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7.
전직관료·학자·기업인 100人 설문
응답자 33% "세율인하 최우선"
공제요건 완화 필요성도 제기
자본이득세 만든 캐나다·호주
상속받은 주식 처분할 때 납부
안정적 경영활동·일자리 보장
獨선 대기업도 30% 특별공제
◆ 세제개혁 미룰 수 없다 ② 기업 발목잡는 세금 ◆
전라남도 장성에 위치한 공장에서 변기 등 위생 도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와토스코리아.
이 공장 사무실 한구석에는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69)가 수년간 의욕 있게 준비해왔던 시제품들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신사업을 백지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중국 등지의 저가 부품 공세에 플라스틱 부품만으로 한계를 느껴 없는 회사 살림에도 연구개발 비용을 대거 투자해 세라믹 양변기, 수도꼭지 등 신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신제품 출시로 업종을 변경했다간 자칫 아들에게 '상속세' 폭탄만 물려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송 대표는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활용해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고 했다. 와토스코리아는 화장실·욕실용 자재 시장 1위 기업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48년 업력으로 코스닥 상장도 됐다. 가업상속공제란 중소기업 등의 가업 승계 시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정부가 세 부담을 경감해 주는 제도다. 송 대표는 경영 기간이 30년을 넘어 가업상속공제 제도로 500억원의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거미줄처럼 복잡다단한 사후관리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해당 제도가 업종 변경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원료가 다른 신제품을 만들면 제조업 분류상 업종이 변해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언을 들었다. 송 대표는 "신사업에 투자를 안 하면 기업 경쟁에서 도태되고 투자를 하면 신제품 매출 비중이 커져 업종 변경으로 간주돼 상속세에 더해 가산세 폭탄을 맞을 판"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생각했다"며 "상속 자체를 사실상 막아 놓고 100년 기업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상속세의 가장 큰 폐해는 '세금으로 인한 경제 활동의 왜곡'이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속세 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상속세 부담 완화를 위해 기업 경영을 포기하는 등 경제 활동을 왜곡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신문이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정치인, 전·현직 관료 및 학계 등 100명을 대상으로 세제 개혁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93%가 상속세 개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 절대 다수가 상속세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다. 응답자 중 33%는 상속세 개혁의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세율 인하'를 꼽았으며, 25.3%는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 및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도 20.9%나 됐다. 자본이득세는 주식 상속 단계에서는 상속세를 내지 않고 향후 상속받은 주식을 처분할 때 세금을 내는 제도다.
분할납부(연부연납) 기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9.9%였다. 현행 연부연납 제도는 상속세를 5년간 6회에 걸쳐 나눠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나눠 내기로 했다. 한 번 낼 때마다 2조원이라는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 만큼 향후에는 납세자의 납부 능력과 세수 확보 안정성을 고려해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상속세 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67.4%는 '과도한 세율로 기업 경영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35.9%는 '투자·고용·연구개발(R&D) 등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소득세 등을 모두 납부한 재산의 결과물에 또 상속세를 부과해 이중과세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18.5%였다.
전문가들은 상속세에 대해 세수 확보 관점보다는 경영자들이 기업 활동에 집중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산업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곧 세수를 증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전 세무학회장)는 "한국의 현행 상속세는 기업의 경영 지속성을 위협하는 등 글로벌 추세에 어긋난다"며 "특히 높은 상속세율은 경제 성장의 핵심인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조속히 개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와 호주는 주식을 상속받을 때 세금을 내지 않고 주식을 나중에 처분할 때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세금을 내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기업의 경영 활동을 보장해 사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상속세가 없는 곳은 14개국이다.
독일은 중소·중견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까지 상속 재산의 최고 30%까지 '특별공제'로 상속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시켜 준다. 또 7년간 급여 총액을 유지하면 사전 특별공제액을 제외한 나머지 상속 대상 사업 재산 중 2600만유로(약 350억원) 한도 내에서 최대 100% 상속세를 감면해 준다.
