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3
신탁법 10월 국회 제출 노후생활 어떻게 바뀌나
신탁업 진입문턱 확 낮춰
금융사가 겸업하던 신탁
법무·의료법인 등 진입 허용…자기자본 요건도 대폭 완화
맡기는 재산 종류 확대
금전·부동산·증권 등에 부채·영업·보험청구권 추가
신탁상품 한층 다양해질듯
신탁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소비자가 자신의 재산을 관리·처분할 권한을 금융회사 등에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신탁시장의 국내 규모는 2013년 154조원에서 지난해 9월 710조원으로 불어났다. 외형만 보자면 다섯 배가량으로 커졌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신탁시장 규모는 한국이 42.7%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590%, 일본은 171%에 달한다. 신탁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인식도 금융투자상품 중 하나일 뿐이다. 까다로운 규제와 엄격한 운용조건 탓에 매력도가 떨어지는 상품이다.
금융위원회가 12일 내놓은 신탁업 개편 방안에는 이 같은 신탁시장을 대대적으로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신탁을 저금리·고령화 시대의 종합자산관리 수단으로 키우겠다는 게 금융위 계획이다.
◆진입 문턱 확 낮춘다
개편 방안의 핵심은 신탁업 진입 문턱을 낮추고 신탁을 통한 자산운용 범위를 대폭 확대한 데 있다. 지금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신탁을 금융투자업의 하나로 규제한다. 이 때문에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기존 금융회사가 신탁업 인가를 받아 겸업하는 형태다.
인가 조건도 까다롭다. 종합신탁업자는 자기자본 250억원 이상, 금전신탁사업자는 130억원 이상, 부동산신탁업자는 1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신탁업으로 운용 가능한 재산도 일곱 가지로 제한하고 있다. 예·적금 등 현금, 부동산, 유가증권, 동산, 지상권·전세권 등 부동산 권리 등이다.
촘촘한 규제로 신탁업무를 하는 은행·증권·보험사의 영업전략은 천편일률적이었다. 특정금전신탁(MMT)에 넣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으로 운용하거나 정기예금형 금전신탁에 넣어두는 게 대부분이었다.
금융위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처럼 신탁업 진입 문턱을 낮추고 운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먼저 병원, 로펌 등 비(非)금융회사의 신탁업 진출을 허용한다. 예컨대 증여·상속 관련 법률자문에 강점이 있는 로펌은 유언신탁전문회사가 될 수 있게 인허가를 내주겠다는 의미다. 병원도 치매요양 전문, 암 등 중증질환 치료 전문 신탁병원으로 허가받을 수 있다. 은행, 증권사가 아닌 자산유동화전문회사나 부실채권관리회사가 신탁업에 뛰어들 수도 있다.
◆다양한 신탁상품 나온다
당장 올해 말 법 개정이 이뤄지면 새로운 형태의 신탁상품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게 생전신탁(유언대용신탁)이다. 금융소비자가 자신의 재산을 맡기면 신탁회사가 생전엔 본인을 위해, 사후에는 자녀·배우자를 위해 재산을 운용하고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지금도 생전신탁을 판매하는 곳은 있지만 수요는 거의 없다. 앞으로는 자산 외에 부채까지 생전신탁으로 맡길 수 있게 돼 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를 들어 신탁가입자가 본인 아파트와 주택담보대출, 퇴직금을 포함한 전 재산을 생전신탁으로 맡기면 신탁사업자가 자산을 관리·운용하면서 가입자 사망 이후엔 대출금을 갚아주는 상품도 나올 수 있다.
생명보험청구권 유언신탁도 주목되는 상품이다. 지금은 보험청구권은 신탁 대상이 아니지만 앞으로는 유언신탁을 통해 보험금을 받을 권리를 자녀들에게 안정적으로 넘겨줄 수 있다. 신탁가입자 사후에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는 보험금 중 일부를 생활비로 주다가 성년이 된 뒤 목돈으로 지급하는 등 재산관리를 신탁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서비스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탁업 개편안의 세부 그림은 오는 6월까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마련한 뒤 10월 정기국회에 관련 법 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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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재산, 제도권 편입해야
기사입력 2017.01.23
금융당국이 올해 신탁업법의 별도 제정을 추진하고 나선 가운데 재벌가의 사적 재산 불리기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찮다. 신탁업법 별도 제정을 통해 누구나 전문 신탁업자를 신청할 수 있어 재벌가의 '패밀리오피스'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재벌들은 세금 혜택이 많은 재단을 통해 사적 재산을 비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자칫 이 같은 방법은 비자금 조성으로 비쳐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난의 시각도 많다.
그러나 전문 신탁업자를 설립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재벌가의 패밀리오피스(전문 신탁업자)가 설립되면 그 자금이 '제도적인 방법'으로 국내외 대체투자 자금이나 주식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동안 재단 등 그림자금융처럼 불어났던 재벌들의 재산이 전문 신탁업자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으로 편입되면 거래량과 유통이 활발해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들의 재산은 수조원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재벌들이 불린 재산을 사회에 반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겠지만 국내 자본시장에서 합법적으로 운용될 경우 자본시장의 유통이 더욱 활발해져 재벌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의 재산도 함께 불어난다. 재벌들의 자산은 일단 수억원을 뛰어넘기 때문에 이 같은 자금이 국내 자본시장의 거래를 활성화시킨다. 거래가 많아지면 주식과 채권 가격에 탄력이 붙는다. 재벌들의 자금이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을 불러일으키는 만큼 한편으로 사회 환원적인 역할도 한다. 재단의 자산운용 방식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재벌들이 뒤로 재산을 불려왔다면 이들을 전업 신탁업자로 유도해 투명하게 재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해외 자산가들은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기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PEF)에 출자를 하거나 기관투자가처럼 대체투자에 적극 나서기도 한다. 만약 불공정거래에 연루됐다면 과징금 및 처벌을 통해 엄벌을 가하면 된다. 이제 우리도 재벌들에게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들의 패밀리오피스가 국내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고 일반 투자자들의 수익도 올려주도록 해주자. 그들만 돈 버는 세상이 아닌 일반 투자자도 함께 돈벌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그들의 재산을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시키자. 그것이 진정한 '국민 재산 늘리기 프로젝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