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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싸움에 韓·호주…`미들파워 동맹`(중견국 동맹.한국.일본.인도.인도네시아.호주)으로 맞서야. 한·호주 관계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Bonjour Kwon 2018. 8. 16. 07:36

 

2018.08.15

해군 등 국방기술 협력…적극적 균형자 역할 수행

수출입 국가 다변화해야 강대국 갈등 리스크 극복

 

■ 호주 외교백서 만든 석학 3인 인터뷰서 한국에 동맹 러브콜

 

로리 메드컬프 호주국립대 학장, 피터 제닝스 호주전략정책연구원 원장, 허베 르마이유 로위연구소 국장

 

글로벌 무역전쟁의 한가운데에서 한국과 호주가 공동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호주 수출 규모는 308억5900만호주달러(약 25조4451억원)로 2016년 대비 무려 181.3% 증가했다. 호주에서 수입하는 규모도 212억900만호주달러(약 17조5216억원)로 전년 대비 16.3% 늘어났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유럽 등 강대국 간 무역전쟁으로 거대 시장이 꽉 막히자 미들 파워 국가에서 서로 간에 활로를 찾고 있다.

 

한·호주 관계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 속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는 호주도 한국에 '인도·태평양 지역 중견국 동맹'으로 요약되는 새로운 협력 제안을 내놓으며 러브콜을 던졌다.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가 정치·무역·군사·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 번지고 호주 역시 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현상이 심화하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호주는 지난해 11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신외교백서'를 2003년 이후 14년 만에 내놓았다. 매일경제는 최근 호주 외교통상부 초청으로 이 나라를 직접 방문해 백서를 작성한 호주 석학들에게 양국 관계 발전 방안에 대해 물었다.

 

호주 시드니와 캔버라에서 만난 로리 메드컬프 호주국립대(ANU) 국가안보대 학장, 피터 제닝스 호주전략정책연구원(ASPI) 원장, 허베 르마이유 로위연구소 아시아 파워·디플로머시 프로그램 국장은 호주 외교백서 출간에 깊이 영향을 미친 세계적 석학들이다. 세 석학은 'G2(미국·중국) 무역전쟁' 등 비슷한 지정학적 딜레마로 고민 중인 한국과 호주가 '중견국 동맹'으로 더 끈끈히 맺어질 것을 기대한다며 한국이 G2 패권 경쟁을 극복하기 위해 △국방기술 협력 △적극적인 균형자 역할 수행 △회복탄력성 강화 등 세 가지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견국 동맹'이란 호주 관료·학계·시민사회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자국을 둘러싼 국제적 현실을 냉정히 진단한 끝에 내놓은 이번 외교백서의 핵심 개념이다.

 

백서에 참여한 주요 호주 관료와 학자들은 호주를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은 있지만 미국이나 중국 같은 초강대국(superpower)과 달리 질서를 바꿀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중견국(middle power)'으로 봤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주요 무대로 한 G2 갈등 속에서 자국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선 호주를 포함한 다른 중견국들이 힘을 합쳐 균형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백서에서 호주가 필수 협력 대상으로 명시한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 4개국이다. 호주를 포함한 이들 5개 국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다음가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들 2개국 간 패권 경쟁 구도에 그대로 노출된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호주가 앞으로 한국에 안보·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더 많은 협력을 제안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호주는 한국의 전체 수출액 비중 가운데 3.5%, 전체 수입액 비중 가운데 4.0%를 차지해 두 분야에서 모두 6위에 올라 있는 등 한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 파트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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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라 외교통상부(DFAT) 본부에서 만난 제닝스 원장은 한국이 미국 일변도인 안보 의존에서 벗어나 호주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군사협력을 더 강화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국방부 관리로 일하던 시절 호주와 한국의 군사적 관계가 더 깊어지길 기대했지만 기대만큼 진전되지는 않았다"며 "한국군과 미군이 서로 협력한 기간이 너무 길었고 제3국과 협력한다는 개념이 생소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과 호주는 국방기술, 특히 해군과 공군 기술 분야에서 같이 사용하거나 서로 연계 가능한 장비가 많기에 협력할 여지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추후 국방안보 분야에서 두 나라가 더 협력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제닝스 원장은 "호주를 포함한 네 나라는 미·중 양국과 안보·경제적 관계가 깊은 동시에 단독으로 역할을 관철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라는 아니다"며 "그런 의미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캔버라 소재 호주국립대에서 만난 메드컬프 학장은 과거 참여정부 시절 한국이 내세웠던 '동북아시아 균형자론'이 지금 더 이상 논의되고 있지 않은 현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선 보다 적극적인 균형자론을 수행하자는 주장을 놓고 상당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지금은 그 논의에서 후퇴한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메드컬프 학장은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보다도 더 많은 제품을 수입하는 나라"라며 "이 지역의 중요성을 더 인식하고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백서를 '인도·태평양 균형자론'이라 표현하며 "한국 같은 나라에 보다 국가적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라는 권고"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등 슈퍼파워에 한국과 호주 같은 나라에도 양보할 수 없는 국익이 있다는 걸 호소하는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이익을 조화시킬 방법을 찾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드니에 본사를 둔 외교 전문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에서 만난 르마이유 국장은 "한국은 K팝·드라마 같은 문화적 영향력 지수에 강점이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에 노출돼 있어 회복탄력성 지수가 낮은 게 약점"이라며 "수출입처 다변화 등으로 회복탄력성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르마이유 국장은 지난 5월 인도·태평양 지역 25개국 국력 순위를 평가한 '2018 아시아 파워 지수(API)' 보고서를 펴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18 아시아 파워 지수는 25개국을 대상으로 '경제적 자원' '군사력' '회복탄력성' '미래 트렌드' '외교적 영향력' '대외경제 관계' '국방 네트워크' '문화적 영향력' 등 8개 분야를 평가해 종합 국력 순위를 매긴 조사다.

 

100점 만점인 이 조사에서 미국이 85점으로 1위, 중국이 75.5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30.7점으로 호주(32.5점)에 이은 7위에 올랐다. 국방 네트워크(3위), 문화적 영향력(5위) 등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으나 다른 나라의 영향에 노출된 정도를 평가하는 회복탄력성(11위)이 약점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르마이유 국장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리더십 후퇴로 역내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다"며 "미국의 역내 리더십 약화에 대응한 외교관계 다변화 필요성을 한국과 호주 양국이 공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르마이유 국장은 중국의 영향력 증대에 따른 역내 다른 국가의 대응법으로 "'강대국'과 '중견국'이 힘을 합쳐 동맹을 형성해야 하며 무역거래국을 다변화하는 방법 등으로 회복탄력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시드니·캔버라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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