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신자유주의 아니다…시장중시와 시장만능은 전혀 달라”
입력2021.06.02.
곽정수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원승연 명지대 교수
개혁진보성향 ‘학현학파’ 소장학자들 정부 비판 화제
“시장실패 대응·복지확충 위해 정부 확실히 개입해야
보수언론 ‘문재인 경제 낙제점’ 보도에 “동의 못해”
최저임금 인상·부동산 핀셋규제 ‘시장 수용성’ 간과
공공임대 비중 20%로 늘려 주택시장 구조 바꿔야
종부세 완화에 반대…청년들 주거복지에 활용해야
재벌개혁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니다
2021년 한국사회 시대정신은 ‘불평등·불공정 해소’
중산·청년층 복지 강화해야…부가세 13%로 인상을
원승연 명지대 교수(전 금융감독원 부원장)가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학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진보 경제학계의 원로인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 그룹인 ‘학현학파’의 소장파 학자들이 최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소주성)과 부동산 정책 등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비판해 화제다. 변 명예교수가 명예이사장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지난달 14일 주최한 ‘한국경제, 현재를 묻고 미래를 답한다’ 심포지엄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제로 공동발표한 류덕현·허석균(중앙대), 원승연·우석진(명지대), 박민수(성균관대) 교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보수언론은 개혁 성향의 학자들이 같은 편인 문재인 정부의 경제 운영 전반에 낙제점을 주었다고 크게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를 줄곧 공격해온 그들의 입맛에 맞았던 것 같다. 학자들이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들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한겨레>가 학자들의 대표격인 원승연(57) 명지대 교수를 지난 27일 서울 명지대학교에서 만났다. 원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공동발표에 참여한 교수들에게 질문에 대한 의견을 미리 들었다고 했다.
원 교수는 “문재인 경제는 낙제점” 보도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면서 “정책 중에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고 선을 그었다. 또 신자유주의라는 해석에 대해서도 “우리를 시장만능과 방임을 뜻하는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에 황당함을 느낀다”면서 “시장을 중시하는 것과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보수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고 일축했다. 나아가 “정부는 시장실패 대처와 복지 확충을 위해 개입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교수는 심포지엄 취지에 대해 “정부를 비판한 게 아니라 부동산 등 실패한 정책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진단하기 위한 것으로, 반성을 제대로 해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서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원 교수는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전체 주택의 20% 정도로 늘려서 부동산시장의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지 말고 청년들의 주거복지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 교수는 드물게 학계·업계·관계를 두루 섭렵한 금융전문가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삼성생명·외환코메르츠·신한·교보 등에서 주로 자산운용을 맡았다. 이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영남대에 이어 명지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금융감독원 부원장(자본시장·회계 담당)을 맡았다. 재임 중 삼성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의 불법·부실판매 등 민감한 사건 처리를 주도하면서 직원들에게 “외압에 휘둘리지 말라”며 원칙 준수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학현학파를 소개해달라.
“불평등 해소를 위한 분배와 경제민주화를 중시하는 변형윤 명예교수님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다. 명예교수님이 명예이사장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활동을 같이하고 있다. 70대인 강철규(서울시립대), 김태동(성균관대),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부터 40대 후반까지 연배가 넓게 분포돼 있다. 지향점은 같아도 구체적인 정책과 방법론에서는 생각이 다양하다.”
―개혁진보 성향 소장학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고 해서 화제다. 심포지엄의 취지는?
“정부를 비판한 게 아니다.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 부동산 정책 등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진단한 것이다. 그래야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반성을 제대로 해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보수언론은 “같은 편인데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 운영 전반에 낙제점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점수를 매긴 적이 없다. 정부 정책 중에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주성’을 비판했다. 기본적으로 복지정책인데 임금·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와 성장으로 이어진다며 무리하게 ‘성장 담론’과 연결지었다는 것이다. 같은 학현학파 선배이자 소주성 입안자인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기존의 불평등 성장과 다른 방식의 성장을 추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소주성이 의미가 없다거나 불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소주성은 불평등 개선, 복지 강화, 일자리 창출, 공정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게 이뤄지면 미래 성장잠재력이 높아져 지속성장의 발판이 된다. 옳은 얘기다. 그런데 소주성을 하면 향후 1~2년 뒤 바로 성장률을 높이는 것처럼 비쳤다. 혁신성장이 강조된 것도 그런 영향이다. 분배를 강조하다 보면 일시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과거 정부와 똑같이 성장률에 얽매였다. 성장을 경제 목표로 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이 중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시장 수용성’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실제 자영업자, 노동 취약계층에게 타격을 줬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임기 내 1만원 달성 공약을 포기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생계 보장을 위해 중요하지만 고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일정액 이하의 저소득 근로자에게 장려금을 지급하는 근로장려세제(EITC), 일자리 안정기금 등의 보완책을 잘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박근혜 정부에서 연평균 7.4%, 문재인 정부에서 7.7%였다. 문재인 정부가 소리는 요란했지만, 큰 차이가 없다. 국민에게 무리하게 보여주려 한 것 같다. 4년 뒤 좋은 성과를 내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접근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크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어떤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가 정규직화를 선언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산업구조의 변화로 정규직화가 쉽지 않다. 기업에 무조건 강제할 수도 없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법을 더 고민했어야 한다. 동일한 종류의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주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도입도 중요하고, 고용 안정 노력과 사회 안전망 강화도 필요했다. 정치적으로는 독재정권에서 탈피했는데, 경제적으로는 과거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정책의 방향 착오 때문인가, 아니면 실행 과정에서의 능력이나 의지 부족 때문인가?
