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01
[84조원의 변심]① 수비수에서 공격수로…국민연금이 달라졌다
국민연금이 변했다.
그동안 돈을 잃지 않기 위한 ‘수비형 투자’를 했다면 최근엔 적극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공격형 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조만간 기업에 돈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할 태세다.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는 국내 주식시장에 쏟아부은 돈이 84조원에 달하는데 수익률이 바닥을 기고 있어서다. 이렇게 해서라도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국민연금의 운용 철학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변화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편집자 주]
“배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민연금이 그 주식을 팔면 된다. 애초에 배당 성향이 높은 기업에만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적정배당율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대로 배당을 해 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소속 A위원)
한참동안 열변을 토하던 A위원은 결국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평화롭던 회의장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A위원의 발언이 길어지면서 두 시간 정도로 예정됐던 회의가 세 시간을 넘어갔고 위원 몇 명이 함께 자리를 떴다.
이날 상정된 ‘국민연금 배당 유도 지침 신설’ 안건은 의결 정족수가 부족해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지난 2월 26일, 올해 처음으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 때의 일이다.
기금운용위원회를 파행으로 이끈 안건은 ‘배당 유도 지침 신설’이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배당을 늘리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지침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보유한 현금과 영업이익 등과 비교해 배당을 지나치게 적게 하는 기업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따로 관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적정배당률 수준으로 배당을 늘리지 않은 기업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고,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주주제안을 통해 배당률을 강제로 바꾸기로 했다.
재계에서 추천한 A위원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그는 “국민연금의 주인인 우리나라 국민들이 연금 재정으로 주식 투자를 하라고 한 적도 없지 않느냐”면서 “반강제적으로 모인 돈으로 산 주식을 가지고 기업에 과도하게 요청을 하게 되면 연금 사회주의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 기업 배당에 칼 대는 국민연금, 긴장한 재계
▲ 조선일보 DB 제공
국민연금공단이 기업들의 배당에 손을 대기로 결정하고 내부 지침 개정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은 지난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과소 배당 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12월 최종안이 만들어졌다.
올해부터 외부 기관에 주총 안건 분석을 맡기기로 한 것도 배당 확대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국민연금은 올해부터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베스트에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자문을 받기로 했다. 그동안 200개가 넘는 상장사의 주총 안건을 국민연금 내부에서 검토했지만 이를 외부 기관에 맡겨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기업의 배당에 대해 관여하는 것은 사실상 금기시 돼왔다. 배당 수준을 정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이고 국민연금이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은 경영 전략에 간섭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배당을 하지 않고 돈을 쌓아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정부도 직접 나서서 기업에 배당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사내유보금을 투자나 배당에 사용하지 않으면 세금을 더 내도록 세제를 바꿔버렸다. 국민연금으로서도 배당 확대를 요구할 명분이 생겼다.
법적인 걸림돌도 사라졌다. 지난해 12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연기금이 배당과 관련해 주주권 행사를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됐다. 그동안에는 연기금이 기업의 배당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경영참여 목적으로 간주돼 단기매매차익 반환 예외 등을 적용받았다.
기업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자릿수 지분율을 들고도 이미 국민연금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이 기업 측 입장이다. 지난해 삼성그룹이 추진했던 합병이 국민연금의 결정으로 무산된 전례도 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이 합병을 추진했는데, 두 회사의 지분을 5% 정도씩 들고 있던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며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해서 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머지 주주들이 대부분 찬성해서다.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가 가진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오너가(家)가 보유한 지분이 많아 기관 투자자가 의결권 행사를 통해 영향력을 미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나머지 기관 투자자들의 표를 모은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 자릿수에 불과한 지분율이 두 자릿수로 늘어나, 대주주를 위협할 수도 있다.
