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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굴레.혁명이든 정치든,추구하는 궁극목적은 권력! 정권은 부패 척결의지? 권력이 내거는 가치란 게 얼마나 가볍고 주관적이며 찰나적인가!

Bonjour Kwon 2015. 3. 18. 08:02

2015-03-17

 

 

혁명이든 정치든, 그것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같다. 권력이다. 요순 시절 임금을 제의받은 허유는 귀가 더럽혀졌다며 물로 씻었다지만, 그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거절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권력의 속성이 더러움 또는 추악함일지라도, 사람들이 그걸 물리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으리란 믿음, 그리고 새 질서는 오래가리란 맹목이 권력에의 추종을 끊지 못하게 한다. 권력을 잡기 전까지 나름 순수하고 때로는 낭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흑인 출신의 버락 오바마가 ‘담대한 희망’을 얘기하며 미국 백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내세워 노년층 투표율을 치솟게 한 것이나 권력을 향한 열정이란 측면에선 다르지 않다.

 

8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서민들에게 한때나마 ‘부자의 꿈’을 꾸게 했던 이명박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과거보다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게 권력의 매력이고 긍정적인 면이다.

 

문제는 그 희망과 기대가 너무 빨리 너무 쉽게 산산조각나 흩어질 때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시작한 포스코 수사가 그렇다. 정권은 부패 척결의 의지를 드러내지만, 눈에 밟히는 건 오히려 권력이 내거는 가치란 게 얼마나 가볍고 주관적이며 찰나적인가 하는 것이다. 보수 인사들이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긴 ‘포항제철’은 이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을 잡아먹기 위한 불쏘시개로 기억될 뿐이다.

 

1992년 10월10일 광양제철소에서 서로 시선을 돌리고 헤어진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와 박태준 포철 회장의 모습은, 지금 돌이켜보면 권력이란 호랑이 등에 올라탄 포스코의 앞날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때 김영삼 후보가 박태준 회장에게 한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제철소를 위해 애쓴 수많은 노동자와 포철을 국민기업처럼 여긴 국민에게 돌렸어야 할 말이었다. 그날 이후 권력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에 자기 사람을 심고 이런저런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켜온 건 모든 정권이 다르지 않았다. 그 결정판이 지금 수사 대상에 오른 이명박 정부의 포스코다.

포스코가 선거의 전리품이 된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검찰 수사를 탓할 이유는 없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포스코 장악을 위한 정치적 외압은 과거 어느 때보다 솔직하고 노골적이었다. 정권 초기에 대통령 측근인 박영준씨가 포스코 회장 후보들의 면접을 보러 다닌 건 당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직 포스코 고위 임원은 “정권과 밀접한 포스코 계열사의 협력업체 대표가 정권 실세 옆에 앉아 포스코 회장 후보를 면담하는 게 그 당시의 황당한 풍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시감 탓일까, 눈길은 지금의 검찰 수사보다 다음 정권에선 포스코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로 자꾸 쏠린다. 지난해 3월 권오준 현 포스코 회장이 정동화 당시 부회장을 제치고 그 자리에 앉은 뒤 “외압설은 사실과 동떨어진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정치권에선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다.

 

박찬수 논설위원

‘부정부패 척결’을 내걸고 포스코에 칼을 들이대는 건 너무 상투적이다. 적어도 과거와는 다른, 뭔가 ‘뒤틀린 걸 바로잡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다’는 식의 포부 정도는 내보여야 할 텐데 그런 기대를 주려는 노력도 현 정권은 별로 하질 않는다. 누군가 겁을 집어먹고 잠시 권력에 순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의 끝이 포스코의 정상화라고 여기는 이는 새누리당 안에도 별로 없다. 3년 뒤 그 칼끝이 누구를 겨냥하고 있을지가 솔직히 더 궁금할 뿐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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