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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회계기준 IFRS4 ‘태풍’ 보험업계 무방비-자본금 확충 뒷전…‘제2알리안츠’ 주의보 1조원이상 추가자본 필요생보사만5곳.전체42조필요

Bonjour Kwon 2016. 7. 11. 18:18

 

IFRS4 2단계에서 저축성 보험은 매출이 아니라 고스란히 부채로 잡힌다. 저축성 보험료는 이자를 붙여서 돌려줘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수익이 아니라 부채로 봐야 한다는 게 IFRS의 도입 취지

 

 

2016.06.20

 

오는 2020년 적용되는 국제회계기준 2단계(IFRS4 phase 2, 잠깐용어 참조) 도입을 두고 보험업계와 금융당국 간 시각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IFRS4 2단계는 보험사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회계기준 변경만으로 보험사는 부채가 크게 늘어나 최대 수십조원의 자본을 추가 확충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줄곧 보험사 CEO(최고경영자)에게 “실질적인 자본 확충 방안을 마련하라”고 채근 중이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이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고 있다.

 

IFRS4 2단계는 보험업계에 불어닥칠 새 회계기준의 ‘태풍’으로 보면 된다. 보험사 부채는 대부분 앞으로 보험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험금이다. 지금까지는 이 부채를 시가가 아닌 원가로 평가해왔다. 원가 방식으론 보험 가입 당시 금리 등 외부 변수를 반영해 부채를 계산한다. 때문에 부채의 변동성이 거의 없다. 부채 평가 기준이 시가로 바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 수년간 꾸준히 내려온 금리 차이만큼 보험사 부채도 크게 늘어난다.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현 수준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려면 그만큼의 자본금을 미리 쌓아두는 수밖에 없다. 고령화를 비롯한 인구구조 변화에 저금리로 가뜩이나 영업환경도 최악인 마당에 회계기준 변경만으로 수십조원의 자본금을 쌓아야 할 판이니 보험사 입장에선 결코 달가울 리 없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5개 생명보험사의 부채는 총 661조원.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IFRS4 2단계 도입을 위해 2014년 말 기준 1조원 이상의 추가 자본이 필요한 생보사만 5곳에 이른다. 전체 보험업계로는 42조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보험사들이 집중적으로 팔았던 고금리 저축성 보험이다. 저축성 보험은 그동안 보험사 외형을 확장하는 주된 수단이었다. IFRS4 2단계에서 저축성 보험은 매출이 아니라 고스란히 부채로 잡힌다. 저축성 보험료는 이자를 붙여서 돌려줘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수익이 아니라 부채로 봐야 한다는 게 IFRS의 도입 취지다. 쉽게 말해 매출액이 100인 회사가 그중 50이 저축성 보험이라면 앞으론 이를 제외한 나머지 50만 매출로 잡힌다.

 

결코 간단치 않은 상황이지만 정작 보험사들은 실질적인 대비를 거의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삼성과 동부, 미래에셋생명, 현대해상을 비롯한 대형사 정도만 TF(태스크포스)를 꾸렸을 뿐 중소형사는 시늉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이 각 보험사들로부터 IFRS4 2단계 준비 계획을 받아봤지만 구체적인 자금 확충 방안 등을 제대로 제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나마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본사 사옥을 비롯한 보유 부동산 매각으로 각 1조원, 5000억원대 현금 마련에 나섰지만 예상되는 자본금 확충 규모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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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산 시가평가 추진

 

새 RBC 기준도 대폭 강화

 

단임 CEO들 모르쇠로 일관

 

이런 가운데 당장 상당수 보험사 CEO들이 1~2년 내 교체된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5개 생명보험사 중 16개 기업 CEO 임기가 2017년 중 끝난다. 임기 만료기간을 2018년까지로 늘리면 대부분 CEO의 임기가 종료된다. 기업 오너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2017년 3월 임기 만료) 정도만 2020년까지 CEO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손해보험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10개 주요 손해보험사 CEO 중 2018년까지 임기를 마치는 CEO는 8명이다.

