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1·2동 안전진단 탈락
서울 여의도 일대 재건축이 시작부터 삐걱대는 모양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된 ‘공작아파트’와 ‘시범아파트’ 재건축 계획이 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광장아파트’는 일부 동이 안전진단 단계부터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았다. 신탁 재건축 방식을 도입한 단지 곳곳에선 사업이 정체되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여기다 서울시가 일대 마스터플랜 격으로 마련 중인 ‘여의도 일대 재구조화 방안’과 ‘여의도 지구단위계획’ 발표 일정이 올 하반기로 연기됐다.
◆서울시 “여의도 밑그림 기다려야”
![](http://img.hankyung.com/photo/201806/AA.17040426.1.jpg)
2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일 열린 제8차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여의도 공작아파트 정비계획수립 및 정비구역지정(안)과 시범아파트 개발기본계획 변경 및 경관심의안이 보류 결정을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도계위에선 공작·시범아파트 관련 안건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며 “여의도 일대 재구조화 방안 등 도시 밑그림 계획이 나온 뒤 재건축 계획을 심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심의에 오른 두 곳은 상징성이 높은 단지여서 전체 밑그림이 나오기 전개별단지 재건축 계획을 결정하는 것에 도계위원들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373가구 규모 공작아파트는 도심 상업지역에 있어 심의를 통과할 경우 최고 50층까지 초고층 재건축을 할 수 있다. 시범아파트는 3종일반주거지에 있지만 1790가구로 구성돼 여의도 재건축 단지 중 덩치가 가장 크다. 재건축 후 최고 35층 2370가구 규모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주변 다른 아파트도 당분간 정비계획 결정·고시가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시는 여의도를 국제 금융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계획 아래 종합 마스터플랜을 짜고 있다. 여의도동 일대 55만734㎡에 적용하는 여의도 지구단위계획도 마련 중이다. 일대 11개 단지 6323가구에 적용된다. 지구단위계획은 지난해 4월 용역을 시작해 당초 올 상반기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늦춰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의도 일대 재구조화 방안은 마무리 단계에 있고, 지구단위계획은 6·13 지방선거 등이 겹쳐 일정이 다소 밀렸다”며 “올 하반기에 차례로 계획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http://img.hankyung.com/photo/201806/AA.17041900.1.jpg)
◆안전진단·신탁 방식도 난항
도시계획과 별개로 개별 단지 재건축의 발목을 잡는 복병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19일엔 여의도 광장아파트 1·2동이 재건축 정밀안전진단에서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았다. 지난 3월5일부터 국토교통부가 강화 시행한 새 기준을 적용받아서다. 준공 41년차로 노후한 여의도 광장 1·2동이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았다면 다른 단지도 탈락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여의도 일대에선 미성(577가구)·은하(360가구) 등이 정밀안전진단을 아직 받지 못했다. 모두 1970년대 준공된 단지다.
신탁방식 재건축의 단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여의도에선 2016년 말 시범아파트를 시작으로 공작, 수정, 대교, 한양 등이 연이어 신탁방식 재건축을 택했다. 상업지구에 속한 진주아파트(376가구)도 지난 4월 신탁 재건축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신탁사들은 추진위·조합 설립 절차를 건너뛸 수 있어 사업 속도가 빠르고 자금을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은 대부분 지지부진하다. 신탁사 지정 이후 곧바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지만 가장 먼저 신탁 사업을 택한 시범아파트도 아직 시공사를 정하지 못했다.
