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서강대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파인 '서강학파'가 주도한 '문재인 정부 2년, 경제를 평가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서강대 교수 출신 학자·관료가 주축인 서강학파는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성장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10일엔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해서 '서강학파'와 대척점에 있는 경제학파인 '학현학파'가 주도하는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의 평가와 과제' 심포지엄이 열린다.
서강학파 토론회에선 현 정부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 주도 성장의 오류를 지적하는 내용이 쏟아졌지만, 학현학파는 심포지엄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서 "소득 주도 성장의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류였다.
◇'임금 없는 성장' 대 '임금과 성장이 같이 간다'
9일 서강대 토론회에선 박정수 서강대 교수가 '임금 없는 성장론은 통계 해석 오류에 따른 착시'라는 주장을 담은 '한국 경제의 노동생산성과 임금'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임금 없는 성장'의 실체가 있는지를 두고 학계에서 논쟁을 촉발시켰다.
'임금 없는 성장론'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성장은 지속하는데 임금은 정체됐다는 내용으로 박종규 청와대 정책기획관이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 시절인 2013년 처음 제기해 현 정부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 주도 성장의 출발점이 됐다. 박종규 기획관은 당시 성장과 임금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경제성장은 1인당 '실질' GDP(국내총생산)로 계산했고, 임금은 소비자물가로 명목 임금을 나눈 '실질' 임금으로 따졌다. 이렇게 비교하면 2008~2012년 1인당 GDP는 9.8% 증가하지만, 실질임금은 2.3% 감소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박 교수는 이 방법이 통계 착시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실질 GDP를 산정할 땐 'GDP 디플레이터'란 물가를 쓴다. 그렇다면 명목 임금도 GDP 디플레이터란 같은 물가로 나눠야 하는데, 소비자물가로 나눠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실질임금을 구할 땐 성장과 마찬가지로 GDP 디플레이터로 명목 임금을 나누거나, 성장과 임금 모두 물가가 이미 반영된 명목 지표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가 계산한 2000~2017년 연평균 명목임금 상승률은 4.5%였고, 연평균 취업자당 명목 GDP 증가율은 4.6%였다. '임금 없는 성장'이 아니라 '성장과 임금이 같이 간다'는 결과다. 박 교수는 "'임금 없는 성장'이라는 잘못 인식된 사실에 근거해 취해진 정책이 있다면 정책 전환과 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박종규 기획관은 본지 통화에서 "임금을 소비자물가로, 노동생산성(1인당 GDP)을 GDP 디플레이터로 나눠 실질 지표를 구하는 게 학계에서 가장 통용되는 방법"이라며 "기존 연구엔 오류가 없다"고 반박했다.
◇학현학파 "재벌 개혁 박차 가해야"
학현학파는 소득 주도 성장을 두고 서강학파와는 정반대 진단을 내놨다. 학현학파는 분배 경제학을 가르친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 그룹으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 브레인 역할을 맡고 있다.
학현학파가 주축이 된 서울경제사회연구소는 10일 심포지엄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서 "재벌 개혁과 복지를 확대해 소득 주도 성장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는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해 "노동에 대한 대가를 공정하게 지불하는 시장 관행을 정착시키고, 국가가 앞장서서 사람에게 투자함으로써 소득·소비·투자가 선순환하는 국민경제의 발전 과정"이라고 정의한 뒤 "소득 주도 성장 등장을 계기로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장기적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 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경제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입법의 어려움을 핑계로 사실상 재벌 개혁은 포기한 상태"라며 "재벌 개혁은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포용적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전제"라고 강조했다.
☞서강학파
서강학파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와 이승윤·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등 서강대 교수 출신의 학자·관료가 주축이 된 경제학파로, 1970~80년대 '개발 경제' 시대에 경제정책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했다. 성장을 중시한다. 현재 김광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 등이 주축이다.
☞학현학파
학현학파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후학 출신이 중심인 경제학파로, 변 교수의 아호(학현)에서 이름을 따왔다. 효율보단 형평을, 고도성장보다는 안정과 분배를 앞세우는 경제학파이다. 현재는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등이 주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