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처펀드.벤처기업.신기술금융

10조풀면 뭐하나, 안정된 벤처에만 투자…문제는 모험 않는것.잘나가는 기업엔 자금 밀물…초기 벤처는 돈 가뭄 심각

Bonjour Kwon 2017. 11. 18. 21:00

2017.11.17

 

될성부른 싹 찾아내는 투자심사역도 태부족

더이상 스타벤처 안나와 해외벤처로 눈 돌리기도

 

◆ 新벤처시대 (下) / 고장난 벤처생태계…현장의 목소리 ◆

 

지난 15일 경기도 판교 소프트웨어융합클러스터에 입주한 스타트업 엠셀의 지승현 대표(왼쪽 첫째)가 팀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엠셀은 SW 중심 사회 구현에 나선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열선 없이 늘어나면서 발열이 되는 섬유인 `면 발열`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한주형 기자]

지난 15일 판교테크노밸리에서 만난 음향기기 제조 벤처사업가 A씨. 벤처투자금이 몰려오고 있다는 말에 뜻밖의 씁쓸한 웃음만 짓는다.

 

"정부는 늘 기술 중심 회사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약속해왔죠. 하지만 현실은 달라요. 매출이나 재무 상태를 봐요. 결국 검증된 회사에만 돈이 흘러가는 구조이죠. 저희처럼 연구개발하느라 적자인 기업은 투자금 모으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A씨는 수익성과 안정성만 강조해 투자 기업의 폭을 좁히지 말고 적자 기업도 장래성을 보고 투자하는 모험자본이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보기술(IT) 벤처를 하고 있는 B씨의 생각도 같다.

 

그는 "벤처 육성 자금이 부족해 스타 벤처가 탄생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며 "돈이 절실한 벤처가 아니라 이미 잘나가는 벤처에만 돈이 몰린다. 이름만 모험자본이지 실제는 모험자본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가 향후 3년간 10조원을 풀어 혁신창업 기업을 돕겠다고 했지만 현장은 돈만 푼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지난 정부부터 벤처시장에 돈이 대거 유입됐고 지금도 매년 2조원 이상씩 풀리고 있다.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는 오히려 `벤처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수준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정부가 너무 많은 돈을 한꺼번에 풀면 벤처기업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해서 실제 기업 가치보다 더 높게 평가되면서 오히려 투자금 회수를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95년 인터넷 포털 업체 `다음` 창업 멤버로, 지금은 스타트 기업에 자금과 멘토링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터를 하고 있어 누구보다 시장 바닥을 잘 안다.

 

 

지금 벤처시장은 돈은 넘치는데 진짜 필요한 기업에 수혈되지 않고, 벤처기업은 계속 급증하고 있지만 `스타 벤처`로 도약한 곳은 찾아보기 힘든 게 현재 벤처 생태계의 모습이다. 인수·합병(M&A)이나 코스닥 상장 등 자금 회수 시장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벤처시장의 `돈맥경화`를 걷어내지 못하면 제2 벤처 붐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송세경 퓨처로봇 대표는 "`돈을 대줄 테니 일단 먼저 창업하라`고 서두를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부터 스케일업(성장), 엑시트(회수)까지 전 과정에서 벤처 생태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특히 `데스밸리`(창업 3~7년 차)를 넘어설 수 있게 도와줘야 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벤처 지원 자금이 원활하게 흘러가려면 엔젤투자, 액셀러레이터 등 진성 모험자본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들처럼 리스크를 껴안고 창업 아이디어만 보고 투자하는 진성 모험자본이 국내에는 거의 없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전 세계에서는 벤처 액셀러레이터 2000여 개가 활동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단 20여 개뿐이다. 2015년에 P2P금융 `위펀딩`을 창업한 이지수 대표는 "벤처기업에 투자 가능한 유동자금은 이미 시중에 충분한 상태"라면서도 "국내 벤처캐피털들은 서로의 인맥에 의존해 소극적인 투자활동을 펼치는 경향이 강하다"고 귀띔했다. 투자금 회수 안정성을 위해 여러 개의 벤처캐피털이 이미 검증된 유망 벤처기업 한 곳에 서로 나눠 투자하는 `클럽 딜`이 관행화돼 있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투자할 때는 기술력이 뛰어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벤처가 아니라 기술보증기금 등에서 벤처 인증을 받은 곳 중심으로 투자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벤처 자금시장은 진짜 돈이 필요한 기업이 아니라 이미 잘나가는 기업에만 돈이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극심하다.

 

투자할 기업이 없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벤처 확인 공시시스템 `벤처인`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은 2015년 3만개를 돌파해 올 11월 현재 3만5000개에 달한다. 벤처기업은 급증하고 있지만 과거 네이버, 카카오, 휴맥스 같은 스타 벤처가 몇 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백여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인공지능(AI)이나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대표 기술에 투자하려고 국내 벤처들을 물색해봤지만 적합한 기업을 찾지 못했다"며 "연간 투자금의 40%가량을 해외 벤처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당장 잘되는 벤처기업에만 돈이 몰려 진짜 성장성을 보지 못하다 보니 우버나 페이스북 같은 확실한 글로벌 유니콘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을 발굴하지 못하고, 결국 해외 벤처 투자로 눈을 돌리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다.

