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1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前 공적자금관리위 민간위원장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극복을 위해 전세계적으로 팽창적 통화정책이 일반화됐다. 미국이 시작한 양적완화는 금리가 제로가 되어도 화폐 발행을 지속하는 화끈한(?) 수준의 팽창적 통화정책 사례이다. 유럽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등장하고 일본의 경우 중앙은행이 주식펀드까지 사들이면서 화폐를 발행하였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었다. 이러다 보니 총통화(M2) 기준 통화량은 2007년말 1200조원 정도에서 2017년말에는 2400조원 정도까지 10년 사이에 약 2배 증가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늘어난 돈이 경제 전반적 물가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대에 값싼 물건이 수입되면서 물가는 안정됐다. 국내에서 제품 가격이 상하면 당장 해외에서 수입이 일어난다. 물가가 안정되는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해외에서 수입을 할 수 없는 대표적 비교역재이다. 버블이 터지고 위기가 발생한 이후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였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화폐가 늘어나고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가격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경우 현재 부동산 가격은 위기 직전 수준보다 더 올라갔다. 위기가 발생하자 위기극복을 위해 돈을 풀면서 떨어졌던 부동산 가격은 다시 올라갔고 결국 위기 직전 가격보다 더 높이 상승해버리면서 위기가 극복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위기 직후에는 돈이 돌지 않더니 결국 이 돈이 부동산으로 유입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라 버렸다
지금 우리 경제는 본격적인 저성장·저출산기로 진입하고 있다.
그런데 저성장·저출산기의 부동산 시장 상황은 고성장기와는 확연히 달라진다. 저성장을 우리보다 먼저 경험한 일본의 모습을 보면 이 부분이 잘 드러난다. 일본 부동산 시장은 삼극화(三極化)현상이 뚜렷하다. 도쿄 중심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저성장기에도 항상 강세를 보인다(1그룹). 동경의 변두리 혹은 지방거점 지역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완만하게 오르거나 유지되는 수준이다(2그룹). 그리고 중심에서 벗어난 지방의 소외지역에서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하락한다(3그룹).
이러한 일본의 모습을 우리 경제에 대입하면 답이 나온다. 강남 등 서울 핵심지역 부동산은 1그룹, 서울 주변이나 수도권 지방거점 지역은 2그룹, 그리고 부동산이 하락하는 지방 일부 지역의 경우 3그룹에 해당한다. 우리 경제에도 삼극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다주택자들은 보유 부동산 숫자를 줄이는 과정에서 대부분 3그룹, 혹은 2그룹에 속한 주택들을 팔아버린 반면 1그룹에 속한 부동산은 그대로 보유하거나 다른 그룹의 부동산을 판 돈으로 1그룹의 부동산을 사들이기까지 했다. 결국 부동산 시장 삼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버렸다. '똘똘한 한 채'라는 말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집약돼있다.
최근 8번째로 발표된 부동산대책도 주로 종부세 인상, 공시지가인상 등을 통한 보유세 부담 강화, 금융규제를 통한 유동성유입 억제 등으로 요약된다. 보유에 따른 고통을 증대시키고 자금유입을 통제하여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은 시장친화적 요소도 포함되어야 한다. 투기꾼이라고 혼내려 하지만 말고 잘 달래는 것도 필요하다.
우선 그룹별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1그룹은 수요억제와 함께 공급확대정책을 추가해야 효과가 크다. 꾸준히 재건축 재개발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해 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대체지역을 개발하여야 장기적으로 가격안정이 가능해진다. 단기적 안정 관점만으로 접근하면 장기적으로 가격은 더욱 상승한다. 3그룹의 경우 오히려 수요강화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3그룹의 경우 공적 성격의 펀드 등을 통해 매물을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요를 촉진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은 투기꾼들이 올린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보다는 늘어난 유동성과 갈 곳 잃은 자금이 일부 부문에 집중적으로 몰려서 생기는 '국지적 인플레' 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세심하고 시장친화적인 접근이 아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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