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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광풍에 대한 제언."중도, 휘둘리지 마라"-분노와 불만이 서구 정치를 휩쓸고 있다 "기득권층은 우릴 버렸다, 시위로 이들을 내쫓자"등..

Bonjour Kwon 2016. 12. 26. 05:58

[특별기고] 토니 블레어 前영국총리

 

ㅡ진짜 중요한 건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파도에 올라탈 수만 있다면 누구든 하늘 높이 날 수

있다는 점..

 

ㅡ소셜미디어는 이 흐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

ㅡ진실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세력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고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

ㅡ중도는 미래를 점하는 정책 어젠더를 재발굴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래는 정답에 있지, 분노에 있지 않기 때문

 

 

2016.12.26

 

중도, 강력한 어젠더 발굴하며 포퓰리즘 막아야..

 

분노와 불만이 서구 정치를 휩쓸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사실이다. 영국은 40년간 회원이었던 유럽연합(EU)을 떠나기로 결정하면서 그간 형성해온 모든 역내 무역과 정치적 관계를 위험에 빠뜨렸다.

 

모든 정치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유럽 전역에 걸쳐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기득권층은 우릴 버렸다, 시위로 이들을 내쫓자"는 구호를 공유하고 있다.

 

이 봉기의 가장 큰 특징은 변화에 대한 열망 자체가 그 변화가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에 대한 고려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노의 물결에 편승한 정치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말은 정상적인 정치 행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 파도에 올라탈 수만 있다면 누구든 하늘 높이 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평범한 종류의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 정치인들은 반항적인 이 유권자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조롱·멸시를 받곤 한다.

 

포퓰리스트들의 발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이미 차고 넘친다. 침체된 노동계층·빈곤계층의 소외감, 경제적 변화로 인한 공동체 붕괴, 무역과 이민 등에서 가차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세계화에 대한 저항 등이 거론된다.

 

소셜미디어는 이 흐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소셜미디어는 운동의 규모를 빠르게 키우며 미디어의 파편화를 초래해 정보의 객관성을 잃게 만든다. 이는 음모론이 소셜미디어 공간을 지배하고 사실과 사실 확인 작업이 무력하게 짓밟히는 결과를 불러온다. 20년 전 내가 지도자로서 처음 선거를 치를 무렵, 영국 BBC방송 메인 뉴스는 대략 1000만명의 시청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숫자는 250만명을 간신히 넘긴다. 과거엔 모두의 대화였으나, 이제는 같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갈라져 모이게 됐다.

 

정보를 받아 토론하는 방식의 변화는 그 자체로 혁명적인 현상이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재차 강조하기보다는 대중에게 도전하지 않는 게 그들의 충성도를 더 쉽고 상업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전통을 어기고 확립된 질서를 흔들며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확인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면 안 된다. 시스템을 흔들면 필요한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았거나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는 정치에서 매우 위험한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에선 소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프랑스 시민들이 민주주의가 프랑스에 맞지 않는 제도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권위주의 리더십에 대한 지지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포퓰리즘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경제적 변화도, 이민자에 대한 불안도, 사람들의 불만을 이용하는 현상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의 맥락은 새롭다. 또 우리 정치 중심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력함도 새롭다. 진실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세력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고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우리'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쓰는 것은 정치를 완전히 중도적이고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변화의 촉매제가 아니라 현상 유지만 하는 수동적 관리자가 되어가고 있다.

 

유럽에서는 EU가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고, 긴축정책이 자주 가져오는 치명적 효과에 대항하기 위한 개혁을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중서부 러스트벨트의 화이트칼라 노동계층이 무시당하고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민은 공동체를 바꾸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궁극적으로 이민자들의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이 나라를 유익하게 만든다는 데 이견은 별로 없겠으나, 당장의 영향은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것일 수 있다. 또 일반적으로 무역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사실, 반면 보호주의적 정책은 일자리를 덜 가져온다는 사실에도 이견은 없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보다 고소득의 숙련된 직업이 자주 사라지게 된다. 기술은 이러한 변화를 심화할 것이다.

 

이러한 혼동에 더해 2008년 금융위기와 2001년 이후 안보 및 이민 우려를 지배해온 극단주의의 여파, 그리고 현재 우리의 정치적 환경은 놀랍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따라 좌파는 반비즈니스로, 우파는 반이민으로, 중도는 유화와 경고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중도가 이렇게 해서는 이긴 적이 없다. 중도, 그중에서도 특별히 진보적 중도는 주도력이 있을 때, 토론을 이끌 때, 내놓은 해결책이 급진적이면서도 상식적일 때 승리했다. 강력하고 새로운 활력이 있는 중도만이 포퓰리즘이 밀려드는 걸 막을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긴급한 요구사항이다. 중도는 반드시 정치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거시경제적 정책에서부터 공공부문의 변화(기술을 통한 교육과 보건복지를 포함하는)까지, 또 가치를 보호하며 사람들의 걱정을 해결하는 안보와 이민 정책까지 중도는 미래를 점하는 정책 어젠더를 재발굴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래는 정답에 있지, 분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안과 공황 상태에서 잃을 것이 많다. 자신을 불안과 공황에 가깝게 만드는 어떤 것으로부터든 멀리 떨어지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소리가 이제 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현재 우리의 정치 환경을 더 낫고 희망찬 미래로 바꿔놓을 수 있다.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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