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칼럼.논설.

슘페터, 혁신성장을 묻다. ①사적(私的)제국을 건설하려는 의지 ②성공하고자 하는 의욕 ③창조의 기쁨. 이 세 가지가 기업혁신성장 동기의 핵심

Bonjour Kwon 2018. 1. 24. 07:08

[손현덕 칼럼] 슘페터, 혁신성장을 묻다

 

2018.01.23

문재인정부는 일자리·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와 함께 혁신성장을 3대 경제 전략으로 제시하고 이제 혁신 쪽으로 중심을 이동하기 시작한다. 혁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경제학자는 케인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슘페터. '창조적 파괴'란 말을 회자시킨 그가 문정부의 경제참모와 다음과 같은 가상 대화를 나눴다.

 

▷슘페터(이하 슘)=경제정책 방향을 살펴봤네. 혁신성장이 있긴 한데 꼭 소득주도성장 장식품 같다는 생각이 드네.

 

▷문정부 경제참모(이하 경)=정부 출범 초기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한 건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급 측면에서도 혁신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여가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슘=좋은 말만 나열한 건 아닌가.

 

▷경=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지적하셨죠. 혁신을 위해선 금융이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습니다.

 

▷슘=금융은 사실 곁가지지.

 

▷경=무슨 말씀 하실지 압니다. 핵심은 기업의 역할이지요.

 

▷슘=그래. 혁신성장 전략을 보니 그 부분은 찾기 어렵던데.

 

▷경=핵심선도사업을 추진하고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게 그런 겁니다. 정부가 인프라스트럭처를 깔면 기업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혁신을 일으키자는 겁니다. 기업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슘=내가 말한 걸 기억하는 것 같군. 기업가는 혁신을 선도하는 사람이고 사업가는 혁신을 모방하는 사람이라는 말. 마차를 아무리 연결해도 철도가 되지는 않지. 혁신은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기업가의 몫이지.

 

▷경=백번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초만 다지는 거고 나머지는 기업이 알아서 하는 겁니다.

 

▷슘=그렇다면 기업가가 어떨 때 혁신적으로 움직이는지도 알겠군. ①사적(私的)제국을 건설하려는 의지 ②성공하고자 하는 의욕 ③창조의 기쁨. 이 세 가지가 핵심이네. 정부가 발표한 전략에서 나는 이런 동기를 추동할 내용을 보지 못했네.

 

▷경=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일단 ①은 좀 나중에 얘기하죠. 성공하려는 의욕을 꺾는다는 데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대기업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많은 중견·중소기업들은 공정하지 못한, 즉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의욕 상실입니다. 창조의 기쁨은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토론회에서도 언급했듯이 규제개혁과 관련해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과감한 방식, 그야말로 혁명적 접근을 할 겁니다. 신산업·신기술은 일단 허용하자는 거죠.

 

▷슘=이웃 나라 중국이 어떻게 하는지는 살펴봤겠지. 난 말은 많고 실천이 없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네. 이번엔 제발 그러지 않길 바라네. ①얘기한다고 했지. 말해보게.

 

▷경=선생님이 말한 사적제국이 뭔지는 압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기업, 소위 재벌들은 선생님이 말한 사적제국과는 다른 식의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창업 1세대들의 경우 혁신을 해서 국부를 키웠다는 데는 반론이 있긴 하나 저도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요.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야말로 개인과 가족의 영달을 위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건 청산해야 합니다.

 

▷슘=좋네. 나도 반론이 있지만 자네 비판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 그런데 중요한 건 말이야. 지금과 같은 인식에선 결코 혁신은 안 일어날 거야. 혁신은 돈 벌겠다는 욕망, 나는 초과 이윤이라고 했지만, 그게 없으면 안돼. 규제 철폐보다 훨씬 상위의 개념이야.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혁신은 불평등이란 결과를 낳아. 필연적으로. 지금 미국의 구글과 아마존처럼. 그걸 받아들일 준비와 각오가 돼 있나.

 

▷경=우리가 이윤 추구라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혁신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데 시기나 질투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정서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공정이 필요합니다.

 

▷슘=혁신과 탐욕을 구별하는 게 쉬울 것 같나. 그건 종이 한 장 차이라네. 기업들에 솔직한 말을 들어보게나. 돈을 벌었다고 하면 혹시 그 안에 무슨 잘못은 없었는지 트집 잡고, 이윤 많이 내면 그게 과연 정상적인가 하고 따지는 분위기가 있지 않은지. 누가 비난을 무릅쓰고 '창조적 파괴'에 나서겠는가. 본인이 먼저 파괴될지 모르는데.

 

▷경=노파심에서 말씀하신 것 같은데 염려하시는 점은 챙겨보겠습니다. 마침 오늘 혁신성장을 주제로 업무보고를 합니다. 한번 지켜봐주시지요.

 

[손현덕 논설실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