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3
터키發 위기 신흥국에 번지나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한 탓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시장에서는 이번 터키 사태 여파가 인근 유럽은 물론 신흥국 전역에 영향을 미쳐 위기가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투자자들은 터키 악재가 유럽 은행에 타격을 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터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높은 은행은 대부분 유럽 국가에 소재한 곳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터키에 대한 익스포저가 높은 금융회사를 보유한 국가는 823억달러 규모 익스포저를 갖고 있는 스페인이다.
프랑스(384억달러), 이탈리아(169억달러), 영국(192억달러)이 그 뒤를 잇고 있다.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유럽 금융시장은 대혼란을 겪었다. 지난 6월 그리스가 재정위기 종식을 선언하면서 어두운 터널을 지난 듯싶었으나 터키 리라화 폭락이 또 다른 뇌관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중앙은행(ECB)이 스페인의 BBVA,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 프랑스의 BNP파리바 등 주요 은행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날 BBVA 주가가 5.16%, 유니크레디트와 BNP파리바 주가는 각각 4.73%, 2.99% 하락했다. FT에 따르면 이 은행들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내에서 터키와 가장 큰 규모로 사업을 해왔다.
그레건 앤더슨 불틱LLC 거시경제부문 전략가는 로이터통신에 "터키 위험 노출도가 유럽 은행들 재무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이 유럽 은행에 넣은 자금을 빼내 미국으로 옮기는 등 유럽 전역에 도미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 금융시장이 이처럼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달러 강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인덱스는 0.89% 오른 96.36을 기록했다. 또한 미국 국채 10년물도 0.06%포인트 내린 2.87%를 나타냈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담은 결과다.
제리 폴 ICON어드바이저 국채부문 수석 부대표는 로이터통신에 "리라화가 명백히 패배했다"며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가 더욱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터키 경제에 대한 공포감에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만 관심을 보이자 그 여파가 신흥국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흥국 금융시장은 지난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를 인상한 후 한때 흔들렸다. 이후 간헐적으로 위기가 찾아오는 듯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지원을 요청한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 극단적인 위기에 빠진 신흥국은 없었다.
하지만 연준을 비롯한 ECB, 영란은행(BOE), 일본은행(BOJ) 등 각국 중앙은행이 본격적인 긴축으로 통화정책을 선회하면서 신흥국들은 자본 유출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가뜩이나 불안한 신흥국에 터키 통화 폭락이라는 악재가 덮치면서 투자자들이 이번 위기가 어느 지역까지 얼마나 퍼질까를 걱정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제로엔 블록랜드 로베코 펀드매니저는 마켓워치에 "터키에 대한 우려가 신흥국 시장 전반의 투자 심리를 훼손할 것"이라며 "신흥국 시장 자산 비중을 줄이고 선진국 시장 자산에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리라화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통화정책 간섭과 미국과 관계 악화로 수직낙하를 거듭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보복 시사 후 리라화 폭락이 멈추지 않자 터키에서는 서둘러 진화에 나서고 있다.
루흐사르 펙칸 터키 통상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것을 간청한다"며 "이는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될 수 있으며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터키 내 최대 규모를 가진 이스탄불 산업회의소(ISO)는 성명을 통해 리라화 폭락세가 가져올 실물경제 타격을 완화할 긴급조치를 취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는 이번 사태를 해결할 뚜렷한 방안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오히려 미국에 적대적인 발언을 하는 등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들에게 달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알라(신)가 있다는 걸 잊지 마라"며 "달러화나 유로화를 리라화로 바꾸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 트위터를 통해 "방금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두 배로 올리는 것을 승인했다"며 "알루미늄(관세)은 이제 20%, 철강(관세)은 50%다"고 밝혔다.
터키에서 경제 혼란이 지속되면서 국가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 5년물은 전일보다 59.54%포인트 확대됐다. 가반 놀란 IHS마킷 디렉터는 마켓워치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운용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 터키 국가 부채는 한동안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극심한 금융시장에 불안에 노출된 터키가 자본 통제를 단행하고 러시아에 금융지원을 요청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날 외환 전문 매체 에프엑스스트리트는 터키가 자본 통제를 단행하고, 러시아에 금융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의 제재로 터키와 마찬가지로 루블화가 폭락한 러시아와 공동 대응을 시사한 것이어서 향후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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