“정권 출범 초기 정책 방향은 옳았다. 문제는 정책이 그대로 실행됐느냐는 것인데, 국민 기대보다 실행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의지와 확신도 약해졌다. 원래 생각하고 국민에게 약속했던 정책 방향으로 굳건히 나갔어야 했다. 안타깝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금융규제, 규제지역 지정 등 ‘핀셋 규제’로 미시적 조정을 시도하며 시장 수용성을 무시하다가, 정책 신뢰까지 잃었다고 비판했다. 규제하지 말고 시장에 맡기라는 보수의 주장과 같은가?
“부동산 공급은 한정돼 있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고, 저소득자는 집을 살 수 없다. 그래서 부동산은 시장에만 맡길 수 없고, 정부가 주거 복지를 위해 개입해야 한다. 부동산을 시장에 맡기라는 보수의 주장과 전혀 다르다. 북유럽은 공공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의 20%를 차지한다. 주거 복지가 단순한 가격 통제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도 현재 8% 수준인 공공임대주택 비중을 북유럽 수준까지 높여서 주택시장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면 주택 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주택 공급 확대에 나서면서, 공공 주도 재개발·재건축으로 개발이익을 공공과 민간이 나누는 방식을 추진하는데.
“정부가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용적률 상향조정 등의 규제 완화를 하는 특별공급 방식에 반대다. 개발이익을 공공과 민간이 나눈다지만, 결국 개발이익을 얻은 민간은 다시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을 벌려고 할 것이다. 민간은 집이 낡으면 정부가 가만있어도 다시 집을 짓는다, 이익이 안 나면 그냥 낡은 집에서 살면 된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국민이 내집을 선호한다면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대폭 완화를 추진하는데.
“586세대의 사고방식이다. 도심에서 먼 곳에 있는 질 낮은 주택이라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야 한다. 모두가 선호하는 입지에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지어야 한다.”
―신도시 전체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식은 어떨까? 국유지 위에 임대주택을 지으면 임대료를 시세의 절반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텐데.
“똑같은 생각이다. 정부 안에는 이렇게 하면 주변 집값이 너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집값이 30% 떨어져도 엘티브이 규제 때문에 문제가 없다. 정부는 집값이 하락하면 지지율도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데, 집 없는 사람들 걱정이 먼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보유세 실효세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집권 뒤 이행하지 않았다. 집값이 급등하자 뒤늦게 보유세를 급격히 올려 국민 불만을 자초했다. 부동산 실패는 국민과의 약속 위반이 큰 요인 아닌가.
“100% 동의한다. 집권 초부터 보유세를 적정히 올리고 금융 규제도 제대로 하고, 주택 공급도 늘렸으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글로벌 과잉 유동성이 집값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 실패’다.”
―민주당이 재보선 패배 이후 민심 반영을 이유로 부동산 세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재산세 감면 혜택을 늘리기로 했고, 종부세·양도세 완화는 검토 중이다.
“부동산정책을 위해 금융·조세 정책의 원칙과 역할을 훼손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조세 저항도 그 때문이다. 부동산은 공급 확대 등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수요 억제를 이유로 엘티브이 규제를 한다. 그러다 보니 무주택자가 주택을 살 기회가 상실된다. 조세의 최대 목적은 국가 재정을 위한 재원 확보다. 세금을 잘 걷으려면 조세 정의가 필요하다. 재산세는 주민들이 공공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내는 지방세다. 공공서비스가 좋아지지 않았는데, 재산세만 올리니까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재산세 부담을 완화해서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별도의 감면 기준을 두는 것은 좋지 않다.(민주당은 재산세 감면 상한선을 공시가격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종부세는 부유세 성격이다. 부과 기준을 현행 1주택자 기준 9억원에서 더 완화할 이유가 없다. 종부세를 청년들의 주거 복지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적정성 논란이 제기되는 공시가격 산정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공시가격은 집값에 연동돼 있다. 정부는 현재 70%에 못미치는 현실화율을 단계적으로 90%까지 올릴 계획이다.