이는 추진위나 조합 등 법정 주민단체가 없어 주민 간 협의나 적극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워서다. 주민 의중 파악이 어려워 신탁사는 사업 동의서 징구 홍보 등 사전 작업에 섣불리 자금을 투입할 수 없다. 신탁 방식의 장점이 오히려 사업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탁 재건축을 추진 중인 대교아파트의 한 주민은 “2016년 말부터 신탁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데 아직도 동 간 협의가 안 됐다”며 “작년 5월 예비신탁사를 선정한 이후 사업이 답보 상태지만 책임을 지고 사업을 끌어갈 주체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
['신탁 방식 재건축' 주민과 갈등]
사업 투명성·기간 단축 등 기대… 6개 단지, 신탁회사 방식 선택
"환수제·부담금 피할 수 있어" 과장된 홍보물로 주민에 어필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금리 결정, 조합방식보다 높은 금리 제시
결국 해결 못하고 비용만 늘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2016년 11월 96%의 찬성으로 '조합 방식' 대신 '신탁 방식' 재건축을 선택하고, 신탁사를 선정했다. 신탁 방식 재건축은 주민들이 설립하는 '재건축 조합' 대신 제3자인 신탁사가 시행을 맡아 재건축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이 아파트 소유자 이모(52)씨는 "신탁 방식이 더 투명할 것으로 생각했고, 무엇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를 피할 수 있다고 광고한 신탁사 홍보물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1년 4개월이 지났다. 시범아파트는 환수제를 피하지 못했다. 올해 1월에야 영등포구청에 정비계획변경안을 제출했을 뿐이다. 환수제를 피하려면 작년 말까지 건축심의→사업시행인가→시공사 선정→관리처분 신청 단계를 모두 마쳤어야 했다.
그 사이 '계산서'가 나왔다. 신탁사 측은 총 6500억원 규모 사업비를 연(年) 6% 금리로 자체 조달하겠다고 통보했다. 서울 시내 대부분 재건축 아파트의 사업비용 조달 금리는 연 3%대 중반 수준이다. 주민들은 "매년 최소 수백억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한다"고 반발한다.
◇신탁 재건축, 소송 등 줄줄이 파행
신탁 방식 재건축은 단지 전체 소유주 75% 이상 동의와 동(棟)별 소유주 50% 이상 동의를 얻으면 신탁사를 시행자로 지정할 수 있다. 국토부는 2016년 3월 법률 개정을 통해 신탁 방식 재건축 제도를 도입하면서 '투명한 사업 관리'와 '사업 지연 최소화'를 예상 효과로 꼽았다.
하지만 이들 단지에서는 신탁사와 주민 간 갈등이 잇달아 터지고 있다. 시범아파트에서는 신탁사가 최근 일부 주민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대교아파트에서는 50%를 넘어야 하는 동별 동의율이 예비 시행자 지정 1년이 지나도록 특정 동에서 20%대에 머물고 있다. 수정아파트는 신탁 방식 자체를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광장아파트에서는 신탁사가 총 10개 동(棟) 중 8개 동만 따로 재건축하기로 하면서, 나머지 2개 동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부담금 피한다더니 비용만 불었다"
주민들이 지적하는 신탁사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허위·과장 광고다. KB부동산신탁은 작년 3월 광장아파트 사업 참여 제안서에 '사업 기간을 2년 8개월 앞당길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업 기간 단축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없었다. 한국자산신탁은 2016년 9월 '2300가구 아파트를 기준으로 했을 때, 신탁 방식은 조합 방식과 비교해 약 2000억원의 부담금 면제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소식지를 발행했다.
'깜깜이 계약'도 문제다. 시범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한국자산신탁은 작년 6월 시행자 선정이 끝나고서, 9월에야 조달 금리 등을 공개했다. 소유자 이형기씨는 "부담금을 피하는 게 급해서 무조건 계약부터 했는데, 나중에 신탁사가 제안한 사업비 조달 금리가 조합 방식보다 최소 2%포인트 높았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총사업비는 6500억원. 재건축이 끝나 입주할 때까지 조합 방식 대비 매년 130억원씩 손해를 본다는 의미다.
KB부동산신탁이 최근 대교아파트에 제시한 계약서 안(案)에도 구체적인 이자율이 적혀 있지 않다. 다만 '자금 조달에 따른 이율은 수탁자 내부 규정에 따른 이율을 말한다'고만 표시돼 있다. 이자율을 신탁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탁사들의 부담금 회피를 앞세운 허위·과장 광고에 대해 지난해 신탁사를 모아놓고 경고한 바 있다"며 "계약 과정 등에 문제가 있었다면 추가적인 대응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