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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배신1'(윤희숙의원)-문재인 정부 경제 사회 정책에 대한 통렬하고 스마트한 최상급 비판

Bonjour Kwon 2020. 8. 2. 18:59

2020. 7. 7.
최근에 읽었던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깊었다. 윤희숙 KDI 교수가 똑똑하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고 그가 조선일보 칼럼에 게재하는 글도 눈여겨 봤다.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서점에서 구입하긴 했는데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발견해 죽 읽어갔다. 역시 잘 읽혀지지 않더라. 논지가 워낙 촘촘해서 설렁설렁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니 문재인 정부의 경제 사회 정책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이번에 미래통합당 서초갑으로 나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개인적으로 다소 아쉽게 생각한다. 이처럼 빼어난 두뇌를 소유한 양질의 학자가 현실 정치 때를 타게 되면 훗날 실력에 비해 저평가받는 경우를 자주 봤기 때문이다. 특히 왼쪽으로 심하게 편향돼 있는 학계 현실을 감안하면 보수 정당에 한번 몸을 담았다고 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철학자 김형효라고 생각한다. 철학계 전체를 평가할 만한 안목을 갖고 있진 않지만 김형효만큼 폭넓은 사유를 하는 철학자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을 한 뒤 학계에선 심하게 배척받았다. 그의 학문적 업적 역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치에 몸 담지 않았지만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경제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토착왜구의 본진으로 낙인찍혀 있기 때문이다. 국사학계에선 제대로 반박도 못하면서 무시하는 방식으로 이 전 교수를 대하고 있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까. 여하튼 간에 정책의 배신이라는 좋은 책을 만나게 된 건 올해 행운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한다.







<최저임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첫 2년 동안 법정 최저임금이 29%나 올랐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분배뿐 아니라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며 간판 정책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 1분기 제조업 단위 노동비용 증가율은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최저임금 두자릿수 인상의 첫해인 2018년에만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일자리가 24만개나 줄었다. 우려되는 것은 노동시장에서의 교섭력이 약한 이들이 직격탄을 맞는다는 점이다. 학비를 벌어야 하는 학생들이나 학력이 높지 않은 젊은이들이 대표적이다.







임금이란 노동시장의 가격신호이므로 정부가 개입해 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부가 강제로 임금 수준을 정하는 게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어려운 이들을 배려한다는 사회적 목표를 위해 시장 왜곡을 어느 정도 용인한다는 게 최저임금 정책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수십년간의 경제 구조 변화로 인해 최저임금 제도가 최초로 만들어진 20세기 전반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구구조와 경제구조 그리고 경제활동 패턴 변화로 인해 각 가정에서 최저임금 근로자의 역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 노동시장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저임금 근로자를 빈곤층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시 현재 최저임금 근로자 중 빈곤층에 속하는 비율이 3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각 가구에서 소득을 창출하는 사람 수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육아중인 주부들도 낮은 임금이나마 가능한 시간 동안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대학생 아르바이트 상당수가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 서비스 업종인 것을 봐도 그렇다. 이들의 임금을 보조하는 것이 이들의 기를 살리고 근로 의욕을 고취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빈곤을 완화하고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OECD는 1990년대 이후 가장 중요한 정책적 변화를 고용률 위주로의 전환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고용이 최대의 복지라는 말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으로 저숙련도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용자 입장에서 꼭 필요하지 않는 인력부터, 또는 기게로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인력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원래 정책이 지원 대상으로 삼았던 어려운 사람의 일자리 사정을 악화시킴으로써 빈곤 완화라는 정책 목표와 상충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성장률 2%에서 최저임금 30% 올린 건 일자리 메카니즘 파괴 행위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최저임금을 통해 올리는 것에 대해선 찬성하지만 경제에 무리가 갈 정도는 곤란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정서다. 따라서 논점은 경제가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무리 없이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인상률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을 되돌아볼 때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10% 인상이 현재의 20% 인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2017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중위 임금의 56%에 달해 이미 어지간한 OECD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여기에 우리의 제도적 특수성인 주휴 수당(주 5일 일할 경우 하루치의 임금을 더 보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약 20%를 더해야 하므로 최저임금이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보다 사실상 더 높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 첫해 최저임금이 16.4%나 올랐으나 경제가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한편 다른 나라들은 최저임금을 어떻게 결정할까. 영국이 경우 정부 위촉 전문가 위원이 노사의 의견을 청취하고 현황을 분석해 인상률을 건의하면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구조다. 전문가 위원회와 정부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인 셈이다. 일본의 경우 거시 변수를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결정하되 산업과 지역별 생산성을 고려해 차등화한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반면 미국이나 네덜란드는 공식적인 노사 의견 청취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다. 우리나라는 노사 협상에 맡겨놓는 경우인데 이는 많은 남미 국가들이 택하는 방식이다. 최저임금을 법으로 정한다는 것은 재분배 목표를 위해 시장에 개입해 법정 수준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범법자로 처별한다는 강력한 정책 의지다. 따라서 법정 최저임금 제도를 채택한 이상 지금처럼 이를 노사 교섭의 대상으로 만들어놓고 대기업 정규직을 대표하는 핵심 노조가 결정권을 갖는 구조는 시정돼야 한다. 지은이는 "성장률 2%의 경제에서 최저임금이 2년에 걸쳐 30% 가까이 인상된 것은 경제의 일자리 창출 메카니즘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윤희숙





