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0.11.16
부유층의 조세 부담은 꾸준히 늘었지만,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소득·자산 불평등을 이유로 '부자 증세'를 강화했지만, 분배 구조 효율화엔 실패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복지 예산을 저소득층에 집중하고, 비효율적 재정 지출 등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유층 소득세, 얼마나 늘었나
16일 중앙일보가 추경호 의원실(국민의힘)에서 받은 '최근 5년간(2014~18년) 종합소득세 1000분위 현황(국세청)'을 분석한 결과, 국내 종합소득 상위 0.1%(6911명)는 전체 종합소득세의 22.4%(2018년 귀속분)를 부담했다. 이 비중은 상위 1% 50.2%, 상위 10%는 86.4%에 달했다.
상위층의 종합소득세 부담 비중은 2016년 저점을 찍고 계속 커지는 모습을 띤다. 전체 종합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유효세율이 꾸준히 올랐기 때문이다. 상위 0.1%의 유효세율은 2016년 32%에서 2018년 34.9%로 상승했다.
전 국민 평균이 같은 기간 14.6%에서 14.9%로 오른 것과 비교하면 부자일수록 세 부담이 가파르게 늘었다. 종합소득세는 사업·근로·이자·배당·부동산임대 등 각종 소득이 발생했을 때 내는 세금이다.
정부는 올해에도 소득세법 개정안에서 1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을 45%로 적용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당(양경숙 의원)도 지난 8일 소득세 최고세율을 46%로 올리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산에 비해 세금 더 걷어?
부유층의 소득세 부담 비중은 이들이 가진 자산 비중보다 컸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성인 중 자산 상위 0.1%는 국내 순자산의 10%를 보유했다.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23.9%, 상위 10%는 전체의 62.9%의 순자산을 갖고 있었다.
소득세만으로 따져도 보유한 자산에 비해 내는 세금 부담이 큰 셈이다. 여기에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자산 보유세까지 더하면 부유층의 세 부담 비중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부자 증세로 평등해졌나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한 부자 증세가 이뤄졌지만 실제 효과를 가늠하긴 쉽지 않다. 오히려 한국 사회 부의 불평등은 더 악화했다는 지적도 있다. 용혜인 의원실(기본소득당)이 한국은행 자료로 분석한 한국의 피케티 지수(가계·정부 보유 국부(자본)/국민 순소득)는 지난해 8.8로 한 해 전보다 0.5%포인트 올랐다.
피케티 지수는 국민소득보다 자본이 증가하는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숫자가 커질수록 더 불평등해졌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부의 양극화에는 산업 구조와 일자리, 경기 변동 등도 영향을 주지만 국내 조세·복지 시스템도 이를 완화하는 데 작용할 수 있다. 문제는 조세 시스템 등으로 인한 불평등 완화의 정도나 효과를 체감하는 것이 어렵다는 데 있다.
부자 증세가 불평등 완화라는 기대 효과 대신 오히려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중산층·서민 반발을 의식한 정부·정치권이 보편 증세로 세원을 넓히기보다 부자 증세를 택한 탓에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세원 확대가 어려워져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2018년 기준 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3%)보다 크게 낮다. 게다가 중산층 대다수가 실제 납부하는 세율(실효세율)이 낮다 보니, 저소득층에 지원할 세수도 부족해진다.
저소득층에 대한 광범한 면세는 고용보험 등 복지 확대에 필요한 소득 파악도 어렵게 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총급여(근로소득)가 1000만원 이하인 저소득자의 면세자 비중은 100%, 1500만원 이하는 85%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저소득층 소득 파악이 안 되면 전 국민 고용보험 적용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장제우 전 균형사회연구센터 연구원은 저서『세금수업』에서 "국민을 위한 길은 복지에 필요한 세금을 확보하는 것이지 증세를 배척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쓸데없는 재정 지출은 없애야"
보편 증세가 어렵다면 부자증세 등을 통해 거둬들인 돈을 제대로 쓰는 것도 불평등 해소에 중요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저소득층 지원에 쓸 재정을 일회성 공공 일자리 사업이나 계층 구분 없는 인기영합주의적 현금 살포 등에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근로자 면세 비중은 정치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서서히 낮출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효과가 낮은 지출을 구조조정하는 것부터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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