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9
중국, 새해 벽두 구조조정 드라이브…안이한 한국 '중국발 태풍' 위기
[메트로신문 송병형·양성운기자] 중국이 국유기업 개혁을 위해 새해 벽두부터 해운업계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갈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과잉·중복투자 문제가 심각한 해운업 부분에서 먼저 국유기업 개혁의 신호탄을 올리는 모양새다. 중국 내 과잉·중복투자를 해결하면 상대적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유기업들이 해운업계를 끌어가는 중국은 정부의 의지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한국도 세계 해운업계의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기업과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구조조정을 마치면 한국은 안일한 대응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중국은 정부의 의지대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어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변명하기에는 상황이 심각하다.
◆중국, 해운업 필두로 새해 벽두부터 구조조정 드라이브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중국 해운업계 1·2위인 국영기업 코스코와 차이나쉬핑그룹의 합병을 올해 말이나 늦어도 1월 중에 승인할 계획이다. 코스코는 175척의 컨테이너선박을 운영 중인 세계 6위 업체이다. 차이나쉬핑그룹은 156척을 갖춘 세계 7위다. 양사가 결합하면 세계 물동량의 8%를 책임질 세계 4위 해운업체가 탄생하게 된다.
양사의 합병 계획은 지난 8월 중국 증시 파동이 일어나면서 국유기업 개혁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미 나온 바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양사는 컨테이너화물 사업부, 화물선, 건화물, 항만운영 부문 등에 대한 통합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합병에 따르는 해고 사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논의가 지지부진 하던 중이었다.
결국 국유기업 개혁이 시급했던 중국 정부가 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 경제의 위기는 과잉생산, 과잉재고, 과잉부채 등의 문제다. 이 문제들은 덩치 불리기에 열심이었던 국유기업 경영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중국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중국 국유기업을 '철밥통'이라고 부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중국 경제가 결국 '경착륙'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중국 민영기업의 자산 순이익률이 10.1%인 반면 국유기업은 6.7%에 그쳐 국유기업 문제의 단면을 드러냈다. 중국 국유기업은 영업수익도 전년 동기 대비 7.1% 급락했다. 국유기업 개혁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올해 중국 증시 파동은 국유기업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들었다.
중국 정부는 급기야 지난 9월 '국유기업 개혁안'을 발표했다. 또 이어진 18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 5중전회)에서 국유기업 개혁안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18기 5중전회에서 방안이 나온 만큼 중국은 내년 대대적인 국유기업 개혁에 나설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로써 시진핑 체제 들어 제시된 신창타이(新常態) 진입의 성공 여부가 내년 개혁작업을 통해 판가름 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신창타이는 이전까지 투자와 수출 위주의 초고속성장 정책이 한계를 맞자 과잉투자를 해소하고 내수 위주의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서 국유기업 개혁이 핵심임은 말할 것도 없다.
시스코와 차이나쉬핑의 합병으로 중국 정부가 노리는 것은 해외 경쟁업체들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WSJ는 공급이 수요보다 30%가량 초과하는 현재의 해운업계 상황에서 중국 업체의 합병은 업계 전체에 연쇄작용을 촉발할 것이라고 봤다. 세계 최대 해운업체인 머스크의 소렌 스코우 최고경영자는 WSJ에 "해운시장이 현재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해운업계는 합병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구조조정 실기…중국발 개혁폭풍에 위기 맞을 수도
이처럼 중국발 구조조정의 파고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한국 해운업계는 위태롭기만 하다. 한국 해운업계는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치면서 위기를 키우고 있다. 구조조정은 기업과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아니면 중국처럼 외부의 강제력이라도 동원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해운업계는 스스로 문제를 알면서도 안일한 대응에 머물고 있다.
해운업계의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부터 시작됐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국내 해운업계가 자체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며 돌파구 모색에 나서고 있지만 경쟁력을 회복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경쟁력을 잃은 이유는 적절한 선박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 실패해서다. 컨테이너선이 주력인 한진해운은 벌크선 시황이 좋아지자 벌크선 매입에 집중했다. 현대상선의 경우 선박 포트폴리오를 잘 갖춘 시점에 고가 용선에 의해 발목이 잡혔다.
반면 머스크는 불황기에 충분한 현금을 유지하는 재무정책, 호황기보다 30%까지 낮은 가격에 선박을 발주하는 선박 운영정책을 추진했다. 2011년 이후 신규 발주(자사선)를 한 건도 못한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과 대비된다.
국내 해운 산업을 관장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조선업은 산업통상자원부, 해운업은 해양수산부 담당이다. 한진해운-현대상선 합병설이 불거졌을 때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가 각기 다른 의견들을 내놓아 혼선을 야기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국토교통성에서 조선과 해운업을 함께 관리한다. 자국 선사가 자국 조선사에 발주하는 조선과 해운업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됐다.
구조조정에 있어 중국과 한국의 상반되는 모습은 비단 해운업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중국이 각 분야에서 국유기업 개혁을 추진할 경우 중국 경제와 연동된 한국은 그에 따른 후폭풍을 맞아야 한다. 자칫하면 맨몸으로 거센 풍우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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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기자(bh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