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테크(P2P)

뜨뜻미지근 금융당국···피해자들 고소·청원으로'P2P 금융시장 아수라장!P2P대출 연계 대부업자와 기존대부업자 간 겸업 금지등.PF 쏠려부실증가세

Bonjour Kwon 2018. 5. 28. 08:17

2018.05.26

 

“지금은 투자시대” 부동산 P2P금융업체 ‘ㄱ펀딩’이 홈페이지에 걸어놓은 홍보문구다. P2P금융이란 개인과 개인을 직접 연결하는 금융으로 전통적 의미의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개인과 개인, 개인과 기업이 직접적인 거래를 수행하는 금융 형태를 뜻한다. ㄱ펀딩은 자신의 회사를 ‘부동산을 담보로 자금이 필요한 부동산 개발사업자와 투자를 원하는 개인을 연결해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투자방식을 도입한 금융상품을 다루는 업체’로 소개하고 있다. 2016년 7월 문을 연 ㄱ펀딩은 불과 1년 6개월 만에 96호 상품까지 출시했다. 이들이 내세운 연평균 수익률은 20%. 10만원만 있어도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소액투자자들도 선뜻 돈을 입금했다.

 

피해자들 고소·청원으로 ‘아수라장’

 

하지만 ㄱ펀딩은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수익을 돌려주지 못했다. 수익은커녕 연체가 거듭되면서 투자자들은 원금 회수도 불투명한 상황에 처했다. 현재 ㄱ펀딩이 홈페이지에 명시한 연체율은 35.24%다. 전체 투자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약속한 기한 내에 돈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30일 미만의 단기 연체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실연체율은 더 올라갈 수 있다. 한국P2P금융협회에 가입된 업체들의 평균 연체율 2.21%(2018년 4월 기준)의 17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나마 공시되는 연체율과 부실률도 업체가 직접 입력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수치인지도 알 수 없다. 현재 ㄱ펀딩사의 게시판은 잇따른 수익금 상환 연체에 따른 회사 측의 해명과 사과문으로 도배된 상태다.

 

ㄱ펀딩은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새상품 출시를 중단하는 한편 신규회원도 받지 않았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투자와 대출 모두 막혀 있다. 금융당국은 ㄱ펀딩과 같은 대부업체들의 잇따른 운영 중단과 폐업이 올해 3월부터 시행 중인 ‘P2P대출 연계 대부업자 등록제’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P2P 투자자 보호 명목으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P2P 영업을 하는 대출업체로 하여금 이 제도로의 등록을 의무화했다. 등록요건은 자기자본 3억원 이상, 대표이사 등의 관련 교육 8시간 이수와 고정사업장 소유 등이다. 금융당국은 또 P2P대출 연계 대부업자와 기존 대부업자 간 겸업은 금지하도록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ㄱ펀드의 경우 연체율이 높고 P2P대출 연계 대부업으로 등록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등록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등록을 못하면 신규상품 출시도 어렵고 하다보니 운영을 접은 상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실 P2P업체의 연체로 애가 타는 건 투자자들이다. ㄱ펀딩 투자자들은 수익금은커녕 원금 회수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ㄱ펀딩만 해도 공지문을 통해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단 한 분의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마무리 지을 것’을 명시했지만 상환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나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ㄱ펀딩 관계자는 “공지사항 외에는 구체적인 상환 일정이나 방법에 대해 말할 게 없다”며 “향후 업체 운영방안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P2P금융 규제할 전용법안 마련해야

 

피해 회복이 불확실해지자 투자자들은 속속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금융사기범을 강력하게 처벌해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P2P 펀딩업체에 투자해 1500만원을 사기당한 피해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청원인은 “투자에 대한 손실책임은 투자자에게 있음을 알고 있다”면서도 “한 펀딩업체가 계획적으로 20여개에 달하는 투자상품을 실제 차주(담보물)도 없이 내놓고 투자금을 끌어모은 후 잠적해 전체 피해액이 60억원이 넘는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게시글 작성자는 무엇보다 “제도권 안에서 사기치는 금융사기꾼들이 난립하고 있음에도 안전장치가 전무하다”며 “하루 빨리 관련 법안을 제정하고 금융사기업체들을 일벌백계해 사기행위를 뿌리 뽑아달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피해자들의 집단행동은 청와대 청원에 그치지 않는다. 사기 피해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P2P업계는 고소ㆍ고발전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P2P 금융업체 운영진은 해외로 도피해 잠적하기도 했다. P2P 금융업계가 안팎으로 몸살을 겪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문제에 딱히 개입하거나 나서기도 어렵다. P2P를 규제하는 법 자체가 없어 업체를 직접 관리하거나 감독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당국이 P2P업체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지난해 2월부터 시행 중인 ‘P2P대출 가이드라인’이 전부다.

