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경제,금융시장.사회 변화분석

고신용자 대출.ㅡ부동산.주식등자산시장유입.ㅡ코로나이후 자산시장 서 양극화심화.막대한 유동성에 ‘빚투’ 늘어주택 유무로 자산양극화 심화박탈감에 ‘노동의욕’마저 꺾여.소득과 고..

Bonjour Kwon 2021. 8. 24. 23:10

"집 있으면 몇 달 새 벼락부자..집값 폭등에 "일을 왜 하는지"
2021. 08. 24.
'코로나 저금리'가 키운 자산불평등
[경향신문]

치솟는 부동산 가격…‘내 집 어디에’ 비 내리는 서울 용산구 주택가 골목길을 24일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멀리 강남 쪽에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막대한 유동성에 ‘빚투’ 늘어
주택 유무로 자산양극화 심화
박탈감에 ‘노동의욕’마저 꺾여

경기 평촌의 20평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부 김모씨(38)는 두 달 전 전세보증금 5%를 올려 3억5000만원에 재계약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계약이 만료되는 2년 후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김씨는 “이러다간 월셋집으로 내려앉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면서 “집 가진 사람들은 몇 달 새 억 단위로 집값이 올라 ‘벼락부자’가 됐는데, 우리처럼 없는 사람은 열심히 모아도 전세금조차 따라가기 어려운 ‘벼락거지’가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초저금리로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자산불평등으로 이어지면서 사회분열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 집값을 중심으로 자산가격이 급등하면서 월급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한다거나 저축을 통해 자산을 형성하겠다는 기대가 무너지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의욕마저 꺾이고 있다.


24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코로나19 이후 고신용자들 자산은 더 불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비영리단체 총자산은 전년 대비 1110조원(11.9%) 늘어난 1경423조원인데 같은 기간 금융부채는 172조6000억원(9.2%) 늘어난 2051조8000원이었다. 자산 증가폭이 부채 증가폭을 앞지른 것이다. 대출을 받기 쉬운 고신용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가 성과를 거두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고신용자들의 가계신용대출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13.3%에서 올해 1분기 19.6%로 늘어난 반면, 저신용자는 -6.1%에서 -9.7%로 감소했다.

주택 보유자와 무주택자 간의 자산양극화도 심해졌다. KB국민은행 집계에 따르면 서울지역 기준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비율은 2020년 1분기 13.9배에서 올해 1분기 17.4배로 급등했다.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내 집 마련을 위해 모아야 하는 기간이 한 해 동안 약 3.5년 길어졌다는 뜻이다.



소득과 고리 끊어진 ‘자산불평등’ 심화
코로나 속 저금리 혜택 고소득층 몫…‘빚투’마저 양극화
2030을 ‘영끌’로 내모는 사회…“부동산 정책 신뢰 문제”
코로나19 발생 이후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핵심은 ‘가계부채’와 ‘집값’이다.

자산불평등이 소득불평등보다 더 큰 문제인 이유는 영향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소득 대부분을 식비·교통비·병원비·교육비·주거비 등으로 지출하는 서민들은 저축이 쉽지 않은데, 자산가격이 크게 뛰면 저축을 하거나 대출을 받더라도 주택을 비롯한 자산을 구입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경제불평등은 굳어진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근로소득의 경우 개인의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고,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근로소득의 격차는 사회적으로도 수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그러나 자산은 상속·증여가 가능하며 투기행위를 통해 급속한 증식이 이뤄지기도 하는데,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집단은 참여 자체가 제한된다”고 진단했다.

■ “왜 일해야 하나”

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이 주요국에 비해 높은 한국에서 집값은 민감한 영역인데, 지난해부터 폭등하며 ‘제자리걸음’인 소득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올 1분기 도시지역에서 중위에 해당하는 3분위 근로자 연소득에 비해 서울의 3분위 주택가격은 17.4배에 달했다. 서울에서 중간 가격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17.4년이나 소득을 한 푼 안 쓰고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미 주택을 보유한 이들은 그만큼 불로소득이 커졌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0 한국 부자보고서’를 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들 가운데 25.5%는 부동산 투자가 현재의 부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꼽았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다주택 소유자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무주택자는 ‘내 집 마련’에서 더 멀어졌다”면서 “주거 사다리가 붕괴되면서 ‘평생 남의 집에서 사는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소득과 동떨어질 정도로 자산가격이 급등하면, 열심히 일해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유인이 사라진다. 또는 주택담보대출을 갚느라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면서 내수가 위축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집값이 많이 올라서 소득으로 감당이 안 되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좌절시키는 경우가 많다”면서 “예전에는 서울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1억~2억원 차이 나던 것이 지금은 10억원 이상 차이가 나는 수준이 되니까 이것이 과연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인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고 이는 근로 의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 빚마저도 있는 자에 유리하다

