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트럼프 시대] 2017-01-18
(3) - 한경·KOTRA 공동기획
3년 전 수돗물 오염사고 난 플린트시
2만여명 납 중독에 주민들 고통…예산난에 상수도 교체 5%도 안돼
해저터널 추가 공사하는 노퍽시
법 제정해 민간업체 참여 기회…재정부담 덜고 교통인프라 개선
민간투자 유도하는 트럼프
82% 세액공제에 추가 세감면…민·관 합작시장 연 150억달러 전망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는 2014년 4월 수돗물 오염사태로 2만여명의 어린이가 납에 중독되는 사고를 겪었다. 지난해 초엔 주 전체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문제가 발생한 지 3년이 다 돼 가지만 대응은 생수 공급, 의료 지원, 관련자 소송 등에 그치고 있다. 노후 파이프 교체공사를 포함한 근본적인 처방은 더디기만 하다.
플린트 시의회에서 만난 에릭 메이스 시의원은 “최소 3만1000가구의 상수도관을 바꿔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5%도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방정부도, 주정부도 모두 재원이 빠듯하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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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 부족에 인프라 사고 빈번
미국이 노후한 인프라로 신음하고 있다. 플린트시의 납 수돗물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도로가 꺼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철도차량 탈선사고가 나는 등 노후 인프라로 인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토목학회(ASCE)는 4년마다 발표하는 공공인프라 평가(2013년)에서 미국의 교통, 에너지, 상하수도, 전력, 공항, 수로·항만 등 인프라시설 수준을 ‘D+’로 평가했다. 재건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미국의 공공인프라 수준을 16위로 평가했다. 다른 선진국인 일본(9위), 독일(11위)에 크게 뒤처졌다.
개선이 시급하지만 재원이 부족해 발걸음은 더디다. 미국은 앞으로 10년간 노후 인프라 개·보수 및 신설에 총 3조3000억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방 및 주정부가 인프라에 쓸 수 있는 재원은 1조8000억달러에 불과하다. 매년 1400억달러(약 168조원) 정도의 예산이 부족하다.
공공+민간투자 방식 급부상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남쪽 노퍽시와 포츠마우스시를 연결하는 미드타운 해저터널은 1962년 개통된 뒤 55년이 지났다. 너무 오래된 데다 통행량이 많아 개·보수와 추가 터널 건설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2012년 추가 터널 공사에 들어갔고, 조만간 개통할 예정이다.
추가 터널은 민·관 합작 투자사업(PPP) 방식으로 건설됐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정부가 공공인프라 건설에 돈을 댔다. 재원이 없으면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갈수록 나빠지는 재정 여건으로 인프라 개선에 투입하는 돈은 줄어들었다.
버지니아주는 재원 조달방법을 바꿨다. 1995년부터 민간업자의 교통인프라 사업 참여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드타운 해저터널은 SKW 등 민간 6개 업체가 자금 조달부터 시공까지 일체를 맡았다. 주정부는 약간의 재정 지원과 행정 절차를 처리했다. 민간 컨소시엄은 터널 개통 후 58년간 시설을 운영한 뒤 주정부에 소유권을 이전한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BOT(건설-운영-양도) 방식이다.
오브리 레인 버지니아주 교통부 장관은 “민간업자에게 연 10~12% 정도의 수익을 보장해준다”며 “민·관합작이어서 재정 부담을 덜면서도 필요한 인프라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세금 감면까지 제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도 민간투자를 전제로 한 1조달러 인프라 투자를 공약했다. 민간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투자금의 82%를 세액공제해주고, 미국 기업이 해외에 쌓아둔 수익금을 들여와 인프라에 투자하면 미국 내 환입 시 10% 저율과세와 추가 세감면 혜택을 주겠다고 밝혔다. 주 및 지방정부에는 환경규제와 인허가권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케네디스쿨)은 앞으로 PPP시장이 연평균 16.5% 성장해 2018년이면 연 15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차기 트럼프 정부가 내건 세감면 혜택까지 더해지면 시장은 더 커질 수 있다.
관건은 민간 업체의 사업 참여 가능성과 의회의 의지다. 민간업체를 ‘유인할 만한’ 인프라 사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사업이 있더라도 정치권의 반대도 돌파해야 한다. 민주당 상·하원 지도부는 트럼프 공약에 찬성하고 있다. 오히려 공화당 주류가 미지근하다.
인프라 투자가 트럼프 정부의 최우선 순위로 오를지도 관심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조달러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겠지만 임기 초반의 중점 과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오바마케어(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한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 폐지, 세제 개혁, 규제 완화 등 시급한 현안부터 처리하겠다는 의미다.
■ PPP
public-private partnership. 민·관 합작 투자사업을 말한다. 민간은 위험 부담을 지고 도로 등의 공공인프라 투자와 건설, 유지 및 보수 등을 맡되 운영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정부는 세금 감면과 일부 재정 지원을 해준다.
■ B-
미국토목학회(ASCE)가 2013년 기준으로 미국 내 주요 인프라 중 가장 높게 매긴 등급이다. 쓰레기 처리시설을 평가한 점수다. 그다음은 철도·교량(C+), 항구(C), 공원(C-), 에너지시설(D+), 학교·도로·상하수도·대중교통·항공(D) 순이었다. 인프라 전체 등급은 D+였다.