국내 기관들에게 국민연금이 ‘갑중의 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표를 결집하는 일은 예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국내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표를 모을 목적으로 의결권 행사 내역을 사전 공시했을 때 국민연금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표를 던질 수 있는 기관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기금운용 철학, 수비형에서 공격형으로
ㅡㅡㅡㅡㅡㅡㅡㅡ
[84조원의 변심]② 연금곳간 비어가는데⋯국내주식 수익률 마이너스
: 2015.04.01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주식에 투자해 4조7545억원의 손실을 봤다. 수익이 나도 모자랄 판에 원금을 까먹은 것이다. 다행히 채권과 해외주식 투자에서 수익을 내며 전체 기금 운용 수익률은 플러스를 기록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에 투자해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은 국내 증시가 몇년째 박스권(지수가 일정 범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간 탓도 있지만 보수적으로 기금을 운용한 영향이 크다.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투자 위험이 높은 자산을 사들이는 데 기금운용위원회는 물론 정부와 여론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최대한 안정적이고 수익이 확정된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운용해왔다.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그동안에는 수익률에 욕심을 조금 덜 내더라도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해 손실 위험을 최대한 낮추는 방향으로 투자해왔다”면서 “하지만 기금 고갈이 예상되고 저금리 상황이 계속되자 주식은 물론 대체 투자도 확대하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볼 때 채권과 국내 증시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외 주식과 대체투자에 대한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난해 국내 주식투자 수익률 -5.43%
국민연금 기금규모는 올해 500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급속한 노령화로 수급자는 늘어나고 가입자는 줄어들고 있어 기금이 언제까지 늘어날 수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을 잘해 수익률을 높여야 그만큼 기금 고갈시기를 늦출 수 있다.
국민연금이 ‘2015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한 운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군별 수익률이 ▲국내주식 -5.43% ▲해외주식 8.94% ▲국내채권 6.79% ▲해외채권 9.23% ▲국내대체투자 9.48% ▲해외대체투자 15.26% 등으로 집계됐다. 국내주식 성과가 가장 저조했다. 코스피지수 상승률이 -4.79%였는데, 이보다도 못했다는 얘기다.
전체 적립금 가운데 99.9%에 달하는 469조3000억원이 금융 부문에서 운용되고 있는데,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7.9%(83조9000억원)다. 이밖에 ▲해외주식 56조6,000억원(12.1%) ▲국내채권 260조5,000억원(55.5%) ▲해외채권 21조5,000억원(4.6%) ▲국내대체투자 22조2,000억원(4.7%) ▲해외대체투자 24조5,000억원(5.2%) 등이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투자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문제를 꼽았다.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본부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운용인력 처우를 개선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싶어도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거치는 절차 탓에 인력 보강이 쉽지 않다.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장은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 전문가로 구성해 기금 운용 관련 전략적 결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격상하는 한편 기금운용본부 전체를 보건복지부 산하의 투자 전문 조직으로 구성해 고급 인적 자원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내부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임원은 “지금 국민연금은 정부와 국회 눈치를 보느라 좋은 인력을 채우지도 못하고, 원금을 보전하는데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투자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국내 증시가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선진지수에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몇 년째 답보 상태인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어 3000선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봤지만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홍 CIO는 “신흥 지수보다는 선진 지수를 쫓아 움직이는 전세계 자금이 훨씬 많기 때문에 MSCI 선진 지수에 편입돼야 국내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몰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해외 연기금, 위험자산에 투자해 수익률 관리
2013년 세계 주요 연기금 중 가장 높은 운용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로 18.4%를 기록했다. 캐나다 국민연금인 캐나다연금투자원회(CPPIB)(16.5%), 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GPFG)(15.9%) 등도 두자릿수 수익을 거뒀다. 반면 국민연금은 4.2%의 수익을 거두는데 그쳤다.
수익률이 비교적 높았던 미국의 캘퍼스와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 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의 자산별 투자 비중을 보면 주식과 대체투자(부동산 토자, 사모 투자) 등 위험자산에 많이 투자했다. 미국 캘퍼스는 주식과 대체투자 비중이 각각 54%, 27%를 차지한 반면 채권투자 비중은 19%에 불과했다. 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은 주식투자 비중이 64%로 주요 연기금 중 가장 높았다.
국민연금은 채권에 투자하는 비중이 62%로 높다. 주식(29%)과 대체투자(9%)는 총 38%였다. 국민연금과 투자성향이 비슷한 일본 공적연금(GPIF)은 주식에 30%, 채권에 70%를 투자했다. 일본 공적연금의 2013년 수익률은 8.6%였다.
