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란 한국해양대 해양금융·물류대학원 교수
2015-05-18
세계 해운업계의 경기 현황을 대표하는 지수인 발틱해운지수(BDI)가 1985년 집계 이래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해운업계의 불황은 해운회사 간의 과잉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국내 해운기업은 자금력 부족으로 외국 선사들의 확보 경쟁이 치열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 시기를 놓치고 있다.
구루, 경험·지식 집적한 전문가
창조 기반 되는 '똑똑한 실패' 있다
실패서 배울 때 인재 양성되는 법
포용·수평 문화 정착이 최대 관건
그래야 창의적 도전 나올 수 있다
정부·기관·업계, 적극 지원 필요
해운업의 불황 타계를 위해 해양금융종합센터, 해운보증기구 설립, 추후 해운거래소의 설립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가 상당히 고무적이긴 하지만, 왜 우리는 매번 효과적인 투자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국내 해운기업과 달리 그리스 선주들은 불황기에 생존할 수 있는 강인한 재무적 체력을 비축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는 장기간에 체득화된 그리스 선주들의 리스크 관리 노하우가 집결되어 있다.
2008년 이전 해운업계 주요 브레인들 중에 현재까지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는 거의 없다는 국내 해운업계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해운 호황기에 장밋빛 전망으로 과도한 투자를 했으니, 마땅히 경영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다. 일반적으로 실패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부주의나 능력 부족으로 인한 실패가 아닌, 창조적 성과 창출의 기반이 되는 똑똑한 실패마저도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이러한 불황의 사이클에 비슷한 의사 결정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해운항만업계에는 그리스 선주처럼 불황을 타개할 만한 구루(Guru)가 있는가를 심도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루는 인도의 산스크리트로 '선생'이란 뜻이다. 현대에 와서 그 의미가 확장되어 특정 분야의 경험과 지식이 많은 전문가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해운업에서는 단순한 선박의 운항 해사기술 관련에서부터 고차원적인 선박과 화물 확보 대안을 조합해 나가는 비즈니스까지 의사 결정이 수시로 이루어고 있다. 특히 불황 때 리스크를 관리하는 구루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해운기업의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해운기업은 호황 뒤에 망하는 구조였다. STX, 대한해운 등의 사례에서도 겪었다. 이에 나는 해운항만업계의 구루를 양성하기 위해 4가지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실패에 대한 포용력 있는 문화이다. 국내 해운기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직원이 해운경기 사이클에서 소신껏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원은 실패로 인한 비난, 해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실패 위험이 높은 과제는 시도조차 꺼린다. 해운항만업계에는 실패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실패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는 역량을 동시에 보유한 구루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포용력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둘째, 실패 내용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평적 기업 문화이다. 해운업계 개별 기업들은 의사 결정과 관련해 실패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실패를 숨기면 유사한 실패가 반복해서 나타나고 더 큰 실패로 이어진다. 해운업계는 수직적인 문화에서 탈피하여, 직원이 스스로 실패했다고 판단했을 때 두려움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근무 환경 마련, 심리적 안정감 조성이 필요하다. 현재 글로벌 업계 1위인 머스크의 경영전략 변화 등에 맞추어 국내 해운기업을 포함한 추종 기업들이 머스크 따라 하기 식 경영 전략을 취하고 있다.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진정한 차별적 경쟁우위는 최고의 전문성과 창의적 열정이 어우러진 구루가 많은 수평적 기업문화가 체화되어야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실패 경험을 자산화해야 한다. 해운업은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임에도 불구하고 해운기업의 의사 결정과 관련한 데이터베이스(DB)가 구축되어 있지 못하다. 이를 위해 정부 및 관련 업계에서 공동으로 해운항만업계의 구루를 양성하기 위한 성장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IBM 등 선진 기업에서는 전문성 수준에 따른 전문가 경력 관리제도가 일반화되어 있다. 창의적 도전을 격려하는 해운항만업계의 구루들이 소신껏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확산해야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조지 버나드 쇼의 명언 중에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라는 말이 있다.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실수나 부정으로 간주하기보다는 해운항만업계의 조직 차원으로 끌어올려 구체적인 해결책을 촉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업계뿐만 아니라 정부 및 관련 기관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운항만업계의 구루 양성은 해운기업의 건강한 체질 개선 및 해운경기 불황 타계를 위한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