노퍽·플린트=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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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투자·자재 공급·건설 …
韓 기술 경쟁력 높아 수익 기대
vs
트럼프 공약 실현 가능성 미지수
추진해도 미국 기업만 혜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1조달러 규모의 미국 인프라 재건은 한국 기업에 기회일까, 아니면 속빈 강정일까.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이 20일로 다가오면서 미국 사회간접자본(SOC) 시장 진출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시장이 새로 열리는 시점에 맞춰 서둘러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과 진출해도 별로 기대할 게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KOTRA 워싱턴무역관은 지난 11일 서울 본사 국제회의실에서 ‘트럼프 시대의 미국 공공인프라 시장: 한국 기업의 진출 기회와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이종건 워싱턴무역관장은 “한국 건설회사들은 세계 7위의 기술 경쟁력과 4위권의 가격 경쟁력, 다양한 해외 건설시공 경험 등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 기업의 인프라 사업 참여에 대한 현지 반감 등을 감안했을 때 한국 기업이 진출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는 금융 투자, 자재 공급, 건설서비스(용역) 등 크게 세 가지다. KOTRA는 건설-정보기술(IT)-기자재-서비스분야 기업 등이 선단형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출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국책은행 등을 통해 투자 회수 기간이 긴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또 현지 중소기업, 소수민족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맺어 주(州) 정부가 발주하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따는 전략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프라 수주 때 필요한 현지 사업수행 실적을 보완하기 위한 우회 전략이다.
KOTRA는 아울러 대규모 토목공사보다 트럭 휴게소, 고속도로 휴게소, 공원, 도로조명, 주차장 현대화 등 특화된 틈새시장을 집중 공략해 사업실적을 축적한 뒤 유지 및 보수 시장에 참여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한국 정부 쪽 시각은 다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가 내놓은 인프라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미지수이고, 이뤄지더라도 미국 기업 위주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2년 제정된 미국 연방교통지원법은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미국산 우선 구매) 규정을 담고 있다. 공익 침해와 가격 급등 우려가 없고, 미국산 공급이 불가능할 때가 아니라면 도로공사의 경우 철강은 100%, 제품은 60% 이상 미국산을 쓰도록 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을 위반해 국제분쟁 소지가 있지만 미국 정부는 이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KOTRA는 이르면 상반기 미국 인프라 시장 공략을 위한 투자사절단을 구성해 버지니아 등 주정부를 돌며 진출 가능성을 타진할 계획이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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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리 레인 버지니아주 교통부 장관 인터뷰
오브리 레인 미국 버지니아주(州) 교통부 장관(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1조달러 인프라 프로젝트는 아이디어는 좋지만 너무 낙관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민간기업이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인프라 사업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공약을 조정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주가 추진하는 민자사업에 대해선 “모든 사업이 공개 경쟁으로 이뤄진다”며 “기술력 있는 한국 기업의 참여를 적극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레인 장관은 지난 13일 버지니아 노퍽시(市) 상공회의소에서 기자와 만나 주정부가 추진하는 인프라 민·관 합작 투자사업(PPP) 현황과 트럼프 당선자가 제시한 인프라 투자 공약의 성공 조건 등을 설명했다.
2014년 1월 취임한 그는 1만명의 교통부 직원을 거느리며 연간 50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버지니아는 레인 장관의 주도 아래 현재 네 건의 민자유치 건설사업을 벌이고 있다. 다른 열세 건의 사업도 준비 중이다. 버지니아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PPP를 하는 지역으로 다른 주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레인 장관은 트럼프의 1조달러 인프라 투자 공약과 관련,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인프라 투자에 소홀했고, 이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 대통령이 인프라 개선에 의욕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가 의도한 대로 민간기업이 사업에 뛰어들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원하는 충분한 수익을 오랫동안 보장해줄 인프라 투자사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레인 장관은 민간사업자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투자금의 82%를 세액공제해준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대부분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된다”며 “참여 업체가 원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사업 모델이지 세금 감면이 아니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행정 절차와 환경규제 등을 간소화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나는 민주당원이지만 환경규제가 너무 심하다”며 “사업 구상에서 착공까지 평균 3년 정도 걸리는데 환경영향 평가에만 2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는 환경영향 평가에만 5년 이상 걸린다”고도 덧붙였다.
레인 장관은 “기존 도로 옆에 새 도로를 건설해도 처음부터 똑같은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트럼프 당선자가 이런 절차를 간소화한다면 환영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지니아주에서는 진행 중인 14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사업 가운데 상당 부분이 PPP 방식을 채택했다. PPP 대부분에 외국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레인 장관은 “앞으로 기술력 있는 한국 기업의 많은 참여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주정부는 PPP 독립사무소(VAP3)를 뒀다. 사무소엔 15명의 직원이 사업에 참여하길 원하는 기업의 수요를 파악하고 우선사업대상자 선정, 입찰제안서 평가 등 실무를 하고 있다.
노퍽=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