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스 "추가 부양카드 없어…신흥국 다시 위기 올 수도
2020.01.05
석학들이 본 올해 세계경제 3대 리스크
① 美·이란 군사적인 갈등
② 美·中 무역 전쟁 지속
③ 각국 돈풀기 한계 상황
한국 등 신흥국 더 힘들 것
◆ 2020 전미경제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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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오른쪽)이 연설하고 있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옐런 전 의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 특별취재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 모인 글로벌 경제 구루들은 새해 벽두부터 위기관리 능력을 키울 것을 주문했다. 미·중 무역전쟁 등 기존 리스크가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이란발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대형 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2018년 3.5% 성장에서 작년 2.9%, 올해 2.9%로 둔화될 것으로 예측됐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등 주요 경제 분석 기관들의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전년도와 거의 변동이 없는 3% 수준이다.
글로벌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새로운 불확실성 요인이 불거진 만큼 경기 하강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경제 석학들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미국·이란 간 갈등과 미·중 패권 경쟁, 경기 부양 카드 소진을 '3대 리스크'로 손꼽으며 대외 방어력이 취약한 한국 등 신흥국에 충격파가 몰려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유가 상승과 이로 인한 금융시장 취약성 노출이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라잔 교수는 4일(현지시간)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이슈 등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80~90달러에 달할 경우 뇌관이 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한 미·중 패권 경쟁을 뇌관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라잔 교수는 "또 다른 위기의 시나리오는 무역에 대한 낙관주의가 무너지는 것"이라며 "미·중이 1단계 무역합의를 했다지만 주요 수출품에 부과한 25% 관세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2단계 이후 합의에 대한 회의론은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의 최대 과제는 미·중 관계의 복원"이라며 "제로섬 게임을 멈추고 공동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제 금융 분야 권위자인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은 미·중 무역분쟁과 주요국 제조업 경기 상황을 올해 세계경제를 판가름할 '양대 요인'으로 손꼽았다. 미국과 중국이 최근 1단계 무역협상에 합의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신 국장은 "한국 기업들의 리스크 테이킹(위험 부담) 주요 변수는 중국 경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시 한국 등 신흥국 대외 방어력을 걱정하는 목소리 역시 강했다. 래리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올해 한국을 포함한 신흥시장 경제 전망을 묻는 질문에 "도전적인 상황"이라며 "신흥시장 자본 유출입 등으로 산업화 경제권에 더 어려운 환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주의가 미국에 어떤 의미를 갖든지 신흥시장에는 가장 끔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기 부양 카드 '약발'이 떨어졌다는 점은 올해 세계경제에 '복병'이 되고 있다. 서머스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위기 대응 여력이 없다"며 "우리는 지난 50년간 기준금리 인하로 경기침체에 대응했지만 이제는 더 인하할 여지가 없고 재정지출도 이미 엄청나게 확대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경제에서 그나마 선방하는 미국이 올해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시각마저 나왔다. 미국 기업 관련 싱크탱크인 피터슨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애덤 포즌 소장은 "미국이 경기 둔화를 선제적으로 막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올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는 '제로'(0)이거나 1회로 전망하는데 인하 시기는 올해 2월이나 3월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즌 소장은 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공약을 꺼내들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반대로 인해 2단계 대규모 감세는 불가능한 구조"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일한 카드는 각국과 무역협상이지만 크게 의미 있는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경제석학들은 신흥국이 내수와 내부 인적자원 등을 키우는 방향으로 위기 대응력을 쌓아야 한다고 처방했다. 서머스 교수는 "신흥시장이 내수를 키우는 데 더 무게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즌 소장은 저성장 위기에 직면한 한국을 향해선 여성 노동력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즌 소장은 "한국이 일본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1인당 GDP 증가율에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라며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통해 최근 5년간 300만개 이상의 여성 일자리를 창출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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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거스 디턴 교수 "지역·세대로 번지는 불평등…방치땐 자본주의 존립 위협"
2020.01.05 1
美고졸 백인남성 자살률 늘고
상위 1%가 소득 20% 독식
개인 넘어 시스템 불공정에
미국민 분노도 점점 커져
포용적 성장 방법 고민할때
◆ 2020 전미경제학회 / 앵거스 디턴 교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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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가 지난 3일(현지시간) 전미경제학회에서 서양원 매일경제신문 편집담당 상무와 인터뷰하며 글로벌 경제와 세대·계층 간 불평등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 특별취재팀] '2020 전미경제학회(ASSA)' 핵심 화두 중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inequality) 문제였다. 원로 경제학자들은 불평등 해결을 정부와 시장의 최우선 공통 과제로 삼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대로 빈부 격차 확대를 방치하면 자본주의 시스템 붕괴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를 막으려면 '포용적 성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4일(현지시간) 자본주의 위기와 불평등을 주제로 열린 세션에서 "절망적 죽음(deaths of despair)에 이르는 미국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겼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절망적 죽음'이란 자살, 약물 복용, 알코올 문제 등으로 인한 일종의 사회적 죽음을 뜻한다. 디턴 교수는 "20~64세 미국 백인 남성을 대졸자와 고졸 이하로 나누어 1992년부터 2017년까지 사망 원인의 변화를 비교한 결과, 대졸자의 전체 사망 원인에서 절망적 죽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이나 2017년이나 큰 차이가 없는 반면, 고졸자는 그 비중이 2배 이상 치솟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소득층은 지나치게 비싼 의료비,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 시장 때문에 고통받는 반면 제약사와 보험사, 일자리를 기계로 대체한 기업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이는 개인 간 불평등 문제를 넘어서 사회 시스템 자체가 불공정해졌음을 방증한다"고 주장했다. 또 디턴 교수는 "불공정한 시스템에 대한 미국민들의 분노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를 방치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2015년 빈곤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불평등' 전문가다.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 저서와 기고문 등을 통해 "현재의 기업 지배구조는 근로자보다 주주와 기업 임원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도록 왜곡돼 있다"며 "빈부 격차 확대는 민주주의를 좀먹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특히 그는 불평등이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디턴 교수는 지난 3일 매일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불평등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간 불평등, 세대 간 불평등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디턴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한 앤 케이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며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점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는 것이 우리 연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션에 참석한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 역시 "미국 내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음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을 기준으로 미국 내 소득 상위 1%가 연간 국민소득의 2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가 1990년을 기점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고 덧붙였다. 퍼트넘 교수는 "남북전쟁, 서부 개척 시대 등을 겪은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인들 사이에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상이 득세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1970년대까지 비약적인 경제적·사회적 진보를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이 빼어 든 무기는 '포용적 성장'이다. 이날 '포용적 번영을 위한 경제학' 세션에 참석한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적인 경제단체들이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면서 불평등이 심화됐다"며 "이제 포용적 성장을 위한 방법 찾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로드릭 교수는 이를 위해 지난해 초 '포용적 번영을 위한 경제학(EfIP)'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젊은 경제학자들이 각국에 여러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는 단체다.
그는 "조직이 발족한 이후 공공재 활용, 금융 시장 규제, 세금, 인종 간 불평등 등에 대한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이 접수됐다"며 "이 같은 아이디어들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 경우 불평등 문제의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현실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왔다. 루이지 진갈레스 시카고대 교수는 "경제학자들은 경제정책의 영향을 직접 받는 국민들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본인의 경제이론만 강조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샌디에이고 특별취재팀 = 서양원 상무 / 장용승 뉴욕 특파원 / 신헌철 워싱턴 특파원 / 강두순 기자 / 김동은 기자/ 김정환 기자 / 오수현 기자 /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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