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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만의 겨울.배고픈시대에서 배아푼시대로. 남미.프랑스등 서유럽.미국 포퓰리즘 분노부추기는 정치 .한국?

Bonjour Kwon 2018. 12. 12. 07:12

[장경덕 칼럼]

2018.12.12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장갑차가 나타났다. 최루탄 연기가 개선문을 둘러쌌다. 그 안의 마리안 상은 파손됐다. 자유·평등·박애의 프랑스혁명 정신을 상징하는 얼굴 반쪽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강고한 조직도 걸출한 지도자도 없는 '노란조끼' 시위대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로마의 으뜸 신 주피터에 비견되던 그도 들불처럼 번지는 민초의 분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의 신뢰를 잃은 기존 정당들을 단숨에 휩쓸어 버리고 집권했던 그도 개혁에 대한 불만을 다스리는 데 실패하면서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이제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려는 극우와 극좌 세력들이 더욱 극렬하게 날뛸 것이다.

 

마크롱의 리더십은 막무가내식 포퓰리즘과 고립주의로 치닫는 트럼피즘의 대안처럼 보였다. 안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높일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밖으로는 지구촌 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협력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신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었다. 마크롱은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겸손하지 못했다.

 

지구촌은 또다시 불만의 겨울을 맞았다. 노란조끼 시위는 그 한 단면일 뿐이다. 불만으로 가득한 표심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은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불만을 숨기고 있던 이들을 자극해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그 불만을 더욱 부추기려 할 것이다.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남미 여러 나라들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이탈리아 같은 서유럽 국가마저 포퓰리즘 세력에 정권이 넘어가고 있다.

 

올겨울에는 40년 전 영국이 겪은 불만의 겨울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1978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영국은 거의 멈춰 서다시피 했다. 1979년 한 해 동안에만 파업 손실이 2900만일을 넘었다. 노동당 정부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임금 인상을 제한하자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났다. 쓰레기 치우는 일꾼과 무덤 파는 인부들까지 파업에 가세했다. 정권은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에 넘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불만의 겨울은 나라 경제의 (절대적이거나 상대적인) 쇠퇴기에 나타난다. 1970년대 영국은 물가는 뛰고 생산성은 낮은 가운데 전투적인 노동운동으로 중병을 앓았다. 결국 IMF에 손을 벌렸다. 오늘날 프랑스는 세계 경제 6위 자리를 인도에 내주며 상대적인 쇠퇴를 겪고 있다. 그럴수록 파이를 나누는 문제를 둘러싼 불만이 한껏 고조되고, 고통스러운 구조개혁보다는 사탕발림 정책을 내놓는 지도자들이 표를 얻기 쉽다. 그들은 불만을 잠시 유예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

 

서울의 거리로 눈을 돌려 보자. 다행히 파리와 같은 과격 시위는 없다. 하지만 불만의 기류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2년 전 촛불 시위로 뭉쳤던 이들의 목소리는 저마다의 이해에 따라 이리저리 엇갈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배고픈 것보다 배 아픈 것이 더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기본적인 생계보다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 큰 문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해법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기계적이며 근시안적이다. 파이를 나누는 데 골몰하다 파이를 키우는 문제를 잊어 버린 듯하다. 저소득 노동자를 위해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려 주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겠다고 한다. 그들의 불만을 무마하려 카드 수수료를 억지로 내려 주면 이번에는 카드 모집인들이 죽겠다고 한다. 매사 이런 식의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늘어나지 않는 파이를 나누려니 모두가 불만스러운 것이다. 모두가 더 가지려면 파이 자체를 늘려야 한다.

 

불만의 겨울에는 모두가 인내해야 한다. 누군가는 조금 더 양보하고 참아야 할 것이다. 그들이 기꺼이 인내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다독이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지금 그런 정치가 있는가. 마크롱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시기에 집권했다. 개혁의 방향은 서로 달랐지만 개혁에는 고통이 따르며 그럴수록 설득의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마크롱의 개혁이 위기를 맞은 건 문 대통령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불만의 겨울을 어떻게 날 수 있을까. 파리의 시위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장경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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