“동일 아파트 단지의 동일 평형이라도 층·동·방향에 따라 모두 공시가격이 다르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공시가격 산정과 관련한 적정성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매년 공시가격을 조정하지만, 미국은 대개 5년에 한번씩만 한다. 그리고 시세와 차이를 두고 한꺼번에 많이 올리지 않는다. 집값 상승으로 세금을 더 거둘 필요가 있으면 세율을 올린다. 정부가 세율이 아닌 공시가격을 올려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일종의 꼼수다. 국민들은 다 안다. 금융·조세 정책을 부동산시장 안정수단으로 과도하게 의존하면 안된다.”
―문재인 정부에는 개혁진보 성향 학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정책이 미흡했다면 그들의 책임도 있는 것 아닌가?
“저를 포함해 모든 참여자는 책임이 있고, 반성해야 한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잘해야 하느냐이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 참여자가 늘었지만 기관이나 부서마다 1명씩 들어가 봐야 여전히 소수다. 교수 1명이 장관이 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을 보면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는 평소 정당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공동으로 연구하고, 책임있는 자리를 맡아 경험과 정책 역량을 키운다.”
―지난 4년간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에서야 비판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학자들은 주로 정부 외곽의 위원회에 참여했다. 주택 공급 확대나 최저임금 인상 보완 같은 제안을 상당히 많이 했다. 하지만 제대로 반영된 적이 한번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잘한 것은 무엇인가?
“2019년 일본 수출규제 대응과 2020년 이후 코로나 경제위기 관리를 잘했다. 앞으로는 망가진 자영업자를 어떻게 복원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지금부터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2021년 한국사회 시대정신으로 ‘불평등과 불공정 해소’를 꼽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강조했지만 해결이 안 됐다. 불평등에는 소득과 자산, 자본과 노동, 정규직과 비정규직,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 정부는 소득 불평등을 강조하다 보니 부동산 등 자산 불평등 문제를 놓쳤다.”
―불평등과 불공정 해소를 위해 중산층의 삶의 질 개선, 복지체계 재설계, 공정사회를 강조했는데?
“지금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1% 대 99%’ 문제였던 과거와 달리 ‘10% 대 90%’의 문제다. 상위 10%의 소득 증가율이 최상위 1%보다 더 높다. 또 상위 10%와 하위 90%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중산층이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상위 10% 선에서 절벽처럼 막혀 있다. 지금까지는 하위층의 복지만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제는 중산층도 생각해야 한다. 또 청년들에게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상위 10%는 누구인가?
“고위관료·전문직 등 파워엘리트다. 이들은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부지불식간에 자기에게 유리하게 제도를 만든다. 교육제도도 부자와 고학력자 자녀에게 유리하게 설계된다. 개혁진보진영 일부가 기득권화하면서 ‘내로남불’ 논란이 나오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간 수준의 복지재정 지출을 위해서는 연간 70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최소한 일정 세금 이상은 부담하도록 하는 ‘소득세 최저한세’를 제안했는데, 그것으로 재원 마련이 충분한가? 바이든 미 행정부는 부자증세를 추진하는데.
“먼저 재정개혁이 필요하다. 선심성 인프라 투자는 없애야 한다. 지나친 비과세 감면도 줄여 국민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종부세와 자본이득세 같은 부유세도 필요하다. 하지만 재원 충당에는 한계가 있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1% 최저한세’는 모든 사람이 납세에 참여하자는 취지다. 이렇게 해도 재원은 부족하다. 부가가치세를 현행 10%에서 13%로 올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꼽혀온 재벌개혁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는데?
“재벌개혁을 한다고 불평등·불공정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재벌개혁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제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불평등이 다층적으로 변했다. 재벌도 다양한 불공정 문제의 하나이다. 정부는 그동안 재벌을 대하는 태도에서 양극단의 모습을 보여줬다. 어느날은 재벌을 방문해 칭찬하고, 어느날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공정하게 법적용을 하는 것에만 힘썼으면 좋겠다.”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직접적인 시장 개입과 자원 배분의 축소를 주장했다. 이를 두고 신자유주와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도 있다.
“우리에게 시장만능, 시장방임을 뜻하는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에 황당함을 느낀다. 과거 빨갱이라는 말처럼, 요즘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비판하고 싶은 사람을 공격하는 수단이 된 것 같다.(웃음) 첫째 정부가 필요할 때는 개입을 확실히 해야 한다. 둘째 작은 정부가 아니라, 복지 확충을 위해 재정 확대를 해야 한다. 셋째 어설프게 공공기관에 시장 기능을 도입해서는 안된다. 공적 기능을 시장 효율성으로 측정하면 안 된다.”
―시장을 중시하는 것과 시장만능은 다르다는 뜻이네.
“그렇다. 시장은 중시하는 것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보수의 주장과는 엄연히 다르다. 지금은 정부가 시장을 주도하지 못한다. 가격 통제를 해도 정책 효과를 볼 수 없다.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살펴서 정책을 펴야 효과가 있다. 아무리 진보적인 정책도 그것을 못 하면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장이 불공정하면 제도와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 시장실패로 분배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시장 개입이 문제가 아니라 개입 방식이 왜 옛날식이냐는 것이다.”
곽정수 논설위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