회사원 권모씨(37)는 회사 동료들을 보면 괴리감을 느낀다. 비슷한 월급을 받고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주택이 있는지, 집이 어디에 있는지, 지난해 무슨 가상통화(코인)를 얼마나 샀는지에 따라 처지가 천차만별이라서다. 권씨는 “예전에는 부자라고 하면 월급쟁이와는 완전 다른 계층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옆자리 동료라도 가지고 있는 자산에 따라 너무 차이가 큰 것 같다”면서 “미리 집을 사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말했다.

빚을 내서 투자를 하는 것도 신용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는 코로나 이후 저금리의 혜택을 누가 누렸느냐 하는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이우진 고려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에 자산불평등, 자산양극화가 심해졌고 이는 곧 재난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올 6월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올 1분기 전체 가계 신용대출 규모 가운데 고신용자가 차지하는 대출 비중은 75.5%에 달한다. 대출받기 유리한 고신용자들이 쉽게 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로 보더라도 고신용자의 1분기 대출 증가율이 19.6%에 달한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고신용자 대출이 2020년 크게 늘었는데, 그 상당 부분은 주택,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 상승세가 투자자금 조달을 위한 레버리지 증대와 맞물리면서 금융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자산가격 상승은 경제 주체 간 자산불평등 확대 요인으로도 작용한다”고 밝혔다.

실제 한은이 세종시를 제외한 16개 시·도의 지역별 주택가격 상승률과 고신용자 대출 증가율 사이의 상관계수를 따져본 결과, 둘 사이의 상관계수가 2019년 0.23에서 2020년 0.75로 높아졌다. 고신용자의 대출이 주택가격이 크게 오른 지역에서 뚜렷하게 증가했다는 뜻이다.

■ 2030 ‘영끌’ 못 멈춘다

자산불평등이 더욱 우려스러운 이유는 세대 간 격차로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50~60대에 해당하는 베이비부머들은 경제 호황과 저축을 통해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세대다. 반면 현재 20~30대는 집값이 너무 오른 상태라 대출 혹은 상속이나 증여가 아니고는 주택 마련이 어렵다. 국토연구원은 “임금소득 축적에 따른 부동산 취득이라는 사회경제적 기반이 급격히 붕괴하면서 부동산 자산불평등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년쯤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계획 중인 회사원 윤모씨(33)도 서울에 내 집 마련 기대를 거의 접었다. “주변 친구들이 부모님이 갭투자로 미리 사놓은 집을 결혼할 때 증여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부모 찬스’의 격차가 실감난다”면서 “직장이 있는 서울에 신접살림을 마련하려 했지만 요즘은 반 포기 상태”라고 말했다. 윤씨는 얼마 전 접수한 인천계양 사전청약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계층 분화의 마지막 분기점이라는 불안심리는 20~30대의 대출을 크게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30대 이하 대출 409조원 가운데 64%를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이 차지하고 있다. 또 자본시장연구원이 코로나19 국면에서 개인투자자 20만명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3월 이후 새롭게 계좌를 개설한 신규 투자자 가운데 20대 이하 비중이 28%에 달했다. 연구원은 “보유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20~30대가 코로나19 국면을 자산 증식의 기회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자산불평등, 회복할 수 있나

전문가들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조언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자산가격 급상승 현상은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지만, 오늘날 문제의 핵심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빚내서 집 사라’는 식으로 경기를 부양해왔던 기조에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 유동성까지 겹치면서 집값이 보통의 근로소득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액 연봉을 받는 근로소득자가 되더라도 현재의 집값이라면 부모·조부모에게 자산을 물려받는 부유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 간의 괴리는 심각해진다. 전 교수는 “가장 성공한 흙수저가 되어도 도저히 금수저를 따라갈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며 “할아버지가 부자인 것이 누군가의 인생 경로를 결정적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좀 더 넓히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서민층, 청년은 평생 전·월세살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서 “주택 소유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적 견해와 심각한 자산불평등은 포퓰리즘의 자양분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 관련 무너진 정책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시급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도가 높고, 조세를 통한 재분배 정책의 효과도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국가에 속한다. 하준경 교수는 “정부가 부동산이나 대출 규제와 관련해서 계속해서 핀셋식 규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주택 공급에 대한 강한 의지를 실천하면서 정책의 허점을 메워야 할 텐데 정권 말기에 이 같은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