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5
[이데일리 성선화 기자] 국민연금기금 등 국내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가 트럼프노믹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정책)를 맞아 인플레이션을 상쇄할 수 있는 실물자산 투자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전망이다. 저(低)금리 하에서 높게 평가돼 온 실물자산 가격이 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에서다.
◇격변의 트럼프노믹스…인프라 등 새 투자기회
15일 이데일리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교직원공제회, 행정공제회, 경찰공제회 등 국내 주요 4대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을 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해외투자 포트폴리오 변화와 대응전략에 대해 인터뷰한 결과, 트럼프의 인프라 스트럭처(사회기반시설) 투자 확대와 제조업 부흥 등과 같은 정책방향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원화절상 압력으로 이어지는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측면도 있지만 경제정책 흐름을 읽고 긍정적인 시그널에 베팅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강면욱 국민연금기금 운용본부장은 “트럼프 정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끼리 잘 살자`라는 신(新)내셔널리즘”이라며 “과거 제조업 기반의 러스트벨트(미국 북부의 사양화된 공업지대)가 활성화되면 미국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미국이 끝까지 고립주의만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미국 경기가 좋아지면 글로벌시장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플레이션 대비...해외대체투자 비중 확대
CIO들은 앞으로 해외 대체투자(AI) 비중 증가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대체투자비중을 늘리겠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렸다. 행정공제회의 경우 내년도 자산배분에서 해외 대체투자부문의 순증액이 가장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 재정확대 정책으로 유발될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기 위한 해외 실물 부동산 투자에 보다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장동헌 행정공제회 투자책임이사는 “인플레이션을 헤지할 수 있는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며 “올 연말까지 1개 정도 유럽지역의 중소형 빌딩 매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공제회도 금리 인상기에는 실물투자가 적합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도윤 경찰공제회 투자책임이사는 “그동안 저금리로 고평가 됐던 실물 부동산들의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며 “비싸게 평가됐던 가격들이 제 값으로 떨어지면 투자환경이 좋아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시장 금리가 연1%가 오르면 부동산 실질 가치는 연7%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단기적 美주식 `화창`...채권 투자 `흐림`
변동성이 높은 주식 투자비중은 점진적으로 줄이는 추세지만 단기적으로는 미국 주식 투자가 유효할 것으로 진단했다. 강면욱 본부장은 “향후 5년 동안 국내 주식보다 해외주식 포지션을 두 배 정도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동헌 이사는 “그동안 미국 배당주 등 안정적 주식이 각광을 받았다면 앞으로는 경기 민감주가 주목받을 수 있다”며 “미국 기업들이 해외 보유 자산들을 국내로 들여와 내수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도윤 이사는 “추가 하락을 예상해 계획대로 다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내년 1월 트럼프 취임 전까지 시장상황을 주시하며 해외 주식 투자비중을 늘리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강성석 교직원공제회 투자책임이사는 “12월 금리 인상은 힘들 것”이라며 “금리를 올리더라도 점진적으로 인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주식이 트럼프 쇼크의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며 “국내 주식 투자비중은 점차 줄여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채권의 경우 금리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면서 투자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채권 투자비중이 높은 기관들은 리스크 노출 가능성이 확대될 수 있는 셈이다. 이도윤 이사는 “당분간 국내 채권 투자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조화된 채권은 금리 인상기에 좋은 투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모펀드대출(PDF)이나 선진국 인프라 투자는 채권을 대체할 투자수단으로 꼽혔다. 장동헌 이사는 “선진국 인프라시장은 적극 투자 대상”이라며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투자비중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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