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3
비과세 해외주식형펀드 도입 후 경험 많은 대형 운용사와 손잡아
'한국투자웰링턴펀드' '한국투자SS펀드' '삼성픽테펀드'….
최근 펀드 시장에는 이처럼 국내 운용사 펀드인지 해외 운용사 펀드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름이 특이한 펀드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해외 투자가 급속히 늘면서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해외 펀드에 투자하려는 고객을 잡고자 글로벌 운용사와 함께 내놓은 이른바 '용병 펀드'다. 국내 운용사들은 해외 유수 운용사에 펀드 운용 자문을 하거나 운용을 위탁해 그들의 전략을 그대로 적용한다. 과거 국내 증권사들이 역외 펀드를 들여와 판매하는 일은 많았지만, 국내 운용사가 직접 해외 운용사 펀드 운용 전략을 빌려 오는 것은 새로운 흐름이다. 용병 펀드는 브랜드가 검증된 데다 글로벌 네트워크로 해외 투자 전문성이 뛰어난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한투·삼성이 '용병 펀드' 도입 선도
국내 운용사들이 해외 운용사와 손잡고 '용병 펀드'를 적극 출시하게 된 것은 올 2월 말부터 시행한 비과세 해외 주식형 펀드 제도가 결정적이었다. 지난달 말까지 3개월간 비과세 해외 주식형 펀드 계좌가 13만1500여 개 개설됐고, 5500억원 가까운 돈이 몰렸다. 시장의 '판'이 커진 만큼 국내 운용사들은 투자자들에게 경쟁력과 신뢰도를 동시에 갖춘 해외 브랜드 펀드를 소개하게 된 것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지난달 20일 내놓은 '한국투자웰링턴 글로벌퀄리티펀드'는 꾸준히 이익을 내는 글로벌 기업을 선별해 집중 투자하는 펀드다. 자산 규모 9270억달러(약 1070조원)로 기관 자금 기준 세계 8위의 글로벌 기관 자금 운용사인 웰링턴매니지먼트가 위탁 운용한다. 웰링턴매니지먼트가 2011년부터 운용 중인 '웰링턴 글로벌퀄리티 그로스펀드'의 투자 전략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펀드는 출시 3주 만에 가입금이 80억원을 돌파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글로벌 3위 자산운용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에 자문해 운용하는 '한국투자SS 글로벌자산배분펀드'도 최근 내놨다. ETF(상장지수펀드)를 통해 주식·채권·인프라 등 전 세계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한다는 매력으로 출시 하루 만에 98억원이 몰렸다.
삼성자산운용도 '용병 펀드' 출시에 적극적이다. 삼성자산운용 런던 현지 법인이 위탁 운용하고, 관리 자산이 약 200조원에 이르는 유럽 대형 운용사인 에드먼드 드 로스차일드그룹이 투자 자문에 응하는 '삼성 유럽가치배당펀드'는 출시 한 달여 만에 투자액이 300억원까지 불어났다. 또 최근에는 미국 캐피털자산운용과 함께 투자자의 은퇴 시점(Target Date)에 맞춘 자동 자산 배분 프로그램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한국형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출시하기도 했다.
◇투자 땐 높은 수수료 감안해야
'용병 펀드'가 본격적으로 선보인 기간이 짧아 수익률을 따지는 게 큰 의미는 없다. 그럼에도 요즘 수익률만 보면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다. 올 1월 출시돼 보안 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삼성 픽테 시큐리티펀드'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자산운용사 픽테가 운용을 전담하는데, 이 재간접 펀드의 3개월 수익률은 2.4%지만 최근 한 달 수익률은 -2.2%다. 한국투자웰링턴글로벌퀄리티도 1개월 수익률이 -1.4%에 그치고 있다. 글로벌 경기와 투자 자산 가격의 변동에 따라 용병 펀드들이 이름값을 제대로 못 할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들은 이 밖에 일부 용병 펀드의 연 보수가 1.5~2%로, 일반적 해외주식형 펀드(연 1.3%)보다 비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상품이 다양해지고 투자자 선택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국내 운용사가 해외 운용사의 펀드를 소개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투자자들은 펀드 수수료를 고려하고, 환율 변동에 따른 피해를 보지 않도록 펀드가 환 헤지형 상품인지 노출형 상품인지도 충분히 알아보고 가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