지지부진한 수익률에 국민연금도 자산별 투자비중을 조절하기로 했다. 올해 국민연금의 분야별 투자계획을 보면 자산 517조원의 10%에 달하는 52조원을 국내외 대체투자에 쏟아붓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지난 5년 사이 2.5배 늘었다. 국민연금은 올해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 비중도 소폭 늘리고 국내 채권비중은 낮출 예정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증시가 오랜 기간 답답한 구간에 머물러 있고 채권 투자로 수익을 내기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라며 “투자기간을 길게 잡아 30~40년을 본다면 위험자산 비중을 높게 가져갈수록 평균 수익률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ㅡㅡㅡㅡㅡ
지난달 2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올해 말부터 헤지펀드에 신규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국민연금은 최근 몇 년간 헤지펀드를 포함해 다양한 대체투자에 나서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저조한 수익률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국민연금이 투자대상에 헤지펀드를 포함시키는 방안은 지난 2008년부터 추진돼 왔지만,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번번이 좌절됐다. 국민연금의 최고 투자의사 결정기구인 운용위원회가 헤지펀드에 대해 너무 위험하다며 우려했기 때문이다.
위원들 대부분이 직접 투자에 나서본 경험이 적은 인물들로 구성돼 헤지펀드 자체에 대한 이해가 크게 떨어졌던 점도 헤지펀드 투자가 계속 벽에 막혔던 이유가 됐다.
국민연금과 달리 다수의 해외 연기금들은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해 자산 가격이 하락할 때도 절대 수익을 얻는 헤지펀드 투자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곳이 많았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 구성을 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하고, 운용본부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 기금운용委, 금융 전문가 출신 위원은 10%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총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으며,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5명이 당연직으로 함께 포함된다.
나머지 14명은 위촉직 위원이다. 위촉직 위원들은 사용자 대표 3명과 노동계 대표 3명, 지역 가입자 대표 4명, 시민단체 대표 2명, 금융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다. 500조원에 이르는 거대 기금의 투자 대상을 정하고, 운용 방향의 밑그림을 그리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원 중 금융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는 단 10%에 불과한 셈이다.
금융전문가로 포함되는 위원들도 실제로 자산을 운용해 본 경험을 갖고 있는 금융회사 출신이 적거나, 수시로 교체되는 경우도 많아 실제로 운용위원회 안에서 이렇다 할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드물다. 현재의 기금운용위원회 조직이 금융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각 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표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해외 공적 연기금의 경우 국민연금에 비해 운용위원회 조직이 전문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짜여져 있는 곳이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캐나다 연금투자이사회(CPPIB)의 경우 12명의 이사 전원이 투자은행이나 민간 금융사 등에서 오랜 기간 운용실무를 맡았거나, 연기금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쌓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들이 운용 방향 등에 대해 외부에서나 자체적으로 이렇다 할 평가를 받지 않는데 비해 CPPIB는 이사회 내부와 외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도 이사회가 전문성보다는 대표성을 강조하도록 구성돼 있지만, 이사회를 운영하는 방식은 국민연금에 비해 훨씬 치밀하고 독립적이다. 민간단체에 위촉직 14명이 자동할당되는 국민연금과 달리, 캘퍼스는 선거를 통해 이사를 선출한다. 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고작해야 1년에 4~5번 모여 2시간 남짓한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반면, 캘퍼스는 1박2일 단위로 1년에 10번씩 회의를 개최해 연금의 운용 방향을 결정한다.
◆ 국민연금 內 기금운용본부, 공사 독립 주장도
현재 국민연금의 운용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운용 방향과 자산배분 등에 대한 밑그림을 그린 뒤 운용실무는 국민연금 내부 조직으로 소속돼 있는 기금운용본부에서 담당한다.
현재 기금운용본부는 약 160명의 운용전문인력이 근무하고 있지만, 최고 결정권한을 운용위원회가 쥐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금 운용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금융업계 등에서는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분리해 별도의 공사(公社)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의 기금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본부 운영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기금운용본부를 별도 조직으로 독립시켜 운용하는 방안이 유력한 개편 방향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현재 독립된 기금운용 담당 공사를 현행 보건복지부 산하로 두느냐,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느냐를 놓고 부처별로 의견이 엇갈리지만, 운용본부를 별도 조직으로 떼내야 한다는데 있어서는 같은 뜻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금 규모가 500조원에 달해 더 이상 공단 내 조직으로 운영하기 어려워졌고, 위원회의 지휘에 따라 채권 위주의 투자에만 치우쳐 수익률도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그 동안 기금운용본부 분리 주장이 나올 때마다 공적인 기금이 조성되는 과정을 무시한 채 제3의 조직이 운용을 맡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을 들어 반대해 왔다.
