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3
美·中 무역전쟁 불확실성에
중앙銀 경기부양 부담 커져
마이너스 국공채 17조弗
전세계 GDP의 20% 규모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국제결제은행(BIS)이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여력이 바닥났다고 경고했다. 금리 인하, 양적 확대 등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통하는 BIS에서 통화정책 효과에 대한 공개적인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블룸버그에 따르면 클라우디오 보리오 BIS 통화·경제국장이 이날 '분기별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조정 여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 침체가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면 통화정책이 도울 수 있지만, 이는 정책 여력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보리오 국장은 미국과 중국 간 관세갈등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과도한 경기 부양 부담을 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언급하면서 "경제에 또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는 중앙은행이 경제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틈만 나면 기준금리를 최소 50bp(1bp=0.01%포인트) 내려야 한다면서 자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압박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생각과 반대되는 발언이다.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초저금리에 가까운 상황이다. BIS는 통화정책 '경기부양지수'를 통해 분석한 결과, 2018년 후반 미국 등 주요국 통화정책은 이미 부양지수가 100을 밑돌아 완화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부양지수가 100이면 평균, 100을 넘으면 긴축을 의미한다. 이미 충분히 금리를 낮췄기 때문에 추가적인 금리 인하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마이너스 채권금리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선진국과 신흥국을 불문하고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 목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서는 부작용과 관련해 BIS는 '국채금리(수익률) 마이너스' 현상을 지목했다. 보리오 국장은 독일 일본 스위스 등을 중심으로 국채금리가 0을 밑도는 현상을 들면서 "평소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거기에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vaguely troubling) 것이 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BIS 보고서에 따르면 연준, 유럽중앙은행(ECB), 중국인민은행(PBOC) 등이 경기 부양 모드에 들어간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금리가 마이너스인 국공채(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 거래 규모는 지난 8월 말 기준 17조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것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글로벌 시장에서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인 국고채 거래 규모는 2016년 12조달러에 육박했다가 차차 낮아졌는데, 미·중 무역갈등이 심각해진 지난해를 계기로 늘어나면서 올해 폭증했다. 최근 10여 년 새 국고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올해처럼 대규모로 거래된 적은 없었다고 BIS는 분석했다. BIS에 따르면 올해 9월 중순 기준 유로존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국고채 거래 비중이 50%이고, 일본은 40%에 육박한다.
제조업 생산활동과 내수 소비가 둔화되는 등 취약해진 각국 경제에서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양대 변수는 미·중 무역갈등과 통화정책 완화 기조다. BIS는 8월을 전후해 미국 독일 같은 주요 선진국 국채금리가 사상 최저로 떨어진 것은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결정 영향이라고 봤다. 정책 당국이 겉으로는 '침체가 아니다'고 진단해도 실제로는 금리를 낮추는 등 완화 기조로 돌아선 것이 시장에 '경제 침체 신호'로 통한 결과,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국고채 보유를 늘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BIS는 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불확실성만 커지는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계속 낮추면 금융 불균형이 커질 것이라고 봤다. 대표적인 금융 불안정 리스크로는 여전히 규모가 큰 미국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거래가 꼽혔다. CLO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원인이 된 고위험 금융상품으로, 금융기관이 여러 신용등급이 섞인 대출채권을 한데 묶은 뒤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일종의 채권이다.
BIS는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내리기 힘든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결국 정부가 재정을 풀어 경제를 떠받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BIS는 이번 보고서에서 '무역과 통화정책'에 대해 가장 먼저 다뤘다.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 30일~9월 11일 미국 유럽 일본 외에도 신흥국 중 75%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BIS는 특히 한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를 언급하면서 해당 기간에 기준금리가 직전 수준 대비 10% 이상 떨어졌다고 언급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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