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물가 시대 ③] `불황의 상징` 100엔숍 인기…디플레 못벗어난 日
2019.09.08 18
"여전히 싼 물건을 찾는 경향이 강해 대형 쇼핑몰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정책 중 하나가 100엔숍 유치일 정도다. 디플레이션이 끝났는지 잘 모르겠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벗어났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형 쇼핑몰인 라라포트를 운영하는 미쓰이부동산 상업매니지먼트 관계자가 6일 내놓은 답변이다.
아베 노믹스로 인해 일본 경제가 수년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지만 소비 현장에는 여전히 장기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다.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0.04%)를 기록하며 장기 침체 우려를 낳고 있는 한국이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한번 장기 침체에 빠지면 회복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는 불황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100엔숍 인기에서도 확인된다. 편의점 대국 일본에서 올해 대형 편의점 매장이 276개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비해 100엔숍 매장은 310개나 증가할 예정이다. 대형 편의점 점포 수가 작년 말 기준 5만1241개로 대형 100엔숍(6545개)에 비해 8배나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100엔숍 선호의 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서울 무교동쯤에 해당하는 도쿄 간다에서 직장인 대상 술집을 운영하는 이사마나 데쓰로 씨는 "경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저렴한 메뉴만 잘 팔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물가상승률도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 월간 물가상승률(신선식품 제외)은 7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0.6%에 그쳤다. 일본은행은 이미 작년 4월 물가상승률 2% 달성 목표 시점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태어나서 물가상승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세대가 늘면서 정부와 기업 대응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점이다. 와타나베 쓰토무 도쿄대 교수는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일본 소비자의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가장 낮지만 그중 30대 이하는 특히 더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 세대가 많아질수록 디플레이션 탈피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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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물가 시대 ③] 한국도 제로금리?…가보지 않은 길 가나
최초입력 2019.09.08
금리 더 내릴 여력 있는 韓銀
극단 통화정책 가능성 낮지만
저물가 상황 계속땐 장담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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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지난달 사상 최초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하며 앞서 선진국들이 저물가 대책으로 내놓은 극단적 통화정책을 동원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마이너스 금리·양적완화 등의 조치가 당장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저물가 방어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행의 금리는 1.5%다. 한 번 더 인하하면 역대 최저 금리인 1.25%에 도달하게 된다. 시장의 관심은 그 이후다.
한국은행이 역대 최저 금리 아래로 얼마나 더 금리를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은행의 금리 하한선은 1%로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다.
박태근 삼성증권 글로벌채권팀장은 "디플레이션을 해소하려면 일본식 제로 금리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면서도 "총재가 상반기 물가가 1%대로 회복한다고 못 박은 만큼 제로 금리로 간다 하더라도 굉장히 느리게 갈 것이고, 여력이 되는 한 한국은행이 1%까지는 내려주는 게 지금 국면에서는 역작용보다 순작용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도 제로 금리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가 반등하기 쉽지 않은 만큼 한국이 제로 금리로 들어서는 건 시간문제"라며 "문제는 한국은행이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현재 중앙은행 기준금리를 제로 이하로 설정한 국가는 일본(-0.10%), 스웨덴(-0.25%), 덴마크(-0.65%), 스위스(-0.75%)다. 유럽중앙은행 또한 정책금리 중 예치금리(은행의 중앙은행 예치금에 적용되는 금리)를 -0.40%로 정해 운용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나 제로 금리는 단기적으로 물가나 성장에 극약처방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진석 포스코경영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은 "지금도 충분히 저금리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소비 투자 활성화가 제한적이며 저물가 기조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극단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하더라도 내수경기 부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명 '헬리콥터 머니'로 불리는 양적완화도 경기 부양을 위한 극단적인 통화정책 중 하나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민간 회사채까지 사들이며 돈을 푸는 정책으로 정책금리가 0%에 가까워 금리를 통한 개입이 어려운 상황에 동원된다.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기준금리 추가 인하 여력이 있는 만큼 단시일 내에 쓰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함께 정부의 재정을 동원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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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높은 체감물가…소비만 더 줄여
최초입력 2019.09.08
