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7월 31일 19:55 더벨
은행이 예대마진으로 편하게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고, 증권사가 주식을 단순중개해서는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한다. 단순히 금융상품을 파는 것은 더 이상 고객을 유혹할 수 없다. 수십년 동안 금융상품에 투자해 돈을 벌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이제는 저들의 마음이 '고객'이 아니라 '수수료'에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요즘 뜨고 있는 건 자산관리 서비스다. 고객이 자산을 실질적으로 불릴 수 있도록 '자문'을 해 주고 수익을 얻는다. 어쩌면 자산관리야 말로 금융의 진정한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금융이란 기업이라는 경제주체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가계라는 경제주체에는 금융소득을 안겨주는 게 본연의 역할이니 말이다.
자산관리 서비스를 하는 금융회사는 이미 여럿 있다.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 하나은행 국민은행이 치열한 서비스 경쟁을 하고 있다. 증권사 중에는 삼성증권이 단연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가운데 NH투자증권이 최근 수년간 약진했다. 하지만 대부분 금융소비자에게 자산관리 서비스는 딴 세상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자산관리로 돈 벌었다는 금융회사도 없다.
자산관리업을 보통 영어로 웰스 매니지먼트(Wealth Management)라고 한다. 자산은 에셋(asset)이고 관리는 매니지먼트(management)이니, 자산관리는 애셋매니지먼트(Asset Management)가 되어야 겠지만, 애셋매니지먼트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펀드를 조성해 운용하는 것이 임무인 '자산운용사'를 일컫는다.
자산관리업이 웰스 매니지먼트가 된 것은 이 업이 부(Wealth)를 가진 계층을 뜻하는 부유층을 고객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보통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이 10억 원 이상이 돼야 이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생긴다. 우리나라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이라고 하니 평균적으로 볼 때 50억 원 이상 부를 보유한 자산가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아무리 크게 잡아도 전 국민의 1%만이 이 세계에 속할 수 있다.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프라이빗뱅커(PB)라는 직업의 자문인이 어떤 금융상품을 언제 사고 팔아야 하는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시시때때 알려준다. 보통 사람은 접할 수 없는 매우 높은 수익률의 여러가지 사모형 금융상품을 소개받는 특권을 누린다. 소득세나 상속·증여세 등 각종 세금을 덜 내거나 안 낼 수 있는 비결을 제공받는다.
99%의 국민이 받는 금융서비스는 여전히 예금이나 대출, 주식의 단순 중개, 펀드 가입 같은 업무들이다. 금융회사는 상품을 팔기만 할 뿐, 그 후의 일들은 모두 고객에게 맡겨진다. 자산관리 서비스의 핵심인 '자문'은 이들의 몫이 아니다.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제대로 알고 투자를 하든 말든 해야 하는데, 남들이 한다고 무턱대고 따라했다가 그 모양이 되고는 애꿎은 금융회사 탓을 한다며 핀잔을 듣게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는 자산관리업의 미래도 비관적이고 나라 전체적으로도 결국 비극이다. 1%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에 모든 금융회사가 생존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다.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니 당연히 원가는 높은데,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으니 모두가 큰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 결코 아니다. 부유층만이 더욱 부를 늘릴 수 있는 서비스를 받고, 중산층 이하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니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모든 금융회사가 다 같이 돈을 벌고, 서민도 자산을 증식할 수 있으려면 99%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관리 서비스의 태동이 절실하다. 그 서비스는 범용의 금융상품(대표적으로 공모펀드)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표준화된 절차와 수준으로 자문하는 것이 될 터이니, 원가도 그리 높지 않고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자산관리인가. 그 대답이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 부자 나라가 될지, 부자의 나라가 될지도 결정되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