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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

Bonjour Kwon 2018. 9. 20. 10:28

최근 언론이나 인터넷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많이 오르내린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에서 파생된 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는 협상 격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은 원래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라는 말에서 나왔다.
합의나 계약에서 세부조항에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의미의 격언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가 사용된다.
이 말은 "무슨 일을 하건 꼼꼼히(thoroughly) 해야 한다"는 뜻이다


디테일, 즉 세밀한 부분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구(警句)로 쓰이는 말이다.
그 뜻은 '큰 원칙에는 쉽게 합의하나 세밀한 부분에선 의견 충돌이 생긴다'는 뜻이다.
디테일은 명품을 만드는 요건이면서도 악마가 서식하기 좋은 적소이기도 하다
총론은 공감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첨예하게 의견이 갈릴 때가 많다는 뜻이다.
 
 
세밀한 부분에 주의하라는 긍정적 관용어가 주어를 악마를 바꿔가며 부정적 파생어를 탄생시킨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일설에는 1975년 이전에는 이렇게 쓰인 용례가 없다고 한다


원칙에 합의하는 경우보다 세밀한 부분에서 충돌하는 일이 너무 자주 벌어지는 세태를 반영한 결과다.
선거 국면에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던 공약들의 실행 가능성과 의지가 문제되기 시작한다. 세상 모든 일이 다층적 구조를 갖는다.
악마는 디테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디테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편견으로 구축된 강고한 틀에 있다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서양 속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외교관이나 정치인들이 자기 편의대로 즐겨 쓰는 말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당시 무소속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합의를 하면서 꺼낸 말이기도 하다.
사실 2002년 단일화 과정에서도 2012년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늘 디테일이 문제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20세기 세계 최고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성공 비결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대답이다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와 더불어 근대 건축의 개척자로 꼽히는 로에는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는 설계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무리 거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도 사소한 부분까지 최고의 품격을 지니지 않으면 결코 명작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도 흡사한 일화를 남겼다.
이 부분을 손 보았고, 저 부분도 약간 다듬었으며, 여여기는 약간 부드럽게 만들어 근육이 잘 드러나게 했습니다. 입 모양에 약간 표정을 살렸고, 갈빗대는 좀 더 힘이 느껴지게 바꿨죠.”
미켈란젤로가 자세하게 설명하자 의뢰자가 이렇게 물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소한 부분이잖아요.”
미켈란젤로가 답했다.
완벽함은 결국 사소한 부분에서 나옵니다. 완벽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지요.”
 
 
비슷한 뜻을 가진 '총론 찬성, 각론 반대'의 역설적 함의는 그만큼 세부사항이 중요하다는 뜻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원칙을 정할 때 각론에서 벌어질 의견 충돌을 예상하고 대비하지 못하면 그 계획(정책)은 실패한다는 경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합의를 찾는 작업이 너무 힘들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다 마찬가지다.
소통이 안돼서 그렇다고 하지만 소통을 거부하는 풍토가 만연하고 있다.
총론에 찬성했으면 웬만한 디테일의 차이점은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세부사항에서 합의 도출이 어려울 걸 알면 총론부터 정제(整齊)할 줄 아는 슬기가 필요하다.
악마(불통)를 축출할 줄 아는 사회는 신(소통)을 존중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