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3
환경 문제아들이 뭉쳤다. 제품을 만들고 쓰는 과정에서 환경을 해치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뿜는 자동차, 정유, 화학, 제철, 발전기업들이 지난 8일 재계 협의 기구를 만들었다. 현대차, 에스케이(SK), 포스코, 롯데, 한화그룹 등이 앞으로 깨끗하게 사업하겠다며 내놓은 아이템은 ‘수소’다.
밖에서 불어온 수소 바람…왜 수소인가?
수소를 우리 사회의 주요 청정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자는 ‘수소 경제’ 바람은 밖에서 불어왔다. 10여 년 전과 판박이다. 2005년 참여정부는 친환경 수소 경제 마스터플랜을 내놨다. 2년 전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가 기름값이 뛰자 국외 석유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수소를 대안으로 들고나온 직후였다.
그 때와 달라진 점은 위기의 내용과 강도다. 기후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며 세계적인 환경 규제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수소 사업 추진단을 만든 에스케이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유럽연합(EU)과 독일 등이 수소 전략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이전 트럼프 정부 당시 탈퇴했던 파리 기후 변화 협약에 재가입하는 걸 보며 친환경은 이젠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봤다”고 전했다. 에스케이그룹은 전체 매출의 3분의 1가량(2020년 기준)이 탄소 배출이 많은 정유·화학 사업에서 발생한다. 수소는 그룹의 생존 전략이라는 얘기다.
수소의 가장 큰 장점은 에너지 저장과 운반이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만든 전기를 한국에 들여오려면 엄청난 길이의 송전선을 깔거나 무거운 배터리를 배로 실어날라야 한다. 그러나 수소를 활용하면 이런 부담이 확 준다. 물에 전기를 흘려 산소와 수소를 분해하고, 여기서 나온 수소를 압축해 한국에 보낸 뒤 다시 산소와 결합하면 전기가 만들어져서다. 수소를 ‘에너지 운반체’라고 부르는 이유다.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활용에도 수소는 유용하다. 제주도의 풍력 발전기는 바람이 잘 불어도 전기 사용이 적은 시간엔 멈추어 선다. 발전량이 수요보다 많으면 전력 공급망에 과부하가 발생해 사고가 날 수 있어서다. 이때 수소를 사용하면 발전을 중단하거나 남는 전기를 버리지 않고 보관할 수 있다. 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이 20∼50%대로 높은 독일, 미국 등에서 수소 산업을 육성하는 배경이다.
수소는 세계적인 에너지 분배 구조의 판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다. 자원 빈국이자 재생 에너지 생산 열등생인 한국·일본 등이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소 수출국으로부터 수소를 들여오면 석탄·석유 등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깨끗한 전력을 쓸 수 있다. 국내 대기업도 궁극적으론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재생 에너지→수소→깨끗한 전기’로 이어지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 수소의 생산·저장·운송 인프라 구축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왔나
수소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나마 가장 먼저 이뤄지리라 예상하는 건 기체 상태인 수소를 액체로 만들어 부피를 줄이고 더 많은 수소를 충전소에 공급하는 기술이다. 효성그룹은 우리보다 앞서 액화 수소 기술을 개발한 독일 린데와 만든 합작사를 통해 오는 2023년부터 액화 수소 생산과 충전소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효성 관계자는 “충전 비용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겠지만 한 번에 더 많은 수소를 운반하고 수소차의 수소 완충 시간도 3분 정도로 지금보다 3∼4배 빨라져 사업자의 수익성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케이도 2023년부터 액화 수소를 생산하고 2025년까지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다. 에스케이이앤에스(E&S) 관계자는 “탄소 포집 기술은 지금도 석탄을 땔 때 사용 중인 만큼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기술을 새로운 곳에 적용하는 기술을 추가 개발하는 거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깨끗한 수소(그린 수소)를 만들고, 이를 통해 탄소 배출 없이 철 등을 생산하겠다는 청사진은 아직 그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다. 현재 운용 중인 풍력·태양광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려는 코오롱, 한화그룹과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제로 석탄 가스 대신 그린 수소를 사용하겠다는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수전해 기술은 지금도 있지만, 상업성을 갖추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포스코 쪽도 “수소 환원 제철은 현재는 세상에 없는 기술로 글로벌 철강사들도 상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 단계”라고 업계 동향을 전했다. 아직은 수소가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틈새시장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실현 가능성은
특정 산업과 기술의 확산 단계를 유용성 확보, 경제성 확보, 사회적 수용이라는 3단계로 구분하면 수소 경제는 이제 갓 그 기술의 유용성을 인정받은 단계다. 상용화를 위한 원가 절감, 인프라와 수요 확충을 통한 확산 등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문제는 개별 기업이 추진하는 수소 사업에 큰 밑그림을 제시하고 이를 이끌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현 정부가 발표한 수소 경제 활성화 로드맵엔 수소차와 충전소 보급, 수소 공급 계획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수소를 얼마나 공급할지 목표나 계획이 빠져 있다. 기업과 정부의 청사진이 따로 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0년 그리고 2040년에 수소를 재생 에너지, 원자력, 화력 발전, 천연가스 등 1차 에너지에서 각각 얼마나 생산할지 전망 없이 별개로 작성한 수소 비전은 사상누각이고 현실성 없는 유토피아다.”