<주52시간제>



한국 경제는 낙후된 부문과 선진적 부문 간 격차가 커서 어디를 주목하느냐에 다라 진단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생산성이 높은 대기업도 있지만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업 방식의 저생산성 부문도 다수 공존하고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시대인데도 우리나라에는 장시간 근로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그런데 저생산성 사업체를 대상으로 하루 8시간 근로를 무조건 준수하라고 갑자기 강요하는 것은 사업을 접으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는 것은 많은 비판의 여지를 남긴다. 더욱이 규제의 획일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만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조치 이후 내세운 긍정적인 변화가 원래부터 근로조건이 좋았던 부문들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공공 부문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칭찬이 자주 들린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근로 시간이 각각 39분, 10분 줄었다며 떠들썩하게 발표했다. 광화문은 공무원과 대깅버이, 여의도는 금융업이 밀집된 지구다. 이들의 근로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면 모르되 정부가 규제를 동원해 근로시간을 단축한 것의 성과로 이들을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장시간 노동이 인권 문제로 대두되던 산업혁명 초기에 비해 경제구조가 너무나 달라진데다 근로시간 규제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에 더 이상 근거가 없다는 것 또한 잘 알려졌다. 그 결과 이제는 장시간 근로의 문제가 심각한 곳을 정확히 파악해 대응하되 규제는 탄력적으로 운용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로 해야 한다는 것이 널리 공유되는 원칙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정반대로 주 52시간 근로제를 획일적이고도 강력하게 밀어붙여 노동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일자리 기회에 목마른 청년들, 일자리 유지가 절실한 저숙련 장시간 근로자들이다.







노동시장 다양성으로 국가간 근로시간 비교는 부적절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이 2018년 기준 1980시간 정도인 반면 OECD 국가는 대략 1750시간이다. 이렇게 연 200시간에 달하는 차이 때문에 그간 법정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개진됐다. 그러나 이렇게 근로시간을 국가 간 평균으로 비교하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 국가 간 비교를 주로 하는 국제기구들이 이렇게 주장하는것은 각국 노동시장의 다양성이 증가해 평면적 비교가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정부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이런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 또 선진국보다 훨씬 장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시간제 근무 비중이 낮고 저생산성 부문과 고생상선 부문 근로자의 근로시간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선진국과 비교할 문제는 아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이 항시적으로 계속될 경우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는 데 반대하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장시간 근로 관행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고 믿거나 이를 위해 규제에만 의존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우리나라 장시간 근로 중 대부분은 저생산성 부문으로 근로자들 역시 저소득 근로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 저임금 저소득 근로자들이 여가 시간에 부여하는 가치가 대체적으로 높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당사자보다 정부가 대신 판단하는 것이 꼭 합당하다는 법은 없다. 많은 선진국에서 초과 근로시간의 관리를 월 단위나 연 단위로 전환시킨 것과 달리 아직도 일주일 단위로 고집하는 것도 과도한 경직성이다.







2017년 대선 슬로건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근로시간 단축으로 50만 개 일자리 창출'이 강조됐다. 하지만 그간 관련 연구결과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를 늘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프랑스는 2000년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는 법을 통과시켜 전세계 주목을 받았지만 고용조정이 어렵다는 기업 측 우려로 인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문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근로시간 규제로 인력난이 악화될 중소기업들이 지금 허둥지둥하면서도 인력을 더 고용하지 않는 것은 시장 상황에 다라 추후 고용 규모를 줄어야 할 시점이 돼도 조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근래 각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근로시간 규제 방식은 일반적으로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해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고 동의되는 최소 수준은 뚜렷하게 규정하되(하루 10시간) 기준 근로시간(하루 8시간)을 일정 기간 내에 평균적으로 준수하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다. 방향은 제시하되 구체적인 구현 방식은 사업장 사정에 맞도록 노사 자체가 탄력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요약>

1. 정책의 배신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사회 정책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2.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청년들, 비숙련 장기간 근로자들을 사지에 몰아넣었다

3.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에도 까다로운 고용 조정 등으로 인해 기대했던 일자리 창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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