지표물가와 격차 6년만에 최대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일반 시민이 느끼는 체감물가와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체감물가가 높으면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그 결과 물가는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현상이다. 8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1%로 집계돼 통계청 발표보다 2.1%포인트 높았다. 체감물가 상승률 역시 2013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지만, 지표물가와의 격차는 2013년 10월(2.1%포인트)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두 지표 간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통계청 소비자물가는 일상에서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 460종에 대한 가격 변화를 평균해 반영하지만, 체감물가는 개인이 자주 접하는 몇몇 품목에서 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최창호 한국은행 물가동향팀장은 "소비자들은 구매 빈도가 높은 품목에 가격 변동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하락보다는 상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최근의 경기 부진도 체감물가와 지표물가 간 괴리를 키우는 원인이다. 살림이 팍팍하다 보니 생활필수품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크게 비싸진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체감물가만 높으면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그 결과 지표물가는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면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늘어 소비 증대로 이어져야 하지만 체감물가가 높은 상태에서는 그 효과가 반감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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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물가 시대 ③] 1%대 성장·디플레·생산인구 감소…지금 한국은 `1990년대 일본`
최초입력 2019.09.08
`잃어버린 20년`우려 더 커진 韓
30년 시차 두고 그대로 따라가
GDP·잠재성장률 비슷한 하향
인구구조 변화도 `판박이 수준`
고령사회 진입에 24년 걸린 日
韓 17년만에…오히려 더 빨라
저성장 상황서 저물가 겹치고
수출마저 고꾸라져 우려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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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률의 지속적인 저하, 마이너스 물가상승률,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 1990년대 들어서면서 거품경제가 무너진 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에 빠져든 요인들이다. 30여 년 전 일본 경제를 수렁으로 밀어넣었던 이 같은 요인들이 우리 경제에서도 하나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염려가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먼저 한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0년 시차를 두고 비슷한 하향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 초입에 들어선 1990년대 일본은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985~1989년 4.2% 수준이었으나 이후 2.8%(1990~1996년), 0.3%(1997~2003년)로 떨어졌다. 한국도 비슷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수준이던 것이 2010년대 들어 3.4~3.7%로 떨어졌고 2016년 이후엔 2.8% 수준까지 떨어졌다.
양국 경제성장률도 약 2%포인트 차이가 있긴 하지만 30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하향 추세를 그렸다. 일본의 실질 GDP 증가율은 1970~1980년대 평균 4.5%에서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1990년대 1.3%대로 하락한 뒤 2000년대는 0.7% 선, 2010년대는 1.0% 선을 기록했다. 이 같은 패턴은 최근 들어 한국에서 비슷하게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2010년과 2011년 각각 6.8%와 3.7%를 기록한 이후 2012년 2.4%로 처음 2%대에 진입했고, 지난해에는 2.7%를 기록했다. 올해 성장률은 2%를 넘기 힘들다는 전망도 다수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성장률이 1%대에 머무르는 저성장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의 경제 활력을 급속도로 떨어뜨린 인구구조 변화 역시 판박이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더 심각하다. 일본은 197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비율 7%)에서 1994년 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 14%)로 접어들었다. 이후 1999년 경제활동인구 비중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연령인구(15~64세) 비중은 2012년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 일본에 비해서도 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데 일본은 24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17년 만인 2017년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경제성장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물가까지 낮아지는 상황이 겹친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일본 물가상승률은 1992년 직전 해(3.4%) 대비 급락한 1.5%를 기록하며 1%대에 접어들었다. 이후 3년 뒤인 1995년 마이너스 물가(연 -0.1%)를 경험했다. 한국도 올해 들어 8개월 연속 0%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지난달에는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0.04%)을 기록했다.
수출 경쟁력 하락도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한국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9개월 연속 감소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무역이 힘을 잃으면서 생긴 것인데 한국도 현재 수출이 고꾸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각종 지표들이 20년 전 일본과 닮은꼴 형태를 보이는 만큼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2010년대 초 '일본화' 조짐이 보였지만 현재는 점점 더 강해지고 빨라지고 있다"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경기 변동을 넘어선 차원의 현상으로 경기 불황과 동시에 여러 성장동력이 꺼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기본적으로 힘이 빠져서 그런 건데 한국도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도 "일본처럼 강한 거품 붕괴를 통한 불황은 아니란 차이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미 한국이 일본식 불황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일본식 불황을 여전히 미래 일로 얘기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생각하고 당장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장기 불황 초입에서 전무후무한 상황을 겪다 보니 1998년까지도 일시적 상황이라고 판단해 대응이 늦어지면서 장기 불황의 골을 벗어나는 데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시리즈 끝>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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