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8 1
그림자 노동의 역습 / 크레이그 램버트 지음 / 이현주 옮김 /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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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진보하는데, 왜 우리 삶은 점점 바빠질까. 주어진 24시간을 침식하는 것은 바로 그림자 노동이다. 현대인은 돈을 받지 않고 회사나 조직을 위해 갖가지 일을 자발적으로 한다. 사람들은 직접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장 본 물건을 쇼핑백에 넣고, 직접 주식을 사고판다. 이케아 가구는 공구를 사와서 직접 조립하고, 스타벅스에서는 커피를 직접 치운다. 이 책은 "현대인은 고대 그리스 노예나 중세 유럽의 농노가 아닌데도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하고 있다.
그림자 노동은 현대의 생활 방식에 '중산층 노예'라는 새로운 요소를 안겨주었다"고 말한다.
하버드 매거진에서 글을 써온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램버트는 뉴욕타임스에 '대가 없이 추가된 그림자 노동'이라는 사설을 써 주목받았다. 이 책은 그 확장판 격이다. 그림자 노동은 도처에 있다. 손 안으로 들어온 컴퓨터 덕에 직접 스팸메일을 지우고, 여행을 예약하며, 수십 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관리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자율성을 누리는 일은 동시에 사람들을 자기 인생에 대한 통제권을 더 포기하게 만드는 자기모순에 빠트린다.
'그림자 노동'은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1981년 발표한 개념이다. 일리치는 집안일처럼 돈을 받지 않는 모든 일을 정의하기 위해 이 말을 고안했다. 문제는 오늘날 그림자 노동이 일과 여가의 경계선을 없앤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이메일과 '카톡'으로 근무시간은 늘어나며, 순수한 의미의 여가는 줄어들고 있다.
그림자 노동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첫 번째는 기술과 로봇이다. 인터넷은 여행사 직원 대신 고객이 직접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는 전문 지식의 대중화다. 인터넷에서 법률 서식을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되면서 변호사 없이도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됐다. 세 번째는 정보 그물망이 생기면서다. 데이터 시대는 개인들에게 끊임없이 개인정보를 입력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기준의 변화다. 부모가 자녀의 삶에 더 많이 관여하는 세태는 새로운 노동을 만들어낸다.
통근을 예로 들어보자. 일하러 가는 과정은 무급의 노동이다. 하지만 통근이야말로 많은 비용과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출퇴근을 위해 사람들은 차를 사서 보험을 들고 기름까지 넣는다. 저자는 미국의 통근자는 평균 25.7㎞를 이동하며, 1년에 4400달러의 비용을 지출한다고 썼다. 시간으로는 약 217시간. 1년 중 5주를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노동의 가치를 종교처럼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태도도 이를 부채질했다. 청교도가 건국한 미국에서 휴식은 존경받는 덕목이 아니다. 노동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과 제도의 질주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마트에도 호텔에도 식당에도 키오스크가 설치됐다. 그림자 노동은 다양한 경력의 기점이 되는 초보적인 일자리를 없앴다. 이는 일자리를 좀먹는 심각한 요인이다. 은행 사환으로 입사해 사장에 오른 저자의 아버지와 같은 사례는 이제 전설로만 존재한다.
그림자 노동의 최전선이 가정이라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가사노동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더 많은 소비는 더 많은 노동을 야기한다. 주택은 커졌고, 청결 기준도 높아졌다. 더 많은 가구와 전자제품, 공간을 소비하게 됐다. 세탁기 냉장고를 비롯한 많은 도구가 발명됐지만 노동에 드는 시간은 줄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 베벌리힐스의 부자들은 정원사부터, 요리사, 하녀, 유모, 수영장 관리인을 고용해 그림자 노동을 아웃소싱한다. 자녀의 교육과 운동에 있어서도 부모의 욕심은 그림자 노동으로 치환된다. 매일 자녀를 실어 나르는 미국의 '사커 맘'은 중년의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월마트,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만 자발적인 노동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자신의 개인정보와 글을 올린다. 페이스북은 물론이고, 제품 평을 올리는 베스트바이, 식당 후기를 남기는 저갯과 옐프 등에서 수많은 사람은 그림자 노동을 통해 서비스의 살을 찌우고 있다.
심지어 그림자 노동의 미래는 밝다. 자발적으로 노동과 데이터를 제공하는 고객으로 인해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자본가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문명의 토대는 빈둥거림"이라는 장 르누아르의 말은 시효를 다했다. 저자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개인화하고 파편화가 심해질 공동체의 미래다. 여행사 직원과 동료를 만나 알자스와 아말피에 대해 수다를 떠는 대신 고독한 방에서 익스피디아닷컴을 검색하게 만드는 시대에 관계가 주는 유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로봇이 더 발달하면 첨단 기술을 잘 다루지 못하는 문맹과 노약자는 빈곤층으로 내몰릴 수 있다. 동시에 저자는 그림자 노동의 출현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첨언한다. 기계와 소비자가 일자리를 빼앗고 있지만 생각하는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일은 노동력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돈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세태에 대한 저자의 고발이 뼈아프다. 책을 닫는 이 한마디처럼. "시간은 인생이다. 일, 돈, 시간, 이 세 가지가 있으니 그중 제일은 시간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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