 

CEO들이 IFRS4 대비를 소홀히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에 대비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 자신들 임기를 보장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생보사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새 회계기준을 도입하려면 전산인프라 구축이나 인력 추가 채용 등 직간접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영업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데 연임이 보장되지도 않는 CEO에게 얼마가 들지 모를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보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IFRS 연결재무제표를 처음 도입할 때 서로 눈치를 보다 먼저 나선 곳들이 당국에서 지적을 받은 뒤에야 슬금슬금 움직였던 전례를 밟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CEO들이 IFRS4 대비에 선제적으로 나서길 망설이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 사실 보험사가 가장 겁내는 것은 금융당국이 도입을 검토 중인 신지급여력(RBC) 제도다. RBC는 쉽게 말해 보험사가 가입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이 수치가 당국이 정한 기준에 미달할 경우 은행으로 치면 ‘뱅크런(일시에 예금을 빼가는 현상)’에 버금가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 공적 부조 성격이 강한 보험업 특성상 고객들이 돈을 빼가는 사태가 빚어진다면 당국으로서도 그 파장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다.

 

금융당국은 신 RBC 제도에 대해 큰 그림만 그려놨을 뿐, 아직 세부적인 기준은 정하지 못한 상태다. 금감원은 일단 IFRS4 도입에 맞춰 시가평가 대상을 부채뿐 아니라 보험사가 보유 중인 모든 자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자산-부채=자본’이라는 회계 원칙에서 IFRS4 2단계 체제로 부채 부분만 시가평가를 하고 자산은 시가로 평가하지 않으면 재무지표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는 게 당국 판단이다. 금감원은 유럽에서 올해 도입한 자본건전성 규제 기준 ‘솔벤시2’를 참고해 이런 밑그림을 마련했다.

 

솔벤시2를 본뜬 방법으로 RBC를 새로 산출하면 현재 적정 수준이라는 150%를 한참 밑도는 보험사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16조6510억원으로 생명보험업계 11위였던 독일계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이 단돈 35억원이라는 헐값에 팔린 것도 솔벤시 체제에 소요되는 자본금 추가 확충에 대비하기 위해 서둘러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본사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신 RBC 제도는 보험 영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일정 기준 미달 시 금융당국의 시정조치도 받는다. 신 RBC 제도가 결정된 다음 자본을 어느 정도 더 쌓아야 보험 영업에 지장을 받지 않을지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데 금융당국은 아직 이런 기준을 확정하지 않은 채 자본을 얼마나, 어떻게 더 쌓을지 계획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으니 순서가 한참 뒤바뀐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런 배경에서 금융당국이 서둘러 신지급여력 제도를 확정하고 어느 정도 유예기간을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유럽은 올해 솔벤시2를 도입하면서 보험사가 신청하면 16년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그래야 보험사별로 향후 어느 정도의 자본금이 추가로 필요할지 정밀히 계산하고 유예기간 동안 그만큼의 이익을 유보해 자본 확충에 대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소재 한 경영대 교수는 “사실 4년도 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가장 현실성 있는 자본 확충 방법은 보험사의 이익을 유보하는 것밖에는 없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 RBC 제도 도입에 유예기간을 두는 게 필수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국은 유예기간 두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분위기다. 일단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등 채권 발행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업계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고개를 젓는다.

 

후순위채는 자본으로 인정받긴 하지만 잔존 만기가 5년 이내가 되면 자본 인정 비율이 매년 20%씩 깎인다. 그 과정에서 차환발행 비용이 계속 늘어나 또 다른 부담 요소로 작용한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길고 변제 순위도 후순위채보다 뒤다. 시장에서 소화도 잘 안 되는데 수십 개 보험사가 2020년까지 수십조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다면 투자자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당국과 보험사가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방치된다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특히 지금도 역마진에 따른 영업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부 중소 보험사의 경우 새로운 재무건전성 규제에 적응하지 못하면 회사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중하는 규제 환경이 아쉽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더 많은 자본이 요구되지만 수익성이 낮아 자본 조달이 쉽지 않고, 과거 판매됐던 손실 계약 때문에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지나치게 감독 기준을 완화하면 새 회계기준의 도입 취지 자체가 흐려질 수도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충분한 의사소통을 거쳐 투명한 규제 환경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의 총체적인 진단이다.

 

잠깐용어 *국제회계기준 2단계 국제회계기준 2단계란 2020년 한국에 도입될 예정인 새로운 회계 규칙으로 보험 부채의 공정한 가치 평가가 핵심이다. 기존에 원가로 평가하던 보험 부채(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험금)를 시가로 평가하게 돼 금리가 떨어지면 그만큼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62호 (2016.06.15~06.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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