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 2014.03.20
현대백화점그룹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LIG손해보험 인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롯데와 신세계에 이어 유통업계 만년 3위를 면치 못하는 현대백화점이 사업구조를 다각화하려 금융업 진출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다만 LIG손보 인수를 위해서는 '범 현대가(家)'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어 선뜻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을 이끄는 정지선 회장은 삼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9일 M&A(인수·합병) 업계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최근 우리투자증권과 LIG손보 인수에 관한 자문 선임을 물밑에서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문 계약은 수수료 문제로 아직 체결되지 않았지만 현대백화점의 인수 의중을 알아차린 우투증권이 자문역을 자원하면서 인수전 공식참여가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현대백화점은 이에 앞서 LIG손보의 최근 실적과 사업현황 등을 내부적으로 면밀히 검토하고 자금 여력과 인수 효과, 시너지 등을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룹은 현재까진 백화점과 유통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과 현대홈쇼핑 외에 식자재업을 하는 현대그린푸드 등을 주요 계열사로 두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사업 다각화 목적으로 LIG손보를 인수할 경우 유통업에 금융업을 더하는 것이다. 모기업이 유통업을 주력으로 하는 손보사로는 롯데손해보험이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총매출액이 4조6000억원으로 업계 1위인 롯데쇼핑(30조원)과 격차가 최근 크게 벌어졌고 신세계(5조1000억원)에도 밀리고 있다. 2011년 이후 매출과 순익이 제자리걸음이란 지적이다. 업계 만년 3위를 탈피할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 내 순위는 뒤쳐지지만 고급 백화점을 운영하면서 쌓은 방대한 유통채널과 부유층 고객 네트워크가 강점이다. 이를 보험업으로 연결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특히 LIG손보의 판매 채널 중 하나로 현대홈쇼핑을 활용될 경우 비대면채널 역량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다만 재계에선 현대백화점의 자체적인 의지와 관계없이 실제 보험업 진출 가능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 범 현대가에서 각 가문의 그룹 내 동종업 진출 금지를 '불문율'로 여기는 탓이다. 범 현대그룹 내에는 이미 손보업계 2위인 현대해상이 자리하고 있다. 생보업계에도 현대기아차그룹이 지난 2012년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사명을 바꾼 현대라이프가 보험업을 영위하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현대가의 3세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맏아들이다. 현대해상은 고 정 회장의 7남인 정몽윤 회장이 최대주주(21.80%)로 경영을 도맡고 있다. 현대해상은 1999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됐지만 범 현대가의 일원으로 집안 중대사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지선 회장이 손보업에 진출하려면 집안의 어른인 정몽윤 회장에 먼저 재가를 얻어야 하는 껄끄러울 절차가 남아있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쪽은 범 현대그룹 계열사가 3개나 있어 사실상 집안의 불문율이 깨진 것이나 다름없지만 보험업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며 "현대백화점이 기존 불문율을 어떻게 여길지는 집안 내부의 일이라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백화점이 보험업에 뛰어든다고 해도 유통업과 보험업 사이의 시너지를 제대로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