이는 지난 2005년 이상훈 당시 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실장이 쓴 글 ‘수소 경제의 허와 실’의 일부다. 이 비판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건 기업의 수소 투자 열풍이 다시 거품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환경 문제아들이 뭉쳤다. 제품을 만들고 쓰는 과정에서 환경을 해치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뿜는 자동차, 정유, 화학, 제철, 발전기업들이 지난 8일 재계 협의 기구를 만들었다. 현대차, 에스케이(SK), 포스코, 롯데, 한화그룹 등이 앞으로 깨끗하게 사업하겠다며 내놓은 아이템은 ‘수소’다.
밖에서 불어온 수소 바람…왜 수소인가?
수소를 우리 사회의 주요 청정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자는 ‘수소 경제’ 바람은 밖에서 불어왔다. 10여 년 전과 판박이다. 2005년 참여정부는 친환경 수소 경제 마스터플랜을 내놨다. 2년 전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가 기름값이 뛰자 국외 석유 의존도를 낮추겠다며 수소를 대안으로 들고나온 직후였다.
그 때와 달라진 점은 위기의 내용과 강도다. 기후 위기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며 세계적인 환경 규제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수소 사업 추진단을 만든 에스케이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유럽연합(EU)과 독일 등이 수소 전략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이전 트럼프 정부 당시 탈퇴했던 파리 기후 변화 협약에 재가입하는 걸 보며 친환경은 이젠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봤다”고 전했다. 에스케이그룹은 전체 매출의 3분의 1가량(2020년 기준)이 탄소 배출이 많은 정유·화학 사업에서 발생한다. 수소는 그룹의 생존 전략이라는 얘기다.
수소의 가장 큰 장점은 에너지 저장과 운반이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만든 전기를 한국에 들여오려면 엄청난 길이의 송전선을 깔거나 무거운 배터리를 배로 실어날라야 한다. 그러나 수소를 활용하면 이런 부담이 확 준다. 물에 전기를 흘려 산소와 수소를 분해하고, 여기서 나온 수소를 압축해 한국에 보낸 뒤 다시 산소와 결합하면 전기가 만들어져서다. 수소를 ‘에너지 운반체’라고 부르는 이유다.
태양열,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활용에도 수소는 유용하다. 제주도의 풍력 발전기는 바람이 잘 불어도 전기 사용이 적은 시간엔 멈추어 선다. 발전량이 수요보다 많으면 전력 공급망에 과부하가 발생해 사고가 날 수 있어서다. 이때 수소를 사용하면 발전을 중단하거나 남는 전기를 버리지 않고 보관할 수 있다. 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이 20∼50%대로 높은 독일, 미국 등에서 수소 산업을 육성하는 배경이다.
수소는 세계적인 에너지 분배 구조의 판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다. 자원 빈국이자 재생 에너지 생산 열등생인 한국·일본 등이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소 수출국으로부터 수소를 들여오면 석탄·석유 등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깨끗한 전력을 쓸 수 있다. 국내 대기업도 궁극적으론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재생 에너지→수소→깨끗한 전기’로 이어지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 수소의 생산·저장·운송 인프라 구축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왔나
수소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나마 가장 먼저 이뤄지리라 예상하는 건 기체 상태인 수소를 액체로 만들어 부피를 줄이고 더 많은 수소를 충전소에 공급하는 기술이다. 효성그룹은 우리보다 앞서 액화 수소 기술을 개발한 독일 린데와 만든 합작사를 통해 오는 2023년부터 액화 수소 생산과 충전소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효성 관계자는 “충전 비용 측면에선 큰 차이가 없겠지만 한 번에 더 많은 수소를 운반하고 수소차의 수소 완충 시간도 3분 정도로 지금보다 3∼4배 빨라져 사업자의 수익성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케이도 2023년부터 액화 수소를 생산하고 2025년까지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다. 에스케이이앤에스(E&S) 관계자는 “탄소 포집 기술은 지금도 석탄을 땔 때 사용 중인 만큼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기술을 새로운 곳에 적용하는 기술을 추가 개발하는 거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깨끗한 수소(그린 수소)를 만들고, 이를 통해 탄소 배출 없이 철 등을 생산하겠다는 청사진은 아직 그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다. 현재 운용 중인 풍력·태양광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려는 코오롱, 한화그룹과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제로 석탄 가스 대신 그린 수소를 사용하겠다는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수전해 기술은 지금도 있지만, 상업성을 갖추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포스코 쪽도 “수소 환원 제철은 현재는 세상에 없는 기술로 글로벌 철강사들도 상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 단계”라고 업계 동향을 전했다. 아직은 수소가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틈새시장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실현 가능성은
특정 산업과 기술의 확산 단계를 유용성 확보, 경제성 확보, 사회적 수용이라는 3단계로 구분하면 수소 경제는 이제 갓 그 기술의 유용성을 인정받은 단계다. 상용화를 위한 원가 절감, 인프라와 수요 확충을 통한 확산 등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문제는 개별 기업이 추진하는 수소 사업에 큰 밑그림을 제시하고 이를 이끌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현 정부가 발표한 수소 경제 활성화 로드맵엔 수소차와 충전소 보급, 수소 공급 계획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수소를 얼마나 공급할지 목표나 계획이 빠져 있다. 기업과 정부의 청사진이 따로 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20년 그리고 2040년에 수소를 재생 에너지, 원자력, 화력 발전, 천연가스 등 1차 에너지에서 각각 얼마나 생산할지 전망 없이 별개로 작성한 수소 비전은 사상누각이고 현실성 없는 유토피아다.”
이는 지난 2005년 이상훈 당시 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실장이 쓴 글 ‘수소 경제의 허와 실’의 일부다. 이 비판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건 기업의 수소 투자 열풍이 다시 거품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