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01
지난달 2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올해 말부터 헤지펀드에 신규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국민연금은 최근 몇 년간 헤지펀드를 포함해 다양한 대체투자에 나서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저조한 수익률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국민연금이 투자대상에 헤지펀드를 포함시키는 방안은 지난 2008년부터 추진돼 왔지만,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됐다. 국민연금의 최고 투자의사 결정기구인 운용위원회가 헤지펀드에 대해 너무 위험하다며 우려했기 때문이다.
위원들 대부분이 직접 투자에 나서본 경험이 적은 인물들로 구성돼 헤지펀드 자체에 대한 이해가 크게 떨어졌던 점도 헤지펀드 투자가 계속 벽에 막혔던 이유가 됐다.
국민연금과 달리 다수의 해외 연기금들은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해 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도 절대 수익을 얻는 헤지펀드 투자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곳이 많았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구성을 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하고, 운용본부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 기금운용委, 금융 전문가 출신 위원은 10%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총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으며,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5명이 당연직으로 함께 포함된다.
나머지 14명은 위촉직 위원이다. 위촉직 위원들은 사용자 대표 3명과 노동계 대표 3명, 지역 가입자 대표 4명, 시민단체 대표 2명, 금융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다. 500조원에 이르는 거대 기금의 투자 대상을 정하고, 운용 방향의 밑그림을 그리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원 중 금융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는 단 10%에 불과한 셈이다.
금융전문가로 포함되는 위원들도 실제로 자산을 운용해 본 경험을 갖고 있는 금융회사 출신이 적거나, 수시로 교체되는 경우도 많아 실제로 운용위원회 안에서 이렇다 할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드물다. 현재의 기금운용위원회 조직이 금융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각 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표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해외 공적 연기금의 경우 국민연금에 비해 운용위원회 조직이 전문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짜여져 있는 곳이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캐나다 연금투자이사회(CPPIB)의 경우 12명의 이사 전원이 투자은행이나 민간 금융사 등에서 오랜 기간 운용실무를 맡았거나, 연기금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쌓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들이 운용 방향 등에 대해 외부에서나 자체적으로 이렇다 할 평가를 받지 않는데 비해 CPPIB는 이사회 내부와 외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도 이사회가 전문성보다는 대표성을 강조하도록 구성돼 있지만, 이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은 국민연금에 비해 훨씬 치밀하고 독립적이다. 민간단체에 위촉직 14명이 자동할당되는 국민연금과 달리, 캘퍼스는 선거를 통해 이사를 선출한다. 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고작해야 1년에 4~5번 모여 2시간 남짓한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반면, 캘퍼스는 1박2일 단위로 1년에 10번씩 회의를 개최해 연금의 운용 방향을 결정한다.
◆ 국민연금 內 기금운용본부, 공사 독립 주장도
현재 국민연금의 운용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운용 방향과 자산배분 등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 뒤 운용실무는 국민연금 내부 조직으로 소속돼 있는 기금운용본부에서 담당한다.
현재 기금운용본부는 약 160명의 운용전문인력이 근무하고 있지만, 최고 결정권한을 운용위원회가 쥐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금 운용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금융업계 등에서는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분리해 별도의 공사(公社)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의 기금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본부 운영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조직으로 독립시켜 운용하는 방안이 유력한 개편 방향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현재 독립된 기금운용 담당 공사를 현행 보건복지부 산하로 두느냐,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느냐를 놓고 부처별로 의견이 엇갈리지만, 운용본부를 별도 조직으로 떼내야 한다는데 있어서는 같은 뜻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금 규모가 500조원에 달해 더 이상 공단 내 조직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졌고, 위원회의 지휘에 따라 채권 위주의 투자에만 치우쳐 수익률도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그 동안 기금운용본부 분리 주장이 나올 때마다 공적인 기금이 조성되는 과정을 무시한 채 제3의 조직이 운용을 맡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을 들어 반대해 왔다.
노동계 역시 기금운용본부가 별도 조직으로 분리돼 수익성을 강화하는데만 주력할 경우 자칫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돌발상황이 닥쳤을 때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기금운용본부 독립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진상훈 기자 caesar8199@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