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분석>**********

3중 불확실성(규제.자금.회계)에 둘러싸여 급제동 걸린 바이오산업

Bonjour Kwon 2018. 5. 21. 06:17

2018.05.20

K바이오 `회계쇼크` 엎친데…성장판 닫는 줄규제 덮쳐

 

◆ 변곡점에 선 위기의 바이오산업 ① ◆

 

기사의 1번째 이미지이미지 확대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이 불확실성의 덫에 걸렸다."

 

최근 2~3년간 브레이크 없는 쾌속 질주를 거듭하던 바이오산업이 회계 처리 논란, 과도한 규제, 오락가락하는 시장 등 3대 불확실성에 빠지면서 급제동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바이오산업이 꽃도 피워 보지 못한 채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돼 고사할 수 있다는 바이오산업 위기론까지 꺼내들고 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바이오산업 관계자들은 "돈(투자)도 기술도 충분하다. 규제를 확 풀어 시장에 나갈 수 있게만 해 달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올해가 대한민국 바이오 기업들이 한 단계 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넘쳐났다. 거품 논란 속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까지 바이오주가 연일 고공 행진을 이어가며 코스닥 랠리를 주도한 것은 이 같은 장밋빛 전망 덕분이다.

 

2015년 한미약품이 수천억 원대 신약 기술 수출로 '제2바이오붐'을 열었고 2016년에는 바이오벤처 신규 창업이 443개사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 산업을 개척한 셀트리온은 램시마 단일 품목으로 매출 1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규모 바이오시밀러 위탁 생산공장을 완공해 글로벌 1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로 부상했다. 바이오산업이 벤처캐피털 투자 1순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정부도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규제 완화애 나설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바이오붐 3년 차가 되는 올해 체질 개선에 성공한 2세대 바이오벤처들 성과가 가시화하면 한국 바이오산업(K-바이오)의 '제2 전성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 들어 회계 처리 논란, 과도한 규제, 시장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가장 먼저 제약·바이오 업계에 충격을 준 것은 연구개발(R&D) 비용 처리 문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집중적인 감리 대상 중 하나로 제약·바이오업체 R&D 비용 인식·평가 적정성을 들여다보겠다며 10여 개 제약·바이오업체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밝혔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이미지 확대

제약·바이오업체들은 관행적으로 비용으로 처리해야 할 신약 R&D 비용을 대거 자산으로 잡으면서 회계상 비용을 줄이고 자산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 같은 회계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금감원이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일부 제약사들은 곧바로 회계 처리 방식 변경에 나섰고 이로 인해 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등 타격을 입었다. 이 와중에 차바이오텍은 지난 3월 회계법인에서 감사의견 '한정'을 받고 한국거래소 관리종목에 지정돼 큰 충격을 줬다.

 

차바이오텍은 연구개발(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해 지난해 5억3000만원 흑자를 기록했다고 결산했지만 회계법인은 "연구개발에 들어간 돈은 비용으로 처리하는 게 맞는다"며 8억8000만원 적자란 내용으로 감사보고서에 한정 의견을 달았다. 설상가상으로 바이오 대표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분식회계 논란에 휘말리면서 바이오업계 분위기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논란은 다른 바이오 기업들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삼성 같은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이 국내 대표 회계법인들에서 자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분식회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불과 몇 달 사이에 회계 관련 이슈가 계속 터지니 당황스럽다. 금감원이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주지 않은 상황이어서 전문가들조차 어떤 회계 기준을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삼성 같은 큰 기업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자문을 받았을 텐데도 논란이 되는데 우리 같은 작은 회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R&D 비용 회계 처리 적용 시점과 감독 기준 등이 불확실하다 보니 업체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회계 처리 관련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바이오 기업 주가는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일각에선 바이오 업종 실적에 비해 주가에 거품이 끼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가 하락은 바이오 기업들 자금 조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기업들은 지금 당장 실적이나 현금을 창출해 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중요하다"며 "주가가 떨어지고 투자자 신뢰도가 하락하면 기업공개(IPO)나 증자 등 자금 조달이 위축되고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규제 불확실성도 바이오 업체들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 평가' 규제는 대표적인 이중 규제로 바이오업계에서 원성을 사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아도 실제로 시장에 판매하려면 신의료기술평가를 또 한 차례 받아야 하는 등 이중 규제라는 점에서 바이오업계는 신의료기술평가를 최악의 규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업계 반발이 커지자 NECA가 업체들이 요구하는 심사 방식을 추가하는 한편 식약처 심사와 일원화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기업들은 기존처럼 의료계의 보수적 기준으로 심사가 이뤄진다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유전자 분석업체에 직접 검사를 의뢰하는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Direct To Consumer) 시장 규제 완화와 관련해 정부는 일부 민감한 질병 진단을 제외하고 대부분 규제를 풀어주는 이른바 '네거티브 방식'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기존 유전자 검사 신고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오히려 유전자 검사 절차가 더 복잡해졌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유전자 분석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이달 중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의료계가 반발하자 원칙 없이 밀리면서 개정안 고시를 연말로 늦췄는데 이마저도 무기한 연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커지는 상황이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이미지 확대

시장 불확실성도 바이오 업체들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있다. 바이오 기업들은 산업 특성상 신약 개발이나 기술 수출 등 성과를 내기까지 수년간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 적자 기업에도 상장 기회를 부여하는 기술특례 상장제도를 통해 그동안 많은 바이오 기업이 코스닥에 입성했지만 최근 이 관문을 통과하는 바이오 기업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IPO 관문인 기술특례상장 문이 좁아지면 자금 조달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임정희 인터베스트 전무는 "기술특례상장 심사를 통과하는 데 재수 삼수하는 바이오 기업들이 늘면서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을 빚고 투자자들은 투자 타이밍을 놓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어느 심사기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상장 평가등급이 달라지는 현 시스템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정 기준 이상 받을 수 없는 약가와 건강보험 수가도 문제다. 몇 년간 적자를 무릅쓰고 연구해 제품을 만들고 까다로운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아도 시장에 출시할 수 있을 만한 적정 가격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 수 없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상무는 "혁신적인 제품은 기존 잣대가 아닌 새로운 잣대로 가격을 결정해야 하지 않냐"고 반문하면서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국내 의료기관에서 먼저 사용하도록 해주는 등 제품의 기반을 닦을 수 있게 해줘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업계가 위기에 빠진 현 상황을 역으로 활용해 업계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승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최근 바이오업계 위기는 우리 바이오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일 뿐 펀더멘털이나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 신찬옥 기자 / 김혜순 기자 / 김윤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