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8
"칼라일, 한국기업 추가 인수 고려…대기업 계열사 주목"
"월가서 성공하려면 멘토 많은 큰 조직서 배워라"
이규성 칼라일그룹 공동 최고경영자(CEO) 내정자가 최근 미국 뉴욕 칼라일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향후 경영 목표와 글로벌 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내정자는 칼라일그룹에 2013년 합류한 뒤 4년 만에 차기 리더로 부상하면서 월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한국에서 추가 투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은 칼라일에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글로벌 빅3'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칼라일그룹의 공동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한국계 미국인 이규성 내정자(52)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글렌 영킨 내정자(51)와 함께 내년 1월부터 전체 운용자산 1700억달러(약 187조원) 규모의 칼라일 공동 CEO로 활약하게 된다. 2013년 칼라일그룹에 부최고투자책임자(Deputy CIO)로 영입된 지 4년 만에 차기 리더로 부상한 것이다. 워버그핀커스와 칼라일에서 차입매수(LBO) 투자 등 각종 투자 업무를 담당하면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그는 미국 월가의 '대나무천장'을 뚫고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한국계 돌풍을 예고했다. 이 내정자는 "한국의 ADT캡스 인수는 매우 성공적"이라며 "한국의 다국적기업이나 재벌그룹이 매각하는 특정 사업 부문이나 계열사를 추가 매입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여러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지만 섣부른 과신과 안주가 가장 우려스럽다"면서 신중한 투자 접근을 주문했다. 이 내정자가 공동 CEO에 선임된 후 심층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매일경제가 그를 미국 뉴욕 맨해튼 칼라일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만났다.
―대표에 오를 것으로 언제 알았는가.
▷칼라일 이사회와 창업자들로부터 몇 달 전에 공동대표 선임이 유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식 발표와 공시에 매우 신중해야 했으며 수개월간 준비기간을 갖고 회사와 외부에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지 숙고했다.
―칼라일에 합류한 지 4년 만에 CEO에 올랐다. 성공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에겐 큰 영광이다. 칼라일로 이동하기 전 사모펀드(PE)업계에서 21년간 근무했고 투자 부문의 다양한 트랙레코드를 쌓은 게 작용한 것 같다. 물론 칼라일로 이직하면서 (CEO 승진을) 보장받은 건 아니다. 부최고투자책임자로서 윌리엄 콘웨이 공동창업자 겸 CIO를 도와 PE사업의 투자와 경영을 관할하는 동안 내 역할은 점차 커졌다. 공동 대표로 내정된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유능한 팀과 함께 일한 건 행운이었고, 칼라일에서의 지난 4년간 많은 걸 성취할 수 있었다. 공동 창업자들이 이제는 새로운 단계로 움직여야 할 때라고 판단했고 내가 운 좋게도 딱 맞는 시기에 적절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선택을 받게 됐다.
―칼라일에서 어떤 성과를 거뒀는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PE사업으로 100억달러 가까이 투자한 게 최근 12개월 새 27% 불어났다. 이건 상당히 인상적인 성과다. 투자회사는 투자 성과로 말해야 한다. 우리는 또 '칼라일 글로벌 파트너스'라는 장기 펀드를 만들었는데 시작이 좋다. 투자금 모집 규모도 지난 4~5년 새 꽤 커졌다.
―칼라일이 한국의 보안업체 ADT캡스를 2014년 인수할 당시에 인수금액(2조1000억원으로 알려짐)을 너무 많이 쓴 게 아니냐는 업계 반응이 있었는데.
▷ADT캡스 인수는 매우 성공적이다. 칼라일이 사들인 후 이 회사의 보안 서비스 출동시간은 30% 이상 단축됐고 고객 수는 25% 늘었다. 안전사고는 16% 줄었다. 우리가 사모펀드로서 해온 방식을 똑같이 적용해 ADT캡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회사의 매출과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현금흐름이 모두 개선됐다. ADT캡스의 매각 계획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면 우리 투자자들에게 좋은 성과를 안겨줄 것이다.
―한국 기업 추가 인수 계획은. 일각에선 칼라일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는데.
▷한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매력적인 시장이다. 칼라일은 20년 가까이 한국에 발을 담갔고 앞으로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아시아 시장은 전략적으로 최우선 고려 대상이고 현재 9개 거점을 두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한국, 일본, 호주가 주요 투자 지역이다.
칼라일은 한국에서 추가적인 기업 인수 기회를 모색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 최고의 팀을 가동하고 있고 헬스케어와 소비재 기업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특히 다국적기업이나 재벌그룹이 매각하는 특정 사업 부문(carve―out)을 사들이는 데 관심이 많다. 이런 형태로 나온 기업 매물은 꽤 복잡하다. 모기업과의 관계를 정리해 독자적인 구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칼라일은 이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 ADT캡스 인수도 그런 차원이다.
한국의 중견기업을 인수하는 건 우리가 그다음으로 선호하는 유형이다. 칼라일은 세계 각지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글로벌 진출을 원하는 중견기업을 도와줄 수 있다. 칼라일이 인수한 고급 의류브랜드 몽클레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에도 브랜드는 뛰어났지만 기업 매출 규모는 작았다. 칼라일이 몽클레어의 중국, 일본 진출을 지원해줬고 이는 성장의 발판이 됐다.
