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4
시민단체에 막힌 4차 산업혁명…골든타임 놓칠 위기
ㆍ친정시민단체와 거리두기시작하는 청참모진
ㆍ돈풀어도 효과 못봐
ㆍ시민단체 새로운 권력집단화 본연의 자세인가? 변질?
ㆍ시민단체 기업흔들기 지나쳐
◆ 암초 만난 규제혁신 ◆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위해 은산 분리 완화, 개인정보 데이터 규제 완화 등 '규제 붉은 깃발' 뽑기에 적극 나선 가운데 정작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시민단체와 진보 진영의 반발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특히 4차산업혁명위원회 주도로 쟁점별 해커톤(끝장 토론)을 개최하는 등 정부가 찬반 양측 이견을 최소화한 규제 개혁안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진보 진영 측 반대에 여야 간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이번 정기국회 문턱을 통과하는 데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선진국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5세대(5G) 이동통신 등 신기술과 신사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것과 달리 한국만 규제에 발목이 잡혀 낙오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규제 혁신 '골든타임'을 놓치면 가뜩이나 기술력 격차를 실감하고 있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추격의 동력마저 잃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4일 국회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등은 지난 8월 국회 처리에 실패한 규제샌드박스 법안 등을 이달 처리할 예정이다.
과방위에선 ICT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보통신진흥 및 융합 활성화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ICT 융합 서비스 신규 사업에 대해 최대 2년간 규제를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제때 시장에 출시되도록 필요시 사후 규제만 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원칙도 도입했다.
지난달 29일 법안소위를 통과하고 상임위와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었지만 이 법을 포함한 규제샌드박스법 연계 처리 때문에 무산됐다. 국회 기재위와 산업위에서 각각 계류 중인 또 다른 규제샌드박스 법안인 규제프리존법과 지역특구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 간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었기 때문이다. 최대 138개 조항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 등 여야 간 쟁점이 많아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방위 관계자는 "규제샌드박스 관련 다른 상임위 법안들이 합의되면 정보통신융합법도 조만간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 간 견해차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까지 가세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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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보통신융합법을 비롯한 규제샌드박스 5법을 '폐기해야 할 법안'으로 꼽으며 반발하고 있다. 규제샌드박스 5법은 정보통신융합법을 비롯해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제정안,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개정안 등이다.
참여연대는 "신산업 분야를 한정하기 어려운 데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로 국민의 생명 안전, 환경, 개인정보 보호 등 공익적 가치를 침해할 우려가 매우 크다"며 통째로 반대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국정감사가 본격화되면서 상임위 법안 처리 일정도 늦춰질 가능성이 커 법안 처리가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데이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개인정보 활용을 허용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역시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비식별화된 가명정보를 사전 동의 없이 활용해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시민단체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위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해커톤까지 열어 시민단체 의견까지 수렴했지만 시민단체는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해커톤 과정에서 데이터 산업 육성을 위한 가명정보 활용이라는 큰 틀에선 합의가 이뤄졌는데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이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개인정보 보호를 담당할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상을 놓고서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현재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에 분산된 개인정보 보호 업무를 모두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이관하자는 시민단체 요구에 정부여당이 굴복하면서 부처 간 '밥그릇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이 때문에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처리한 뒤 통신정보와 온라인정보를 규제하는 정보통신망법과 금융정보를 규제하는 신용정보법도 잇달아 개정하려던 정부의 데이터 규제 혁신 로드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 밖에 유통, 의료,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의 각종 규제를 폐지하고 세제를 지원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 여당은 여전히 의료 민영화를 막기 위해 보건·의료 분야는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에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은산 분리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법 처리도 삼성 등 재벌 기업의 은행 소유라는 시민단체 억지에 국회가 눈치를 보면서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선진국이 4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면서 한국과 기술력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속도전'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 4차 산업혁명 각종 지표에서 한국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반면 규제 강도는 오히려 전 세계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UBS에 따르면 한국은 4차 산업혁명 적응도 평가에서 전 세계 25위에 그치고 있고,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는 4차 산업의 핵심인 빅데이터 기반 AI 기술력에서 한국이 세계 상위권 대비 70%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선진국과 인공지능 기술 격차는 1.8년으로 데이터 산업 육성에 실패하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품시장 규제는 4위, 무역 규제는 1위에 올라 있을 만큼 규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로 4차 산업의 필수인 융·복합 제품과 서비스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전 세계 유니콘 스타트업 186개 중 한국은 단 3개에 불과하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혁신성장이란 정부의 정책 방향을 실현하기 위해선 파격적인 규제 혁신이 필수적"이라며 "4차 산업 분야만이라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데 시민단체 반발이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오히려 후퇴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임성현 기자 / 석민수 기자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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