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6
[한겨레] 믿을만한 금융기관이 재산을 맡아
운용·관리·처분을 대행해주는 ‘신탁’
고령화, 혼자 사는 삶 확산하며
우리보다 고령화 속도 빨랐던 일본
신탁상품 개발 일찌감치 시동
일 정부도 제도정비로 활성화 나서
국내 시장은 법적제약에 다양화 한계
성장세 빠르지만 정부 대응이 관건
자녀가 모두 외국에 거주해 서울에서 혼자 사는 60대 후반 김아무개씨는 집 근처 은행에 갈 때마다 반려견을 안고 간다. 최근 부쩍 건강이 나빠진 그는 은행 직원에게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강아지를 누가 돌봐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은행 직원은 김씨에게 사후에 반려견의 부양자를 지정할 수 있고 그에게 제공할 반려견 보호 자금은 은행의 신탁 계약을 통해 관리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김씨는 자신이 죽더라도 반려견을 보호할 수 있어 좋다며 ‘펫(반려동물) 신탁’ 상품에 가입했다.
#장면 둘.
60대 초반인 이아무개씨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전문요양원에 모셔두고 고민이 많다. 그동안 동생과 함께 돈을 모아 매달 치료비를 감당했지만 기간이 길어지면서 비용이 부담됐기 때문이다. 어머니 명의의 부동산을 처분해 치료비로 쓰고 싶지만 치매를 앓는데다 거동도 불편한 어머니가 직접 부동산을 처분하기란 어렵다. 편찮으신 어머니 부동산을 자식들이 처분하려니 주변 시선도 부담이다. 이씨는 자신의 주거래 은행에서 ‘치매 안심 상담서비스’를 받은 끝에 성년후견제도를 소개받았다. 은행 신탁을 통해 어머니의 재산을 치매 치료 등 후견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현재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 추세, 1인가구의 확산 등 인구구조와 사는 형태가 달라지면서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후와 상속 등을 고려해 단순예금이 아닌 신탁상품을 이용하는 흐름이다. 이미 2005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 은행 신탁을 통한 노후 대비 추세가 강한 일본보다 국내 신탁시장은 왜소한 편이지만 시중 은행들이 아이디어 상품을 하나둘 내놓으면서 신탁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신탁이란 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뜻이다. 믿을 만한 금융기관에 금전이나 부동산 등을 맡긴 뒤 운용, 관리, 처분하도록 하는 것이 현재 금융 신탁상품의 정의다. 신탁상품에 가입하면 재산은 맡긴 사람의 것이지만 법률적으로는 은행 등 금융기관이 재산 권리 행사의 유일한 주체가 된다. 그래서 신탁 재산에 대해서는 강제집행, 경매, 다른 채무와의 상계가 불가능하다. 치매 등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워진다 해도, 판단능력이 온전할 때 은행 등을 통해 정해둔 대로 재산이 관리, 처분되는 이점도 있다.
금융투자협회의 자료를 보면 2011년 157조원이던 금전신탁 규모는 올해 7월 현재 358조원까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금전신탁 상품 형태로 보면 퇴직연금형 신탁상품이 88조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채권형 신탁이 82조원, 정기예금형 신탁 80조원, 안정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머니마켓 신탁(MMT)이 61조원 순이다.
고령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2005년에 진입한 일본은 은행들이 정부가 <고령사회백서>를 처음 작성한 1996년부터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개인 연금보험, 신탁은행과 제휴한 상속 관련 업무, 유언신탁과 유산 정리 업무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2013년에 낸 ‘일본의 고령화 대책’ 보고서를 보면 현재 일본의 가계는 현금, 예금 등 안전자산 위주로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노후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수익성, 유동성보다 안정성을 선호하고 있다. 가계부문 금융자산 총액은 2011년 9월말 기준 1471조엔으로 56%가 현금과 예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조사 결과 금융자산 보유목적이 ‘노후 생활자금’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0%를 넘는다. 노후에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연금라이프’가 일반화해 있고 공적연금 의존도가 특히 높다.
일본 은행들은 고령자를 배려하는 영업점을 구축하고 라이프 사이클에 맞춘 종합 금융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노후 자금, 유산 상속, 치매 등 고령자들이 가질 법한 고민 내용에 맞추어 은행 직원들이 따로 상담하는 조직을 두는 한편, 고령자 대상 세미나 등 각종 행사도 꾸준히 열고 있다. 정부도 고령화에 대응해 신탁을 자산관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신탁법 전면 개정 등 제도 개선에 나섰다. 치매가 발병할 경우 법정 후견인이 치매치료와 요양자금 등을 은행으로부터 받아 가입자를 위해 쓰는 ‘후견제도 지원신탁’ 상품은 우리는 올해서야 처음 선보였지만, 일본에서는 2012년 2월부터 이런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케이디비(KDB)산업은행이 내놓은 ‘저출산·고령화의 경제적 영향 및 대응방안’ 보고서 역시 고령화가 금융자산 선호변화를 통해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사례에 비추어 보면 인구가 고령화되면 유동성이 크고 안전한 자산에 대한 선호가 증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된 일본의 고령화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고령 인구 비중이 7%인 고령화 사회에서 14%인 고령 사회로 넘어갈 때까지 프랑스는 115년, 영국은 47년이 걸렸지만 일본은 24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는데 내년에 고령 사회, 2026년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해 속도 면에서 일본 기록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속도는 일본을 넘어서지만 ‘고령화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한 금융의 변화는 이제 시작 단계다. 지난달 금융감독원 진웅섭 원장이 서울에서 열린 ‘100세 시대 금융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해 “우리나라 인구 고령화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우리 국민의 노후준비는 미흡한 상황”이라며 “준비되지 않은 고령화는 생산성 저하와 재정부담 증가로 이어지며, 안전자산에 대한 쏠림현상 등 금융시장의 구조 변화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신탁업은 자산관리 수단으로 활성화되기에 법과 제도가 너무 단순하고 제약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현재 신탁 등 상품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현행법상으로는 신탁의 광고·홍보 활동조차 금지되어 있다. 금융위원회는 신탁업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도 개선 등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현재 국내 시중 은행에서 가입할 만한 신탁상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신탁은 크게 돈을 맡기는 금전신탁과 부동산이나 유가증권 등을 맡기는 재산신탁으로 나눌 수 있다. 예금과 달리 신탁에 대해 ‘한 번에 큰돈을 맡기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소액을 적립식으로 넣는 신탁상품도 여럿 나와 있다.
케이비(KB)국민은행을 기준으로 하면 우선 1만원 이상 자유롭게 적립해 연간 1800만원까지 노후자금으로 적립한 뒤 연금으로 받는 연금저축 신탁이 있다. 10만원대에서는 주식처럼 쉽게 매매할 수 있고 펀드처럼 분산투자가 가능한 이티에프(ETF)에 가입할 수 있다. 500만원 이상을 생각한다면 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ELS) 등 파생상품에 돈을 넣거나 채권에 투자하는 이티엔(ETN)신탁, 안정성이 높은 자산에 투자하고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단기투자상품인 머니마켓 신탁(MMT) 등에 가입할 수 있다. 채권형 신탁은 2000만원 이상, 자문형 신탁은 5000만원 이상, 신탁을 통해 증여세를 절세할 수 있는 증여신탁은 5억원 이상이 적당하다.
김광식 케이이비(KEB)하나은행 신탁부장은 “신탁제도의 유연성이 높은 만큼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상품화하는 데 더 큰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유언대용 신탁, 성년후견 확대, 고령층의 노년자산관리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신탁 제도로 풀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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