한국 경제는 꽤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고 한 자릿수 낮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강력한 대기업들이 있고 이들이 혁신을 이끌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이들 기업이 마음 놓고 경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또 한국은 세계에서 인터넷 경제가 가장 발달한 곳에 속한다. 바이오나 헬스케어 등의 분야도 적극적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의 헬스케어·소비재 기업에 특별히 관심이 많다.
―한국에 북핵 문제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가.
▷한반도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 갈등, 유럽의 브렉시트 문제, 중동 불안 등 세계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가득 차 있고 투자자라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 유럽,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가 동반 성장해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감안하더라도 투자하기 좋은 배경을 연출하고 있다. 시장과 인수·합병(M&A)에 흘러 들어갈 자본도 넘쳐난다. 전반적으로 투자심리가 살아 있다. 물론 조심스럽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자산 가격이 싸지는 않다. 북핵 문제는 주요 리스크인 것은 맞지만 세계 경제를 위협할 유일한 최대 리스크라고 보진 않는다. 여러 리스크 중 하나라는 게 내 인식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을 위협할 가장 큰 리스크는 뭐라고 생각하나.
▷하나만 꼽을 수는 없지만 내가 정말 걱정하는 건 섣부른 낙관과 안주(complacency)다. 투자자들이 장밋빛에 물들어 긴장의 끈을 놓을 때가 있다. 이러한 과신과 안주가 팽배해지면 사람들이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고 너무 많이 지불한다. 이는 자산 버블을 초래하고 결국엔 추한 형태로 끝을 맺게 된다. 미국은 이미 8년, 9년째 경기 확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보통 경기 사이클은 6~8년 아닌가.
칼라일 임직원들은 투자자 미팅을 할 때마다 항상 자만하지 말자고, 경계심을 늦추지 말자고 다짐한다. 모든 시장에 자만감이 만연해 있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비트코인 시장이 과신과 안주의 실례로 지적되기도 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폭발할까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거론할 수 있는 또 다른 리스크는 정책 에러(policy error)다. 정책 입안자들이 양적완화(QE) 정책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에 대해 매우 신중하기를 바란다. 자칫 잘못하면 시장의 충격을 초래할 수 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평가는.
▷현재 미국이든 한국이든 대다수 시장이 충분히 평가(fully valued)돼 있다. 모든 자산군이 과거와 비교해 꽉 찬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저평가된 자산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과 아시아 시장을 비교하면 아시아 시장이 상대적으로 덜 비싸다. 거듭 말하지만 아시아 시장은 칼라일에 아주 좋은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시장이 유럽이다. 유럽의 경제 회복 추세는 미국에 3~4년 뒤처져 있다. 그 말은 유럽에 향후 3~4년간 경기 확장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투자는 사모펀드 투자와 다를 게 없다. 좋은 자산을 적절한 가격에 매입해서 가치를 높이고 만족할 만한 가격에 처분하는 흐름은 똑같다.
―중국 시장에 대한 우려는 없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고 금융산업의 건전성 제고나 부패 청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이 지속되는 한 중국에 커다란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의 가장 큰 이슈는 외환시장 등 구조개혁이 될 것이다. 적어도 단기나 중기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은 현재의 경제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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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 진출한 한국계 미국인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것 같다. 이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롤모델이 된다면 영광이겠다. 나는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좋은 가정교육을 받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헌신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월가 후배들이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는 건 기본이다. 또한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일원이 돼야 한다. 직장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점은 당신이 보고 배워야 할 멘토(조언자)를 찾아 그에게 배우는 것이다. 본받고 싶은 선배가 많은 직장과 신입 직원을 그런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문화를 가진 직장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멘토는 누구였나.
▷워버그핀커스에 있을 때 존 보겔스타인이라는 공동 창업자가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투자자 중 한 명이었고 그에게서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사실 칼라일로 자리를 옮겼을 때 이분들이 없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윌리엄 콘웨이, 댄 대니엘로는 놀라운 분들이고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놨다. 이들의 굉장한 에너지와 지성, 열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매일 배우는 게 있다.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도 젊은 후배들에게 나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것이다.
―유년기와 학창 시절은 어땠나.
▷나는 뉴욕주 올버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 아버지(고 이학종 전 연세대 경영대학장)는 교수이셨고 어머니를 올버니에서 만났다. 부모님이 한국에 가셨을 때 나는 여기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하버드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 들어가 많은 경험을 했다. 나의 아내와 아들이 하버드대를 나왔고 딸이 현재 하버드대에 다니고 있다. 하버드 패밀리인 셈인데 운이 좋았다. 나도 4~5세 때와 중학교 때 한국에 산 적이 있다. 서울외국인학교를 2년간 다녔다. 어머니는 여전히 한국에서 사신다. 나의 부모님이 태어나신 한국은 나에게 특별한 곳이다.
―재테크는 어떻게 하나.
▷사실 개인 돈의 상당액을 칼라일의 사모펀드, 신용사업, 부동산 투자에 묻어두고 있다. 칼라일 직원은 최고의 투자자들이고 이들을 믿는다. 굳이 개인 투자를 복잡하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 최근 12개월간 칼라일 사모펀드사업의 가치는 27% 불어났다.
■ He is…
△미국 뉴욕주 올버니 출생 △하버드대 졸업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골드만삭스 근무 △맥킨지 컨설턴트 △워버그핀커스 파트너 △2013년 칼라일 부최고투자책임자 △2018년 칼라일 공동 최고경영자(CEO·내정)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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