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임금주도성장
2018.06.28
올챙이에게는 우물도 바다 같지만, 개구리에게는 우물이 비좁다. 얼마 전 올라가 본 고향마을 동산은 50년 전과 달리 손바닥처럼 좁았고, 어릴 적에는 꽤 높아 보였던 소나무 가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낮았다. 한국 경제도 상전벽해처럼 크게 달라졌다. 195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지만, 2018년 현재 한국 경제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및 스마트폰 생산국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400배 이상 증가해 3만달러에 근접해 있다. 연간 무역규모 1조달러(세계 7위)의 수출·제조업 강국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하지만 아직 벗어야 할 허물과 꼬리가 남아 있다.
지난 50여 년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 왔던 수출 대기업 중심의 압축 성장과 낙수효과는 수명을 다했다.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고, 노동소득분배율과 행복 순위는 OECD 꼴찌 수준이다. 계층 간 격차는 자꾸 벌어지고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은 더 심해지고 있다. 새로운 길은 낯설고 힘들게 마련이다. 그 길 위 도로표지판에는 활력 넘치는 중소벤처기업과 중산층의 육성, 튼튼한 사회안전망,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창조적 학습사회, 평생교육 시스템의 구축 등이 적혀 있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일자리 창출,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적용된 높은 최저임금과 7월로 예정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임금 수준이 높고, 근로시간은 짧고, 일과 삶은 균형이 잡혀 있다. 우리도 삶의 질을 개선하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잠시 멈출 수는 있지만 회군은 없다.
그 행보에 도움이 될 몇 가지 코멘트를 정리해 봤다.
첫째, '작은 발걸음(baby step)'의 원칙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금리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서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와 '작은 발걸음'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즉 금리 인상 방향은 미리 그리고 일관되게 제시하되, 인상 폭은 완만하게(0.25%포인트씩) 함으로써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했다. 옛 서독의 동방정책도 여야를 넘어서 일관되게 '접촉을 통한 변화'와 '작은 발걸음' 원칙에 따라 추진됐고 결국 통일에 이르렀다. 우리의 최저임금도 지금부터 4년간 연평균 7.4%씩 완만하게 올리면 2022년 1만원을 넘게 돼 대통령 임기 내에 공약을 달성하고 시장의 충격도 최소화할 수 있다.
둘째, 근로장려세제(EITC), 사회안전망, 재정확대 등의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 임금주도성장에 관한 연구를 선도하는 외즐렘 오나란 영국 그리니치대 교수는 작년 말 한국에 와서 "최저임금 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 조세제도 등이 정책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점점 악화되는 국내외 경제 환경을 감안한다면 내년에는 더 과감한 재정확대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처럼 수요를 확충하는 정책과 아울러 혁신성장과 공정경제 관련 정책도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셋째,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행히 성공 사례는 많다. 포드자동차는 1914년 9시간당 2.34달러이던 급여를 8시간당 4.80달러로 올린 후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졌고 자동차 판매도 크게 늘었다. 임금이 적정 수준 오르면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을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석학들이 효율성임금이론으로 담아냈다. 글로벌 기업 삼성도 임금주도성장으로 성공했다. 삼성은 동종 업계 최고 급여와 복리후생을 통해 국내외 최고 인재를 끌어모았다. 높은 임금, 훌륭한 인재, 높은 생산성, 최고의 제품, 높은 수익성이라는 선순환 효과가 발생했다.
2018년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허물과 꼬리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로 변태를 시작할 때다.
[김동열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