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7.30
"임대차 계약 종료를 앞둔 임대인들이 지인이나 친척을 통해 높은 가격으로 전세 계약서를 쓰고 있어요. 기존 세입자에게는 아직 법 시행 전이니 나가 달라고 통보하고요. 세입자가 나가면 계약서를 파기하고, 높은 가격에 전세 매물을 새로 올리려는 속셈이죠."
A씨는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전·월세 시장에서 이런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고 연합뉴스에 30일 제보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통과된 데 이어,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4년 전세, 임대료 5% 상한을 두는 제도의 시행은 그간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유례가 없는 일인 만큼, 전·월세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 집주인은 세입자 요구 시 전세를 기존 2년에서 2년 더 연장해야 하고, 전세금도 최대 5%까지만 올릴 수 있다.
그러나 개정법 시행 전에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다른 세입자와 새로운 계약까지 완료하면 기존 세입자는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없다. 새 세입자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실제로 계약 만기 6개월 이내의 세입자는 당장 재계약을 해지당하면 바로 집을 구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편법에 의한 최악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편법으로 '임대차 교환 게시판'이 생길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집주인들끼리 서로 2년 임대 교환하는 방식으로 전세를 주는 것"이라며 "서로 목적이 같으니 2년 계약갱신을 요구할 일도 없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에 전셋값 폭등·품귀 현상
집주인이 예상치 못했던 낭패를 당했다며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다.
1주택자지만 직장 때문에 현재 전세로 거주하는 B씨는 자신이 보유한 집의 전세 만기가 내달 말이지만 이달 초 세입자의 상황을 고려해 전셋값을 1억원 올리는 갱신 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임대차 3법이 전세 만기일(8월 말)보다 먼저 시행되면서 미리 작성한 갱신 계약서는 효력을 잃게 됐다. 임차인이 갱신 계약서에 이의를 제기하면 집주인은 이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C씨는 임차인이 요구하면 1억원이 아닌 3천만원만 올려 받아야 할 상황이 됐다.
오는 9월 결혼 날짜에 맞춰 새로운 전셋집을 계약한 B씨는 갑자기 줄어든 7천만원을 다른 데서 장만해야 할 수도 있다.
B씨는 "나는 돈도 없고 주택 소유자라 전세 대출도 나오지 않는데, 새로 계약한 신혼집에 무슨 수로 들어가냐"면서 "법을 믿고 계약서를 믿은 내가 적폐고 투기꾼인가"라고 반문했다.
지금까지 세입자에게 선의를 베풀었다가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된 경우도 나오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단지 안에서 영업하는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코로나19 때문에 월세를 10만원 낮춰 계약했던 집주인을 거론하며 "다음 계약 때에는 낮은 금액을 기준으로 최대 5% 올려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2주택자인 C씨는 "세입자에게 늘 시세보다 5천만원가량 싸게 재계약해 현재 세입자가 8년째 거주 중"이라면서 "이번에 집을 팔아야 해서 나가 달라고 했더니 갈 곳이 없다면서 계속 살겠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세입자들은 또 세입자대로 걱정이 많다.
정부의 잇따른 대출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 막혀 있고, 이사를 하자니 임대차 3법을 앞두고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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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의 역습'…전세대출 연장 거부·신규 전셋값 확 올릴 우려
정지성 , 나현준 , 박윤예 기자
입력 2020.07.30
임대차법 반격나선 집주인
전세대출은 집주인 동의 필수
재계약때 대출연장 거부하면
기존세입자는 쫓겨날수밖에
3개월치 권리금 주고 내보낸후
신규임대료 5%이상 올릴수도
서울 전세물량 한달새 7.5%↓
◆ 임대차법 후폭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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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임대차법 개정안이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활짝 웃으면서 이광재 의원(왼쪽 뒤편)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 전용면적 60㎡ 전세를 3억원에 구한 이용진 씨(가명·34) 부부는 최근 4년 가까이 살던 전셋집에서 결국 나가기로 결정했다. 곧 임대차 3법이 시행된다는 말에 한 번 더 집주인에게 갱신을 요청하려 했지만 집주인이 전세자금대출 연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면서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씨는 "은행 창구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연장하려면 집주인 동의가 필요하다고 안내받았다"며 "집주인에게 수차례 동의를 요청해봤지만 동의해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집을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 소급 적용에 뿔난 집주인들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기세다.
집주인들은 기존 세입자가 받은 전세대출 연장 동의를 거부하거나 전셋집에 실거주로 입주해 세입자를 나가게 한 뒤 월세로 전환하겠다고 엄포를 가하는 등 임대차 3법 적용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부 세입자는 이에 맞서 새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주기를 거부하거나 집을 나가주는 조건으로 이사비 등 '웃돈'을 요구하고 있어 집주인·세입자 간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충분한 논의와 준비 과정 없이 만든 엉성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하고 계층 갈등만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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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현재 집주인들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우선 고려하고 있는 방법은 세입자가 받은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연장 동의 거부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이유로 임대료 상승 5% 이내 범위에서 재계약을 요구하면 전세자금대출 연장에 동의하지 않는 방법으로 해당 세입자를 내쫓고 새 세입자를 맞이하면 된다"는 글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임대차 3법은 신규 계약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새 세입자를 받으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시세에 맞춰 올릴 수 있다.
현재 세입자가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데는 집주인 동의가 필요하다.
전세자금대출을 연장하는 것도 대출해주는 은행으로서는 기존 계약을 철회하고 새로운 계약을 '신규'로 맺는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시중은행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 보증기관인 SGI서울보증보험,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세 기관 중 SGI서울보증보험과 주택도시보증공사 두 기관은 집주인 동의가 필요한 '질권' 설정이 필수다. 질권이란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 집주인이 은행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권리를 말한다.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일종의 보상금(권리금)을 지급하면서 나가 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다. 전날 통과된 임대차보호법에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명분으로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갱신 가능 계약기간(2년) 이내에 다른 세입자를 받았다가 발각되면 기존 세입자가 임대료 3개월분이나 2년간 임대료 차액, 합의된 보상금 중에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이 같은 규정에서 착안해 기존 세입자와 미리 합의해 임대료 3개월치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지급한 뒤 기존 세입자가 나가면 다른 세입자를 받는 것이다.
물론 기존 세입자에게 지급한 보상금은 보증금 인상을 통해 새 세입자에게 전가하면 된다.
아울러 현금 여력이 많은 집주인은 전세를 고액 월세나 반전세로 전환해 기존 세입자의 퇴거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방법도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Q&A 자료를 내고 기존 계약에선 월세 전환 요구가 '곤란'하다고 명시했으나 법조계에서는 임대자의 재산권 행사 문제여서 분쟁으로 갈 때 다툼의 소지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집주인은 전세 매물을 거두고 있다.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집주인이 기존 계약을 끝내고 새 전세를 놓기 위해 2년 동안 실거주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30일 부동산 온라인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 29일 주택 임대차 3법이 상임위를 통과하자 서울 전체 아파트 전세 매물량이 한 달 만에 7.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5개 자치구의 아파트 전세 매물량이 한 달 만에 4만2060건에서 3만8873건으로 감소했다.
임대차 3법이 전세를 줄이고 월세살이를 늘리는 등 서민의 주거복지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인된 것이다.
[정지성 기자 / 나현준 기자 /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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