배정하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김용범 부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사모펀드 위주 코스닥벤처펀드 경향이 지속될 경우 도입취지가 퇴색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형펀드에 불리한 공모주 배정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순자산 규모를 고려해 공모주가 배정되도록 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코스닥벤처펀드,묻지마투자 현실화…제노레이 공모에 7조 몰려
제노레이, 기관수요예측 경쟁률 907대1로 올 평균 2배…"'묻지마' 수요예측 지속" 전망도
지난달 5일 코스닥 벤처펀드가 출범한 이후 첫 코스닥 기업 상장 수요예측에 7조5352억원의 자금이 몰려, 공모기업 가치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 코스닥 벤처펀드가 공모주식을 일정 분량 확보해야 하는 만큼,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지속될 전망이다. 15일 의료기기업체 제노레이는 공모가 확정을 위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결과, 907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수요예측 참여 건수는 1016곳, 수량은 3억2762만여주다. 이는 제노레이를 제외한 올해 코스닥 공모기업 수요예측 평균 경쟁률 488대1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지난해 평균 경쟁률은 351대1 수준이다. 상장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의 배영규 상무는 "제노레이가 헬스케어 기업이어서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이 많았다"며 "코스닥 벤처펀드 자금이 들어온 것도 경쟁률이 높아진 이유"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코스닥 벤처펀드가 공모주 확보경쟁에 나설 경우, 기업가치가 왜곡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코스닥 벤처펀드는 펀드 자산의 15% 이상은 벤처기업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전환사채(CB) 등 메자닌채권(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을 포함한 신주에 투자해야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코스닥 벤처펀드가 공모에 무조건 참여해 공모주를 배정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제노레이 수요예측 참여자 가운데 4곳 중 1곳에 달하는 242개 기관은 신청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어떤 가격이더라도 공모주식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이경준 한국연금투자자문 이사는 "운용사들이 공모주식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가치를 따지지 않겠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며 "기업가치에 대한 분석은 무의미해졌고 앞으로도 묻지마 수요예측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코스닥 벤처펀드 설정액은 2조4049억원(5월9일 기준)으로, 이들 자금은 지속적으로 공모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제노레이에 배정된 기관투자자 공모주 물량은 20억원 규모다. 단순계산할 경우 참여기관 1곳당 배정받는 공모주 금액은 200만원도 안된다.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코스닥 벤처펀드의 파급력은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다. 이 펀드에 공모물량의 30%를 우선 배정하다 보니 나머지 기관투자자 사이에선 물량이 부족하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달 14~15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세종메디칼 역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성환 세종메디칼 대표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코스닥 벤처펀드의 효과를 실감했다"며 "다른 기관 사이에서 공모주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보다 많은 투자 수요를 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코스닥 벤처펀드가 공모주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공모가가 과도하게 높게 형성돼 상장 이후 주가하락 압박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코스닥 벤처펀드 영향으로 신규상장기업의 공모가가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뒤 상장 이후 주가가 하락할 경우 시장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