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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의 조속한 전면개정 필요.사회변화 제대로 반영치못하여 낡은 규정대로 유지는 나라 운영의 전반적 효율성 측면 극히 해롭다

Bonjour Kwon 2019. 2. 8. 08:29

2019.02.08

우리나라에서 하루빨리 법치주의가 실질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각 개인이 골고루 가지는 자유와 권리가 사회 구성의 출발점이 되었다. 모든 정치적 권력은 국민의 의사에서 나오고 정권은 단지 국민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이를 위탁받은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

 

이와 같이 국가 권력의 행사는 국민의 의사에 좇아 행하여져야 하는데, 그 국민적 의사는 법이라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객관적 규범의 형태로 표현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출범한 1948년 8월부터 민법, 형법, 상법, 또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의 기본적 법률(이들 다섯 법률에 헌법을 합하여 '육법'이라고 한다)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그랬듯이 법률이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일정한 선행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 법 분야에서 널리 적용되는 법리들을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학문적인 성과, 즉 제대로 된 법학적 작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1945년 해방 당시 일제 때 법 공부를 한 사람은 법률가 자격이 있다 해도 몇 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법원 등에서 실무에 종사하고 있었고, 대학의 조선인 법학교수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3년에 걸친 6·25동란으로 인한 혼란은 많은 관여자들의 납북을 포함하여 입법작업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당시 "일본법을 그대로 베껴서라도" 하루빨리 우리말로 된 법률을 마련하여 독립국의 면목을 세우자는 궁여지책의 주장이 나온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바이다.

 

사람의 재산과 가족관계에 관한 기본법인 민법은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1958년 2월에 공포되고 1960년 1월부터 시행되어, 이제 그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민법은 우선 우리에게 고유한 법 문제, 쉬운 예를 하나만 들면 임대차보증금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나아가 그 사이에 우리 생활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경제적으로만 보더라도 가난한 농업국이 공업국이 되었다. 일인당 평균소득, 국민총생산량, 경제성장률 등등의 수치를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새로운 거래유형과 담보형태가 많이 등장하였지만, 민법에는 이에 대한 규정이 없다. 법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인 국회에서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국민 다수의 그때마다의 정당성 감각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 적용을 받는 사람은 국가의 존재이유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되기 쉽다.

 

민법은 애초부터 무엇보다도 양성평등의 점에서 문제가 많았던 친족편·상속편에 대하여 여러 번에 걸쳐 심중한 개정이 행하여졌을 뿐, 주로 재산관계를 다루는 총칙·물권·채권에 관한 부분은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60년 전과 같은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긴급한 개정의 필요는 집합건물법이나 임대차보호법 등의 특별법에 의하여 간신히 땜질을 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우리 민법의 모습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이나 프랑스의 민법전은 2002년 또는 2017년에 발본적인 대개정을 거쳤다. 일본도 2017년에 민법의 중추에 해당하는 계약법(그리고 소멸시효법)을 대폭 손보았고, 작년의 상속법에 이어 이제 담보법의 개정에 착수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1999년부터 4년여에 걸친 개정준비작업 끝에 개정안이 2004년에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국회에서의 심의가 지지부진하다가 2008년 5월에 제17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다시 2009년에 법무부 주도의 작업으로 마련된 개정안이 국회로 갔지만, 극히 부분적인 개정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이유로 2016년에 폐안되어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민법과 같은 기본 법률이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여 낡은 규정대로 유지되는 것은 나라 운영의 전반적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극히 해롭다. 이제라도 심기일전하여 다시 전면적 개정작업에 착수할 일이다.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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