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고 소송등

지뢰밭 해외 대체투자。‘깜깜이 실사’하나은행 1500억대 판매한이탈리아 헬스케어 사모펀드실사도 제대로 안거쳐 ‘반토막’.호주부동산펀드 등 환매중단DLF·라임 이어 금융사고 뇌관

Bonjour Kwon 2020. 5. 28. 08:09

‘깜깜이 실사’로 외국 빌딩·헬스케어에 돈 쏟아부었다 본문듣기 설정
기사입력2020.05.27.
자본시장 지뢰밭 된 해외 대체투자

5년새 7배나 급팽창했지만
부실 운용에 눈 뜨고 당하고
코로나 피해 업종 투자 많아
위험관리시스템 사실상 없어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이탈리아 헬스케어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관계자로부터 펀드 운용 실상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상품은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에 청구하는 진료비를 유동화한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만들어진 펀드였다. 이런 펀드를 설계할 때는 당연히 현지 실사를 통해 꼼꼼히 리스크를 따져야 하는 데 이런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이 상품은 2017~2019년 하나은행 등을 통해 1500억원 이상 국내 투자자들에게 팔려나갔다. 예금 금리 1% 시대에 수익률이 5%가 될 것이라는 금융회사 직원들의 말에 솔깃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은행이 지난달 실사를 해보니, 애초 투자 운용계획과 다르게 지방정부 건강보험 예산에서 보장되지 않는 채권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고, 펀드의 가치는 거의 반토막이 나 있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지방정부 재정 상황이 악화하면서 채권 회수는 2025년까지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투자자들이 손실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에 나섰고, 은행은 이를 무마하고자 투자원금의 절반을 선지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해외 대체투자와 관련한 금융 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케이비증권의 호주부동산펀드(3200억원), 신한금융투자의 독일 헤리지티 파생결합증권(DLS·4400억원)이 환매중단을 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는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기업은행의 디스커버리채권 펀드(2500억원)가 환매를 중단했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미국 호텔 15개를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가 최근 계약을 철회해 소송전에 들어갔다.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이어, 해외 대체투자가 자본시장의 새로운 ‘지뢰밭’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대체투자는 주식·채권 등 전통적 투자상품을 제외한 부동산·인프라·원자재·항공기·선박 등 대안의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주로 자산운용사들이 설계를 해 펀드를 만들고, 이를 은행과 증권사들이 파는 구조다. 일부 증권사는 규제를 우회해 해외 부동산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 상품을 만들어 팔거나, 회사 돈으로 직접 부동산을 매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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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체투자에서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최근 몇년 간 이 시장이 급격하게 커진 반면에, 영세한 자산운용사들이 설계와 운용을 부실하게 하고 있는 탓이 크다. 해외 대체투자 판매액은 2014년 말 14조2천억원에서 올해 4월말 현재 102조9천억원으로 급증했다. 5년 새 증가폭이 무려 7.2배에 이른다. 저금리 장기화로 고수익에 목말라하는 자금들이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를 계기로 사모펀드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운용사들은 국내에 투자할 자산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해외 투자로 방향을 튼 것이다.

문제는 기초자산이 해외에 있어 철저한 실사와 가치평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후관리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대개 직원이 20~30명 규모이고 10명 안팎도 적지 않다. 이런 인력으로 정보가 부족한 해외 자산을 직접 운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간에 외국 운용사들이 만든 펀드에 재투자하는 방식을 많이 활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외국 운용사에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독일 헤리티지 펀드와 호주 부동산펀드는 우리나라 자산운용사가 사기를 당한 것으로 금융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돈이 물밀듯이 들어오니 그전에 몇천억 운용하던 자산운용사들이 몇조를 운용하게 됐고, 거기에 수익을 내줘야 하니까 해외 자산들에 무리하게 투자하다보니 사고가 생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터진 한 펀드를 들여다본 또다른 당국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외국 빌딩을 살 경우 정상적으로 실사를 하려면 운용역뿐만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 등이 함께 가야 한다. 비용이 몇억씩 든다. 돈이 많이 들다보니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사실상 실사가 힘들다. 그래서 매도자 쪽에서 소개한 현지의 로펌이나 회계법인에 맡기는데 대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실사 결과가 나온다.”

여기에다 코로나19 사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해외 대체투자 중에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상업용 오피스나 호텔 등 부동산, 항공·선박, 에너지 등의 부문은 코로나19 피해가 큰 업종인데다, 미국·유럽 등 피해가 극심한 지역에 투자가 몰려있는 탓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만기가 길어서 1분기 정도는 손실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 가을이나 겨울까지 가면 손실 규모가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위험관리 시스템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해외 대체투자 펀드의 부실 분류체계 등 건전성 관리 기준이 아예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로 투자 물꼬는 터놨으나 위기관리 시스템은 만들어 놓지 않은 게 실책이며,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시장이 급팽창했다고 당국자들은 말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연말 잠재적 위험을 인식하고 실사와 평가, 사후관리 등에 관한 모범규준 제정에 나섰으나 이마저도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코로나19 충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 상업용 부동산 펀드에 대한 전반적인 모니터링 강화와 사전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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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네티컷주가 경제 재개 조치 1단계를 시작한 지난 20일 코네티컷주 서남부에 있는 노워크시의 한 쇼핑몰의 모습. 문을 연 상가가 적고, 쇼핑객도 드물다. 노워크시(미 코네티컷주) EPA/ 연합뉴스


해외 대체투자 102조…부동산펀드가 53%

투자 지역 미국·유럽 많아

코로나 장기화땐 손실 눈덩이

해외 대체투자는 국내에서 판매된 펀드 형태로 투자된 것만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102조9천억원에 이른다. 여기에다 정확한 통계가 잡히지 않는 연기금과 증권사,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의 해외 직접 투자분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대체투자는 크게 부동산펀드와 인프라·항공기·선박 등에 투자하는 특별자산펀드로 나뉜다. 부동산펀드가 54조4천억원으로 53%를 차지하고, 특별자산펀드가 48조5천억원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집계한 자료를 보면, 부동산펀드는 오피스 투자 비중이 53%로 절반을 넘고, 호텔(10%), 창고·물류센터(5%), 상가(3%) 등이 뒤를 이었다. 경기에 민감한 상업용 부동산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특별자산펀드는 인프라 유형이 60.3%로 가장 많이 편입됐고, 기업대출채권과 항공기·선박 투자가 각각 11.8%, 17.7%를 차지했다. 투자지역으로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편중돼 있었다. 부동산펀드의 경우 미국이 44.2%, 유럽은 26.5%였다. 코로나19 피해가 많은 지역과 영역에 투자가 많이 이뤄진 것이다.

해외 대체투자는 대부분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이 많이 들어가 있고, 개인 투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올해 4월말 기준 102조9천억원의 해외 대체투자 중 연기금과 보험사 등이 포함된 금융기관 투자 비중이 75.3%로 가장 많고, 이어 일반법인 23.6%, 개인 1.1%였다.

그러다보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기관투자가들의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험사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해외 대체투자가 21조원에 이른다. 케이비증권이 판매해 환매정지된 호주 부동산펀드에도 3개 보험사가 약 1100억원 물린 상태다. 미국 호텔사업에 투자한 미래에셋도 중국 안방보험과의 소송에서 질 경우 최대 7천억원을 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기금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연금의 해외 대체투자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59조원으로 전체 자산의 8%에 이른다. 이 가운데 부동산투자가 23조원이다.

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