[기획취재팀 = 전경운 기자 / 박재영 기자 / 성승훈 기
전직관료·학자·기업인 100人 설문
응답자 33% "세율인하 최우선"
공제요건 완화 필요성도 제기
자본이득세 만든 캐나다·호주
상속받은 주식 처분할 때 납부
안정적 경영활동·일자리 보장
獨선 대기업도 30% 특별공제
◆ 세제개혁 미룰 수 없다 ② 기업 발목잡는 세금 ◆
전라남도 장성에 위치한 공장에서 변기 등 위생 도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와토스코리아.
이 공장 사무실 한구석에는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69)가 수년간 의욕 있게 준비해왔던 시제품들이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신사업을 백지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중국 등지의 저가 부품 공세에 플라스틱 부품만으로 한계를 느껴 없는 회사 살림에도 연구개발 비용을 대거 투자해 세라믹 양변기, 수도꼭지 등 신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신제품 출시로 업종을 변경했다간 자칫 아들에게 '상속세' 폭탄만 물려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송 대표는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활용해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고 했다. 와토스코리아는 화장실·욕실용 자재 시장 1위 기업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48년 업력으로 코스닥 상장도 됐다. 가업상속공제란 중소기업 등의 가업 승계 시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정부가 세 부담을 경감해 주는 제도다. 송 대표는 경영 기간이 30년을 넘어 가업상속공제 제도로 500억원의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거미줄처럼 복잡다단한 사후관리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해당 제도가 업종 변경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원료가 다른 신제품을 만들면 제조업 분류상 업종이 변해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언을 들었다. 송 대표는 "신사업에 투자를 안 하면 기업 경쟁에서 도태되고 투자를 하면 신제품 매출 비중이 커져 업종 변경으로 간주돼 상속세에 더해 가산세 폭탄을 맞을 판"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생각했다"며 "상속 자체를 사실상 막아 놓고 100년 기업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상속세의 가장 큰 폐해는 '세금으로 인한 경제 활동의 왜곡'이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속세 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상속세 부담 완화를 위해 기업 경영을 포기하는 등 경제 활동을 왜곡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신문이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정치인, 전·현직 관료 및 학계 등 100명을 대상으로 세제 개혁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93%가 상속세 개혁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 절대 다수가 상속세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다. 응답자 중 33%는 상속세 개혁의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세율 인하'를 꼽았으며, 25.3%는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 및 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도 20.9%나 됐다. 자본이득세는 주식 상속 단계에서는 상속세를 내지 않고 향후 상속받은 주식을 처분할 때 세금을 내는 제도다.
분할납부(연부연납) 기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9.9%였다. 현행 연부연납 제도는 상속세를 5년간 6회에 걸쳐 나눠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12조원 규모의 상속세를 나눠 내기로 했다. 한 번 낼 때마다 2조원이라는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 만큼 향후에는 납세자의 납부 능력과 세수 확보 안정성을 고려해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상속세 개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67.4%는 '과도한 세율로 기업 경영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35.9%는 '투자·고용·연구개발(R&D) 등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소득세 등을 모두 납부한 재산의 결과물에 또 상속세를 부과해 이중과세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18.5%였다.
전문가들은 상속세에 대해 세수 확보 관점보다는 경영자들이 기업 활동에 집중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산업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곧 세수를 증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전 세무학회장)는 "한국의 현행 상속세는 기업의 경영 지속성을 위협하는 등 글로벌 추세에 어긋난다"며 "특히 높은 상속세율은 경제 성장의 핵심인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조속히 개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와 호주는 주식을 상속받을 때 세금을 내지 않고 주식을 나중에 처분할 때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세금을 내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기업의 경영 활동을 보장해 사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상속세가 없는 곳은 14개국이다.
독일은 중소·중견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까지 상속 재산의 최고 30%까지 '특별공제'로 상속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시켜 준다. 또 7년간 급여 총액을 유지하면 사전 특별공제액을 제외한 나머지 상속 대상 사업 재산 중 2600만유로(약 350억원) 한도 내에서 최대 100% 상속세를 감면해 준다.
[기획취재팀 = 전경운 기자 / 박재영 기자 / 성승훈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