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4
홍남기, 잠재성장률 끌어 올리려면
위기 극복 위한 구조개혁 나서야"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경제 투톱 교체 인사를 놓고 “사람 바꾼다고 달라질 게 있나”라는 얘기가 나온다. 소득주도성장을 사수하겠다는 정권 차원의 의지가 워낙 단호하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당초 그는 정치적 공약과 실물경제 사이의 불협화음을 노련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고학으로 일군 놀라운 성취와 착실하게 쌓아올린 전문성은 이런 믿음을 강하게 했다. 부총리 지명 직후 덕수상고 출신 친구들을 만나 경제운용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기대 섞인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김 부총리의 공간은 없었다. 청와대의 독주와 청와대 눈치를 보는 후배 관료들 사이에서 점차 고립돼 갔다. 부하들과 마음 터놓고 소주 한 잔 나누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객담은 김 부총리에게 맞지 않았다. 관료는 국가기구로서 목적의 정당성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주문이지만, 그는 끊임없이 소득주도성장을 의심하고 대안을 찾았다. 처음부터 목소리를 높인 것은 아니다. 고용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최저임금 급등에 대한 비판은 조심스러웠다.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하자니 자신을 발탁한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고, 세상 사람들이 뻔히 알고 있는 부작용을 외면하자니 영혼이 괴로웠을 터.
정책방향 전환에 대한 가능성이 사라지자 그는 옥쇄를 택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동반 투신’이었다. 돌이켜 보면 청와대와 김 부총리 모두 상대를 오판한 결과였다. 김 부총리는 빈손으로 물러나지만 소득주도성장도 상처를 입었다.
후임으로 지명된 홍남기 부총리 후보자가 맞닥뜨린 경제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자동차산업과 원자력을 필두로 한 전력산업은 이미 생존을 기약할 수 없는 지경에 내몰려 있다. 10대 주력업종을 들여다보면 내년에 성장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반도체도 이미 정점을 찍었다. PBR(주가순자산비율)이 역사상 최저점으로 떨어졌는데도 한국 주식시장에서 살 만한 종목이 없다는 게 대형 운용사 펀드매니저들의 푸념이다. 이 와중에 내년 1월부터 10%대의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 시장은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에만 몰리고 있다”는 청와대의 진단은 원인과 결과를 전복한 엉터리 논법이지만 그 대기업들부터 감산과 감원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가 가만있을 리 없다. 자기 밥그릇은 결사적으로 지키겠다고 달려들 게 뻔하다. 수년째 ‘광주형 일자리’ 하나 싹싹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이른바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진짜 실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5대그룹 참모들을 병풍처럼 세워놓고 투자나 고용을 당부해 봐야 헛일이다. ‘독안에 든 쥐’ 신세인 그들은 지금도 도처에서 들볶이고 있다
강력한 구조개혁과 경제체질 개선 없이는 미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노동계의 기득권을 봉쇄하고 규제를 혁파하고 산업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구조개혁을 하려면 예산통이 아니라 산업과 금융 전문가들을 곁에 둬야 한다. 김 부총리는 좋은 시절의 구조개혁 기회를 흘려보냈다.
실패로 몰아붙이기엔 야박하다.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 후보자는 다르다. 경기 하강기에 세금으로 실업을 틀어막는 역할에 그쳐선 안 된다. 위기에 빠진 소득주도성장의 구원투수를 자임하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 그는 얼마 전 기자들과 만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토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답이다. “사람 바꾼다고 달라질 게 있나”라는 비아냥거림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직업 관료로 봉직해온 그의 자존심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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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일하지 않는 자들의 나라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은 일과 노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1918년 세계 최초로 제정한 공산헌법에 ‘일하지 않는 자, 먹을 수 없다’는 조항을 넣은 이유다. “자본주의에서 열심히 일하는 정신을 배우자”는 유언도 남겼다. 하지만 레닌 사후, 소련은 일하지 않는 자들의 나라로 치달았다. 74년간의 실험은 예고된 파산으로 끝났다.
'지대의 제도화'로 치닫는 한국
레닌은 자본가를 ‘지대 향유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오판이었음이 역사에서 판명 났다. 지금 우리 내부의 지대 추구자를 꼽자면 대기업·공기업의 ‘귀족 노조’가 1순위일 것이다. 조합원의 정규직 우선 채용, 고용 세습 등의 이권 추구를 불법적 수단까지 동원해 관철해 낸다. 주요국은 다 도입한 ‘탄력근로 기간 확대’를 막겠다며 총파업까지 예고한 건 지대보존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지역 노동자와 주민들이 환영하는 ‘반값’ 광주형 일자리를 집요하게 반대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지대 경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확산일로다. 실력보다 연줄과 충성심에 기반한 ‘운동권 지대’의 형성이 주목받는다. 운동권 카르텔은 협동조합 등을 만들어 중앙·지방정부 지원을 독식하며 태양광 발전을 ‘좌파 비즈니스’로 접수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권력 상층부로 진입 중이다. 청와대·내각·정부 요직의 절반 가까이가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으로 집계될 정도다.
노조·운동권·시민단체만이 아니다. 지대 세력의 출몰은 전방위적이다. 의원들은 규제 입법, 관료들은 법령 해석을 통해 특권을 지켜낸다. 공무원 급증도 ‘공무원 지대’ 비대화의 방증이다. 도덕이 지배해야 할 교육과 사법 분야마저 지대 메커니즘에 포섭되는 양상이다. 한 고교의 ‘시험지 유출’ 수사 결과는 쉬쉬해온 ‘학교 지대’의 일단을 드러냈다. 헌법이 요구하는 직업적 양심보다 법관 개인의 양심을 앞세운 수상한 판결이 잦은 것은 사업부 내 ‘지대 판사’들의 약진을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