 

이 가이드라인은 1개 P2P업체당 연간 투자한도를 정하고 투자자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P2P업체 등의 자산과 분리해 고객재산을 보호하도록 하는 등 금융당국이 P2P금융을 이용하는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정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행정지도에 불과해 구속력이 없다. P2P업체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 아닐뿐더러 지키지 않아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P2P금융협회에서 자체적으로 ‘규제’를 한다지만 이 역시 강제성이 없는 자율규제 차원이다. 그나마 200여개의 업체 중 협회에 가입한 곳은 64개에 불과하다. P2P업계에서 비도덕적인 부실업체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유다. 임명수 한국P2P투자자금융협회 회장은 “플랫폼 운영자들이 거래내역 등을 클리어하게 공개하고 관리해야 한다”며 “P2P 금융에 꼭 맞는 독립된 법안을 하루 빨리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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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도처리된 P2P업체가 출시했던 상품.

 

P2P 금융업체들의 연체율과 부실률이 높아지자 금융당국은 P2P대출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적용을 일단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개정 가이드라인에는 P2P 금융업체의 재무현황과 대주주현황, 부동산 관련대출 공시 구체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올해 3월부터는 P2P업체 관리를 위해 P2P 대출업체의 연계 대부업자를 금융위원회에 등록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이른바 ‘유사 P2P 업체’에 대해서는 관리·감독은 물론 자료 제출을 요청할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P2P금융과 핀테크, 펀딩 등의 홍보문구로 포장한 유사 P2P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포털 검색만 해도 나오는 ‘ㄴ펀딩’ 업체 역시 핀테크를 앞세워 P2P상품 영업을 하는 유사 P2P 가운데 하나다. ㄴ펀딩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따로 상품은 올려놓지 않는다. 부동산 담보대출 상품을 주력으로 개별적으로 연락한 투자자에게만 상품을 소개한다.

 

ㄴ펀딩 관계자는 “기본 2000만원 이상 상품을 개별적으로 연결해준다”며 “최소 18%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P2P업체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ㄴ펀딩은 등록대부업체 통합조회 사이트를 통해 조회해보면 대부중개업체로 확인된다. ㄴ펀딩 관계자는 “P2P 연계 대부업체로 등록하는 절차가 까다로워 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투자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연계 대부업자로 등록된 업체만 들여다 볼 수 있다”며 “피해 신고가 들어와도 등록업체가 아니면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P2P금융에 대한 뒤늦은 대처가 투자자 피해뿐만 아니라 ‘건전한’ P2P금융시장 형성에도 걸림돌이 됐다는 지적도 업계에서 나온다. 국내 P2P금융시장의 누적 대출액은 2015년 300억원 수준에서 2017년엔 2조4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P2P금융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업체까지 감안하면 누적 대출액이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P2P금융시장이 급격히 몸집만 불려가는 동안 적절한 규제와 관리·감독을 하지 못하다보니 시장이 왜곡되고 곳곳에서 문제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제출된 관련 법안은 국회 계류 중

 

신현욱 한국P2P금융협회 회장은 “기관투자가를 막고 개인투자자에 대해 투자한도를 둔 게 특히 정부의 큰 실수”라며 “가이드라인이라는 금융당국의 어설픈 규제로 시장이 기형적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P2P시장에서 부실사태를 빚고 있는 이른바 ‘부동산PF’ 상품은 금융당국이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문제”라며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문제를 방치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투자자들과 P2P사업자는 한 목소리로 ‘P2P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법안도 이미 국회에 상정됐다. 국내 첫 P2P 관련 법안은 지난해 7월 21일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온라인대출 중개업에 관한 법률안’이다. 민 의원은 P2P업체가 금융당국에 등록하도록 하는 한편 투자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명시하는 조항을 담았다. 업계에서 대표적인 불필요한 규제로 지적해 온 연간 투자한도 1000만원을 없애는 대신 개인 차입자 연간 대출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했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도 올해 2월 ‘온라인 대출거래법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4월에는 자유한국당 이진복 의원이 ‘온라인투자 연계 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내놨다. 해당 법안들은 세부적인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P2P금융’이라는 새로운 산업에 맞는 법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P2P 관련 이들 법안은 모두 국회에 계류 중으로 통과 여부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P2P 투자자들의 피해사례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은 일단 금융위에 등록돤 업체를 상대로 현장 점검을 벌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P2P 관련 법안들이 통과돼서 시행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때까지 최대한 부여된 권한을 활용해서 피해를 줄이도록 하겠다”며 “다만 현행 법률의 한계상 현장 조사를 통해 문제가 적발된 업체와 정부가 불법성 여부를 놓고 법적인 다툼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