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9
경제학 분야에 거시경제론(Macroeconomic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미시경제론과 함께 경제학 이론을 크게 양분하고 있다. 전자는 국가경제 전체의 움직임, 세계경제와의 관계를 다루는 큰 시각의 이론적 기틀이고 후자는 개인과 기업의 시장 행태를 다루는 등 소규모 경제 단위가 분석 대상이다.
거시경제론은 하나의 국가경제를 크게 5개 부문으로 나누어 본다. 가계 부문, 기업 부문, 정부 부문, 국제 부문에 경제의 혈맥이라고 부르는 금융 부문을 포함한다.
가계 부문에서는 소비자들이 소비와 저축을 결정하는 데 무슨 변수가 중요한가를 다루고, 기업 부문에서는 기업의 투자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무엇인가를 분석한다. 정부 부문은 국가경제의 순환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무슨 정책을 쓸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고, 국제 부문에서는 국경을 넘어 무역과 투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취급한다. 이러한 부문별 분석을 거쳐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을 계산해내는 것도 거시경제학 몫이다.
지난 80여 년 동안 거시경제론은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유지하는 일과 경제의 성장·발전을 도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세계경제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등장한 영국 학자 케인스의 일반이론(1936년)은 공황 탈출을 위한 정부와 금융기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보여줬다. 그는 미국 학자 어빙 피셔와 함께 거시경제론의 원조라고 불린다. 케인스의 일반이론은 그 뒤 힉스, 모딜리아니, 새뮤얼슨, 프리드먼, 솔로 등에 의해 꾸준히 발전돼 왔다.
거시경제론의 또 하나 공헌은 국가경제의 움직임을 설명·예측할 수 있는 모형(model)을 구성해냈다는 점이다. 동 모형으로 부문 간 상호 관계와 국민소득, 총생산, 소비, 실업, 인플레이션, 저축, 투자, 국제 관계 등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고 혹은 예측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전해온 거시경제론은 세 가지 중요한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첫째는 경제 구성원들이 철저히 이성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데 항상 시장을 통한다는 것, 둘째는 모든 시장(실물, 서비스, 금융, 노동)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모든 기관들(국내, 국제)이 가변적인 자본주의 시장에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적절히 경기의 선순환적(善循環的)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문제는 이러한 3대 전제가 최근 도전을 받고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이성적 시장 행위'라고 생각해왔던 것 말고 다른 행위가 경제 구성원 사이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시장 말고도 이른바 정보가 거의 무료인 디지털 세계에서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기업도 소비자의 진심 어린 행태보다는 디지털 플랫폼과 네트워크 동향에 따르는 데 열중하고 있고,
정부는 시장 안정화보다는 여론의 향배에 몰두해 정략적 관심사를 중심으로 인기영합적 정책을 펴는 것이다.
국제 부문에 있어서도 다자주의(multilateralism)에 입각한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준수하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이 앞서는 보호주의적 정책을 구사하려 하고 있고, 금융 부문에서도 과욕에 쏠린 투기꾼들과 가상화폐의 등장, 그리고 이를 다루는 규범의 미비로 인해 시장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3대 전제의 붕괴 때문에 거시경제론은 예측은 물론이고 위험 관리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 거시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두 가지를 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앞의 3대 전제에 대한 대폭적 재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가계, 기업, 정부, 국제 부문, 그리고 금융시장의 디지털적 반응 행태의 부작용에 대해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 둘째는 그러한 비시장적(예측 불가능적) 변화가 있을 때 위기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장(章)이 거시경제론에 추가돼야 한다. 위기 관리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전 예측이 어려우면 예방 조치라도 미리 해두는 것이 거시경제론의 몫이다. 특히 디지털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부 부문에서 재정건전성을 굳게 유지하고 금융 안정성을 탄탄히 지키는 일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최선을 다하도록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정치권이 경제 흐름에 자꾸 손을 대는 일을 제도적으로 막는 장치를 과감하게 고안해내는 것도 위기의 확률을 크게 낮추는 일이고, 이 또한 거시경제학자들이 담당할 큰 사명이다. 장기적으로는 진리(이성적 시장)가 승리한다. 그러나 조작된 정보에 의해 단기 경제가 자주 망가지면 진리가 승리해 컴백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유장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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