 

[신수현 기자 / 이영욱 기자 / 최현재 기자]

 

ㅡㅡㅡㅡㅡ

IPO까지 13년…M&A는 가뭄에 콩 나듯

 

2017.11.17

 

◆ 新벤처시대 (下) / 투자금 회수 `출구전략` 어려워 ◆

 

벤처기업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되찾을 회수 시장이 막혀 있는 것도 문제다.

 

벤처캐피탈협회 조사에 따르면 작년 신규 기업공개(IPO) 기업의 소요 기간은 설립 이후 평균 13.1년이나 걸렸다. 지난해 회수된 벤처캐피털 자금 1조315억원 중 IPO를 통한 자금 회수가 2817억원(27.4%)으로 가장 많은데 자금 회수 기간이 너무 긴 것이다. M&A를 통한 회수액은 329억원으로 3.1%에 그쳤다. 결국 벤처기업이 상장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기까지는 너무 길고 M&A 시장도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벤처기업 투자금 회수 시장은 IPO, M&A, 세컨더리 펀드 지원, 장외 주식·채권 매각 등으로 구분된다"며 "M&A는 쉽지 않고 국내 세컨더리 펀드 시장은 활성화가 덜 됐고,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인 IPO인데 IPO는 통상 기업 설립부터 10년 이상 걸려 회수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우수 벤처 인력을 유치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벤처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NHN, 넥슨 등 정보기술(IT) 기업의 신입사원 평균 연봉이 5000만원을 웃도는 현실에서 스타트업이 우수 인력을 영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핀테크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C대표는 "IT 관련 우수 직원을 뽑을 때 유수 벤처기업같이 다 맞춰줄 수 없는 연봉이 항상 문제가 된다"며 "정부가 원활한 인재 영입을 위해 스톡옵션 행사 이익에 대해 20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주기로 했지만 인재 영입의 당근이 될 수 없다"며 "벤처캐피털 업체들이 최대주주가 직원 스톡옵션을 줄 수 있는 지분을 전체 발행 주식의 5~7% 정도로 제한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을 휴학한 뒤 `짤방`을 쉽게 보낼 수 있는 서비스업체 `짤키`를 설립한 20대 청년 사업가 김재준 대표는 대학생 창업에 대해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정부에서 대학생 창업을 권장하지만 정부로부터 창업 지원금을 받으려면 회사 구성원 중에 삼성 등 대기업 경력자나 박사 학위 소지자 등이 있는지 먼저 보자고 한다"며 "이 때문에 대학생들끼리만 창업을 하는 것은 어렵다. 이번 정부 발표에도 대학생을 위한 창업 지원책이 빠져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ㅡㅡㅡㅡㅡ

 

닥치고 창업` 밀어붙이기보단 재기 가능한 생태계 조성 먼저

2017.11.17

 

◆ 新벤처시대 (下) / `창업멘토` 안경수의 조언 ◆

 

 

"1998년에는 벤처가 곧 IT기업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은 IT를 기반으로 한 세상 모든 것들이 스타트업의 도전 영역이 됐다."

 

스탠퍼드대 공대 박사에다 글로벌 기업 33년 경험으로 글로벌 벤처업계에 폭넓은 인맥을 보유한 안경수 전 노루페인트 회장은 최근 실리콘밸리와 한국을 오가며 스타트업 멘토로 활동 중이다. 그는 "20년 전 당시 벤처 열풍은 외환위기, 정권교체, Y2K 테마주 등 우여곡절로 점철된 과도기였다"고 평가하며 지금은 그때와 달리 벤처 희망의 징후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안 전 회장은 "스타트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 생태계를 혁신하는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찬성"이라며 "고령화 시대에는 기술혁신 이외엔 성장동력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려도 많다. 무엇보다도 스타트업의 85%는 3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현실의 `높은 벽`이다.

 

안 전 회장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스타트업들의 성공 확률을 최대한 높이는 것인데, 지금은 `닥치고 창업` `닥치고 일자리` 분위기만 팽배해 있다"며 "벤처기업은 본질적으로 실패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들이 실패했을 때 재기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안 전 회장은 "스타트업 육성에 성공한 국가들은 모두 청년인재들에게 기업가 정신과 혁신 DNA를 철저히 교육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그러나 지금 한국 교육당국은 입시제도, 이익단체 문제, 사교육 등 3대 현안에 매몰돼 이런 부분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들이 성공할 생태계가 한국 경제에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생태계라면 사자도 있고 노루도 있고 미생물도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한국의 생태계에는 사자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기존 대기업들이 스타트업과 함께 성장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이 벌어들일 이익을 선점하려는 구조라는 것이다. 결국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청년들에게 창업을 하라는 것은 알몸으로 정글에 뛰어들라는 것과 다름없다.

 

안 전 회장은 대기업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는 "교육기관들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에서는 대기업도 훌륭한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요람이 되어야 한다"며 "오늘날의 네이버 역시 시작은 삼성SDS의 사내 벤처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업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안 전 회장은 "한국 금융사들이 벌어들이는 이익의 대부분은 아직 부동산 담보대출과 같은 예대마진"이라며 "궁극적으로 미국식 투자은행(IB) 모델이 정착되면서 투자에 따른 실패와 위험까지 안을 수 있어야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