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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조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조합장의 세계.전국 농·수·축·임협 1343곳 조합장 선거 조합당 평균자산 3366억 수천억 관리 CEO역할

Bonjour Kwon 2019. 2. 25. 07:18

 

2019.02.24

전국 농·수·축·임협 1343곳 내달 13일 동시 조합장 선거

 

농협 조합당 평균자산 3366억

수천억 관리하는 기업 CEO역할

자산 1위 서울축협은 3조 넘어

억대 연봉받는 조합장도 많아

 

인사·사업·예산 등 막강 권한

지역사업 발판삼아 정계 진출

 

조합장 총회·이사회 의장 겸임

과도한 권한 견제할 수단 부족

무자격조합원 `친위대`도 문제

 

 

다음달 13일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르는 1343개(축협을 포함한 농협 1113개·산림조합 140개·수협 90개) 지역 조합장 선거가 26~27일 후보자 등록 신청 후 28일부터 2주간 선거운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한다. 2015년 3월 처음으로 전국 동시 실시로 전환된 후 올해가 두 번째 선거다. 최근에는 예비후보 간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조합장 자리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조합장이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권한을 갖기에 이토록 선거가 과열 양상을 띠는 걸까.

 

굴리는 돈과 직원 수만 놓고 보면 조합은 기업과 다를 바 없고, 조합장은 곧 최고경영자(CEO)다. 예를 들어 전남 완도 노화농협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1500억원을 넘었는데, 3선을 기록하고 이번 선거에 불출마하는 강홍구 조합장은 "우리 정도 자산이면 전체 지역농협 가운데 중간 규모"라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1122개 농·축협 총자산은 작년 말 기준 377조6316억원이다. 조합당 평균 3366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농·축협 조합 가운데 자산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서울축협으로 작년 말 기준 3조30778억원에 달하며, 예금·대출금 규모는 각각 3조475억원, 2조4008억원이다.

 

조합장 연봉은 전국 평균 농가소득(2017년 기준 3824만원) 대비 2~3배 이상이고, 억대 연봉을 받는 이가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 달에 업무추진비 100만~200만원을 쓸 수 있다. 게다가 직원 인사권, 농협 사업권, 대출 한도 조정, 예산 재량권, 농산물 판매 등 직간접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조합장은 `농가소득 5000만원` 같은 농업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행동대장 임무도 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경제(판매)·신용·교육지원으로 사업 성격이 구분된다. 경제 사업에는 계약재배를 통한 농산물 매입·가공·판매와 지역 자체 브랜드 개발 등이 포함된다. 군부대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군납도 경제 사업이다.

 

신용사업은 저금리 대출과 절세 금융상품 판매다. 세금이 전액 면제되는 생계형 비과세저축이나 세금우대예탁금 가입이 대표적이다. 조합장 중에는 본인 권한으로 조합원도 아닌 사람에게 수억 원대 저금리 대출을 해주는 사례도 더러 있지만 강 조합장은 "금리조정위원회와 대출협의회 의결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스템상 조합장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 막강한 권한은 `교육지원`으로 명명되는 사실상 복지사업이다. 주된 용도는 재해·수송비 지원, 그리고 현장 견학과 같은 교육이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경조사비, 자녀 장학금, 각종 모임 지원, 홍보·선전 지원에도 수십억~수백억 원이 매년 사용된다. 이와 관련해 한 전직 조합장은 "예산을 지역 조합원 대상 복지사업에 쓰다 보면 지방의회 등 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 밖에 중앙회 대의원이 되면 중앙회장 선출 등 활동이 가능하며, 과거에는 조합장 자녀가 필기시험 없이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농협에 입사하는 일도 있었다. 수협도 마찬가지다. 수협 조합장이 되면 수협중앙회장을 선출할 수 있게 되고, 수협중앙회장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새로 선출된 임준택 수협중앙회장은 부산 대형선망수협조합장 출신이다. 지역에서는 수협조합 자금을 상호금융 형태로 운영하는데, 여기에 대한 일정한 권한도 행사한다.

 

수협 관계자는 "대출은 각 조합 상임이사에게 전결권이 있어서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임이사는 조합장이 추천한다. 위판장 운영과 어민교육 등도 조합장 권한이다. 지역 수협에서는 직원 선발 등에도 입김을 미친다. 실제 지난해 11월 제주 한 수협 조합장인 A씨와 전직 총무과장 B씨는 채용 비리 의혹에 휘말려 재판에 넘겨졌고, 12월에는 서울 강서구에 있는 근해안강망 수협에서 채용 비리와 관련한 내부 폭로가 있었다.

 

이처럼 조합장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한과 혜택에 비해 견제할 수단이 부족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총회와 이사회가 있으나 조합장이 총회·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조합장 중에는 자격이 안 되는 농업인을 조합원으로 받아 `친위대`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한 지역농협 조합원은 "조합원이 되려면 해당 지역에서 일정 규모·일정 기간 이상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키워야 하는데,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상실했는데도 조합원으로 등록된 사례가 있다"며 "조합장은 무자격 조합원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을 챙기는 걸 묵인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대신 선거 때 무자격 조합원에게 몰표를 받는 식으로 공생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덧붙였다.

 

농민 출신이 아닌 조합 직원 출신 조합장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조합장 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직원이 `퍼주기식 행정`을 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음달 조합장 선거에서 현재 40% 수준인 직원 출신 조합장 비중이 50% 수준으로 올라갈 전망"이라며 "조합 직원은 퇴사 후 2년간 선거 출마를 금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조합장의 과도한 권한 축소, 조합원의 경영 참여 확대, 투명 경영, 비리 조합장 입후보 제한 같은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며 "무자격 조합원 문제도 조합 발전을 저해하고 선거 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조속히 척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일선 조합의 무자격 조합원 정비에 대한 특별점검을 강도 높게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농·수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보다 혁신적인 사고로 무장한 조합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농식품부 차관과 농촌진흥청장을 역임한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는 "불과 10년 후 우리나라 농업 구조는 지난 반세기 동안 변화한 것보다 더 큰 변화를 맞을 텐데, 이에 어떤 경쟁력을 통해 구조 변화에 대응할 것인지 조합장들이 고민을 해야 한다"며 "새로운 도전을 위한 `금선탈각(매미가 허물을 벗음)`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유섭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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