노동계 역시 기금운용본부가 별도 조직으로 분리돼 수익성을 강화하는데만 주력할 경우 자칫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돌발상황이 닥쳤을 때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기금운용본부 독립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진상훈 기자 caesar8199@chosunbiz.com]
ㅡㅡㅡㅡㅡ
마
[84조원의 변심]④ 주주가치 높여야 vs 연금사회주의 안돼
입력 : 2015.04.01
국내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한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줄어드는 연금 곳간과 낮은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로 국민연금의 입지는 그 어느 때보다 좁아졌다. 과거처럼 ‘수비형’으로만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기업에 배당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국민연금의 변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좀 더 강력하게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주장했다. 이른바 ‘주주행동주의자’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 위주의 국내 기업 환경에서 대주주가 독단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의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연금사회주의’에 대해 강력히 우려했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면 정부가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아 ‘연금사회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주주가치 높이는 ‘주주행동주의’ 옳다는 주장
① 거수기 역할로는 주가 제값 못 받아
김성민 한양대 교수는 대주주 위주의 의사 결정 방식 때문에 기업의 주가가 제값을 못 받는다고 말한다.
현대자동차의 한국전력 부지 매입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현대차그룹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현대자동차 7.01%∙현대모비스 8.02%∙기아자동차 7.04%)은 지난달 11일 현대차그룹의 한국전력 부지 매입과 관련해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현대모비스와 기아자동차 사외이사의 재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현대차가 한국전력 부지 매입을 통해 주주들의 부를 극대화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했는지 의문이다”라며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까지 현대자동차는 14조원 규모의 주가 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한전부지 매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투자를 결정할 때 지배주주와 대표이사가 함께 있을 때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며 “대표이사에게 권한을 다 위임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② 재벌 독단적 의사결정 제동
김 교수는 “국내 증시가 저평가됐다고 하는데 국민연금이 지배구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기관투자자로서, 큰손으로서 책임감을 다하는 것”이라며 “(의결권 행사는) 국민연금의 간섭으로 봐서는 안되며, 지배구조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절차는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 재벌들의 의사결정 방식에 우려를 표현할 수 있다”며 “네덜란드 연금기구도 기아차 사외이사에 반대 의견을 제기했었다”고 설명했다.
③ 의결권 행사 강화해야
의결권 행사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많은데 의결권 행사는 그 중 가장 수동적인 방안이다”라며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해도 실제 기업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 전문위원회가 현대모비스와 기아차 사외이사 재선임안에 반대했지만 주주총회에서 기아차 사외이사는 재선임됐다.
◆국민연금이 기업 장악⋯‘연금사회주의’ 우려
① 국민연금 통한 정부 영향력 강화 위험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국내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커져 공기업처럼 관여하기 시작하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신석훈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지금처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면 극단적이긴 하지만 기업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회사 지배구조 등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② 기업가치 훼손할 수도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기업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교수는 “기업은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기업인이 운영을 해야 한다”며 “삼성전자의 경우 국민연금이 지분 7.8%를 보유하고 있어 대주주 일가보다 많은데, 국민연금이 삼성전자를 운영할 수는 없지 않는냐”고 말했다.
신 팀장은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보장되며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게 명확하고,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졌다면 의결권 행사를 인정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단순하게 회사의 주주가 주인이기 때문에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적어도 국민연금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상장사들의 배당 확대를 강조하자 국민연금이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나선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현했다. 신 팀장은 “기업의 적정 배당 기준을 만든다는 것부터 적절하지 않다”며 “배당은 개별 기업의 전략에 따라 많이 하거나 적게 할 수 있는데, 적정 수준을 정해 놓으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기관투자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직원공제회, 56조 운용 호주 QIC(퀀즈랜드 주정부 자산운용기관) 와 공동투자 추진.미국교직원퇴직연금기금과 1조원공동펀드.웰스파고와 협력등 (0) | 2015.04.06 |
---|---|
벤처에 영화·항공기까지…연기금·공제회 틈새투자 각광 (0) | 2015.04.02 |
84조원의 변심]③ 헤지펀드 모르는 기금운용위원들…계속되는 운용조직 독립논란 (0) | 2015.04.01 |
정부 "중소형 연기금 14.2조, 연기금투자풀 운용.해외·대체투자로 다변화" 국내 채권에 묻어뒀더니 수익률 2.62% 불과...전문성도 없어 (0) | 2015.04.01 |
대세는 대체투자…국민연금·KIC, 비중 10% 넘긴다.헤지펀드·파생상품까지 확대 "돈 되는 상품 찾아라"…글로벌 국부펀드와 제휴도 (0) | 2015.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