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10兆빌딩] ⑤... 최대 관심사는 '상속' 2016.04.27
부산 해운대구는 서울 다음으로 금융사 프라이빗뱅커(PB·자산관리전문가)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곳이다. 부산의 슈퍼리치(Super rich)들은 대부분 해운대에 거주하고 있다.
이는 해운대구의 부동산 시장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올 들어 거래된 최고가 분양권 아파트 1~3위가 모두 해운대구에 있다. 지난해 30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 거래량 순위에서 서울 강남·성동·용산·서초구에 이어 전국 5위에 올랐다.
해운대는 이제 ‘지방 부촌(富村)’을 넘어 국내 최고 부촌 자리를 넘보고 있다. 해운대구에서 만난 한 PB는 “보유 자산만 1조원이 넘는 고객도 있다”고 귀띔했다.
기자가 해운대구 마린시티를 찾은 지난 21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국내 최고층 아파트인 해운대 두산 위브더제니스(지상 80층)와 아이파크(지상 70층)는 낮게 깔린 비구름을 뚫고 끝간 데 없이 뻗어 있었다.
해운대구에는 지상 4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가 6개 단지에 이른다. 마린시티 한가운데 서면 마천루에 파묻혀 있는 듯한 위압감마저 든다.
해운대 아이파크 상가는 금융사들이 대거 입주해있는 건물이다. 지상 9층 규모의 이 빌딩에는 국민, 신한, 하나, 농협은행과 SK증권 등이 모여있다.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아이파크/사진=송기영 기자
◆ 해운대 최대 규모 PB센터… 신한PWM
신한금융지주는 이 빌딩에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를 통합한 복합점포 신한PWM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 금융사 중 가장 많은 6명의 PB가 근무하고 있다. PB 서비스 가입 기준은 5억원 이상이지만, 이 센터 고객들은 평균 20억원 이상을 맡긴다.
이 곳에서 PB 서비스를 총괄하는 김진규 부지점장과 이정애 PB팀장은 “부산 자산가들은 안전 자산에 투자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부산 자산가들의 경우 대부분 연령대가 높고 자수성가형이라 투자에도 보수적이다.
김 부지점장은 “PB들이 높은 수익률의 상품을 제안하면 고객이 오히려 뿌리친다”며 “고객들에게 주로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권한다”고 했다. 목표 수익률도 예금 금리의 2~3배 수준인 4~5%로 잡고 있다.
김 부지점장과 이 팀장은 하이일드공모주펀드, 노낙인(No Knock-In) 지수형 저배리어(조기상환 구간) 주가연계증권(ELS), 채권혼합형 상품을 추천했다. 또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달러 자산 또는 골드 상품에 투자하기를 권하기도 한다.
이 팀장은 부산 자산가들의 경우 부동산 투자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했다. 부동산 사업자는 물론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전문직 고객들도 대부분 투자형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팀장은 “전문직 고객들을 부대 수입으로 투자형 부동산을 많이 노린다”며 “이런 고객들을 위해 부동산 매매와 관련된 통합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본보기
부산 해운대 신한PWM센터에서 PB팀을 총괄하는 김진규 부지점장(오른쪽)과 이정애 팀장/사진=송기영 기자
재일교포 고객이 많은 것도 이 지점만의 특징이다. 상담실마다 재일교포을 위한 상담 매뉴얼도 갖추고 있다. 김 부지점장은 “재일교포 고객이 부산을 방문하면 입국부터 출국까지 모든 일정을 PB들이 챙긴다”며 “재일교포가 신한은행의 대주주라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고 했다.
◆ PB 명가(明家) 하나은행… 상속부터 부동산 관리까지
같은 건물 3층에는 KEB하나은행 골드클럽이 자리하고 있다. 골드클럽은 하나은행의 PB센터 브랜드로 자금 예치 규모 5억 원 이상의 고액자산가를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박규석 PB 팀장은 부산·울산에서 PB 생활만 11년을 이어온 베테랑이다. 그만큼 부산 자산가들의 성향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이 지점 고객들은 주로 5억~10억원 가량의 자산을 맡기고 있지만, 박 팀장의 고객 중에는 수백억대 자산을 보유한 슈퍼리치들도 많다.
박 팀장도 최근 부산 고객들에게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주로 추천한다. 최근에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나 국내 주식형 롱숏펀드 등을 주로 권한다. 아시아 국가의 공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투자하기도 한다.
박 팀장은 “최근 ELS와 브라질채권 등의 수익성 악화로 부산 자산가들의 투자 성향이 더욱 보수화됐다”며 “슈퍼리치들은 특히 손실을 입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해 수익성이 증명된 상품 위주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5~10% 수준의 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정적인 투자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3%의 수익률을 설정하기도 한다.
박 팀장은 최근 부산 자산가들은 자산 규모에 따라 부동산 투자 성향이 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슈퍼리치들은 상속 등을 대비해 부동산 자산을 정리하는 추세지만, 일반 자산가들은 상가나 오피스 등 꾸준한 수익을 내는 부동산에 관심이 높다.
박 팀장은 “작년까지 침체기였던 부산 부동산 시장이 올해 되살아나고 있다”며 “부산 자산가들은 특히 근린생활시설이나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원본보기
(왼쪽)부산 해운대구 KEB하나은행 골드클럽의 박진규 PB팀장/(오른쪽) 해운대구 KEB하나은행 골드클럽 전경/사진=송기영 기자
◆ 상속·증여가 최대 이슈… 상속으로 한번에 수백억 빠져나가기도
‘부산 자산가들의 2세는 모두 서울로 해외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PB들의 최대 고민은 ‘상속’과 ‘증여’다. 모든 자산가들이 재산 상속을 고민하지만, 부산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부산 자산가들은 60~70대가 많다. 자녀들은 대부분 부산이 아닌 타지에 거주한다. 주로 서울에서 많이 살고, 해외로 이민을 간 경우도 흔하다.
고객이 사망하거나 자녀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면 부산에 있는 금융사에서 뭉칫돈이 자녀가 거래하는 금융사로 빠져나간다. 지난해 부산의 한 자산가가 사망하자, 이 자산가가 해운대 금융사에 분산 투자해뒀던 수백억원의 자금이 서울로 모두 빠져나갔다.
모 은행이 해운대 아이파크에서 PB센터를 열었다 3년만에 문을 닫은 것도 이런 자산 유출 현상 때문이다.
“2세들이 서울 등 국내에 거주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2세가 계속 하나은행과 거래할 수 있게 설득할 수가 있다. 2세가 해외에 거주하면 속수무책이다. 고객 중에 자녀가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박규석 팀장)
“재산을 상속받은 자녀가 신한은행과 계속 거래한다는 보장이 없다. 상속으로 자산이 서울이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 부산 PB들의 가장 큰 애로 사항이다.”(이정애 팀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산 PB센터들은 고객들에게 종합적인 상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은행 골드클럽은 ‘상속증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세무사와 변호사, 회계사, PB 등 전문가들이 개별 고객들에게 맞는 상담을 하고 있다. 신한PWM도 고객들에게 장기적인 상속 플랜을 제공하고 있다.
박 팀장은 “부산 자산가들이 PB에게 가장 많이 문의하는 것도 상속과 증여”라며 “상속은 장기 플랜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종합적인 상담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송기영 기자 rcky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