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인가 받고도 80%는 좌초
시세보다 싼 가격경쟁력 부각에
작년 104곳 인가, 5년새 15배 ↑
대행ㆍ시공사 법적 책임 없어
사업 불확실성 높아 위험 부담
“아파트를 시세보다 20% 싸게 사겠다고 20%밖에 안 되는 성공 확률의 도박에 전 재산을 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1일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최근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섣불리 투자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05~2015년 설립인가를 받은 지역주택조합 155곳 가운데 최종 입주에 성공한 곳은 단 34곳(21.9%)에 불과했다. 지역주택조합 5곳 중 4곳은 사업이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그럼에도 지역주택조합은 갈수록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설립인가를 받은 지역주택조합은 104곳(6만9,150가구)에 달했다. 이는 2010년(7곳ㆍ3,697가구)의 15배다. 아파트 시세가 크게 오르면서 지역주택조합의 가격 경쟁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주택조합 전성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업 불확실성이 크고 그에 따른 위험을 고스란히 조합원이 떠안는 구조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업 주체인 조합원 외에 업무대행사와 시공사, 신탁사 등이 참여한다. 대행사의 경우 조합으로부터 대행수수료를 받고 사업추진을 위한 행정적 절차 등을 돕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최근 난립하는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사업을 이끄는 진짜 주인은 조합원이 아닌 대행사인 경우가 적잖다. 이들이 일부 토지주를 앞세워 조합설립 추진위를 꾸린 후 업무 대행비를 받고 조합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대행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현행 제도 아래서는 그저 대행사일 뿐이어서 사기나 자금 횡령 등과 같은 명확한 불법이 없는 한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러한 맹점을 악용해 일부 대행사는 허위ㆍ과장 광고로 조합원을 모집한다.
더 큰 문제는 현행 주택법 상 주택조합 설립인가를 받기 전이라도 별다른 절차 없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에 따라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곳에 사업을 하겠다며 조합원을 모집하거나 사업을 추진할 땅도 확보하지 않은 채 조합원을 모집하는 사례도 없잖다. 주택조합을 두고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거나 ‘누워서 돈 먹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지난 2015년 부산 해운대 재송동에서는 같은 부지에 2개 조합이 서로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결국 사업이 무산되며 양측 조합원 1,000여명은 투자금을 날렸고 추진위원장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말로를 피하지 못했다.
시공사 선정 역시 문제다. 주로 브랜드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들이 시공사로 참여하게 되는데, 공사계약 체결 전인 ‘시공 예정사’ 단계에선 아무런 책임도 부여되지 않는다. 많은 조합원들은 아파트 브랜드를 보고 조합 가입을 결정하지만 시공 예정사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시공 예정사는 사업 실패의 직접적 손해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땅이 없는 상태에서 조합원을 모집한 뒤 그 돈을 받아 땅을 사는 구조로 진행되다 보니 당연히 피해자가 속출할 수 밖에 없다”며 “토지매입의향서가 아니라 진짜 토지를 일정 수준 이상 매입해야만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지역주택조합원의 눈물] 탈퇴 높은 벽… 총회나 대의원 회의 거쳐야
업무추진비 사용 땐 환불 어렵고
계약 해지 위약금도 떼일 가능성
게티이미지뱅크
덜컥 지역주택조합원이 됐다 사업이 지연되며 탈퇴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탈퇴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적잖다.
우선 국토부의 ‘지역ㆍ직장주택조합 표준규약서’는 “조합원의 개인 사정에 따라 탈퇴가 빈번하게 이뤄질 경우 사업추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임의탈퇴를 불허하고 있다. 법적으로도 탈퇴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부득이한 사유로 탈퇴해야 할 때도 조합 총회나 대의원 회의 의결을 거쳐야 최종 결정이 된다.
더구나 우여곡절 끝에 탈퇴할 수 있게 되더라도 업무추진비 등 이미 사용된 금액은 돌려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해당 규약서는 ‘탈퇴시 납입금에서 소정의 공동부담금을 공제한 뒤 잔액을 환급청구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지급한다’고 돼 있다. 계약서의 내용에 따라 계약 해지 위약금도 떼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전매가 가능한 건축사업승인 이후까지 기다렸다 분양권을 파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출구 전략이 되고 있다. 그러나 토지확보 지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이 마냥 지연되기 십상인 지역주택조합의 특성상 전매가 언제 가능할 지조차 불확실한 게 현실이다.
문제가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주택법 개정안’을 마련해 오는 6월3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개정안에는 조합원 탈퇴 시 납부 금액의 환급 시기와 절차를 조합 규약에 명문화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미 조합원 규약에 탈퇴 조건 및 납입금 환불 규정이 있는 곳도 제대로 이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만큼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조합이 규약대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민사소송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지역주택조합원의 눈물] 댓글 속 고통 “가입 땐 미혼, 입주 땐 애가 유치원생"
“입주까지 8년이 걸렸습니다. 평당 800만원에 시작한 조합아파트가 입주할 때 보니 결국 일반 분양보다 더 비싼 평당 1,500만원이 든 셈이더군요.“
2일 ‘지역주택조합원의 눈물’ 기획 기사에 달린 댓글 내용이다. 네이버 아이디 ‘rupt***’는 “내 집은 생겼지만 어마어마한 추가 분담금 때문에 사실상 빚으로 입주를 한 꼴”이라며 “지역주택조합은 인생이 망가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주택조합의 피해 사례와 문제점을 다룬 기사가 나간 뒤 온라인에서는 지역주택조합원이 됐다 피눈물을 흘린 경험담이 잇따랐다.
경기 평택시의 한 지역주택조합에 투자했다는 네이버 누리꾼 ‘486g***’는 “시공사가 몇 차례 변경됐고 이 때마다 업무 추진비로 몇백만원씩을 요구하며 계약서를 변경했다”며 “대출받은 돈을 넣다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나 입원까지 했다”고 한탄했다. 아이디 ‘kfbs***’도 “조합에 가입할 당시에는 총각이었는데 입주할 때는 애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고 적었다. ‘radi****’는 “말로만 조합원이 주인이지 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돈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도 모르고 조합장이나 대행사를 제지할 방법도 없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부실한 정부 관리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이디 ‘갈*’는 “문제가 많은데 정부가 규제를 안하고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네이버 아이디 ‘tame***’
는 “잘못된 줄 알면 바꿔야 하는데 정부가 두 손을 놓고 있다”며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분양 대행사에서 10년간 떳떳하게 근무했다는 ‘ange**’도 “요즘 지역주택조합 대행사들 때문에 직업이 욕먹고 사기꾼 취급 받는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지역주택조합이 조합원들의 취지에 맞게 잘 진행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문제가 많은 만큼 법을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모든 지역주택조합이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없지 않았다. 누리꾼 ‘puma**’는 “성공 사례도 있는데 일부 몰지각한 업체들 때문에 정상적으로 추진되는 사업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